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딸이 엄마가 된 여름》 12

by이민자의 부엌


캐나다로 돌아가는 날 아침에는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전날 밤 늦게까지 짐을 정리했는데도 깊이 잠들지 못했던 것 같다. 사위는 우리가 떠나는 날이라 재택근무를 신청해두었고,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집 안은 조용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어젯밤 닫아놓은 여행가방 네 개가 현관 한쪽에 나란히 놓여 있었다. 열네 날 전에는 음식으로 가득 채워 이 집으로 들어왔던 가방이었다. 이제는 안이 한결 가벼워졌고, 그 가방을 다시 들고 나가야 할 아침이 왔다.


첫째가 잠든 사이 집을 나서게 될지도 몰라 전날 미리 동영상으로 인사를 남겨두었다. 아이가 눈을 떴을 때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으면 서운해할 것 같았고, 한편으로는 얼굴을 마주 보고 작별하면 우리도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출발할 시간이 가까워지자 다행인지 아쉬움인지 첫째가 잠에서 깨어났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이제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하자 아이는 잠시 우리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뜻밖의 말을 했다.


“나도 캐나다 갈래.”


남편과 나는 웃었다. 네 살 아이에게 캐나다가 얼마나 멀리 있는 곳인지, 오늘 헤어지면 다음에는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는지 아직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와 함께 가겠다는 그 한마디가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사위는 남편의 허리가 좋지 않은 것을 알고 여행가방을 하나씩 밖으로 옮겨주었다. 나는 그동안 몇 번이나 했던 당부를 또 꺼내는 대신 집 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처음 도착했을 때보다 딸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 보여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우리가 머문 동안 조금이라도 더 자고, 한 끼라도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마침 둘째도 깨어 있어 마지막으로 품에 안았다. 며칠 사이 조금 묵직해진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막 익숙해진 그 작은 몸을 다시 언제 안아볼 수 있을까 싶어 쉽게 내려놓지 못했다. 그래도 시간이 되어 딸에게 아기를 건넸다. 옆에서는 남편이 첫째를 꼭 안아주고 있었다. 열네 날 동안 아침이면 할아버지부터 찾고 하루에도 몇 번씩 놀자며 손을 잡아끌던 아이였다. 남편도 쉽게 놓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아이 앞에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딸과 사위에게는 공항까지 따라나올 필요 없다고 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움직이는 일이 얼마나 큰일인지 이제 우리도 잘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딸과 사위를 안아주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부른 차가 집 앞에 도착했다.


차 문이 닫힐 때까지만 해도 나는 괜찮았다. 창밖으로 딸의 집이 조금씩 멀어지는 것을 보면서도 애써 다른 생각을 했다. 공항까지 얼마나 걸릴까, 비행기는 제시간에 출발할까, 그런 생각들로 마음을 돌리려고 했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바라보던 남편이 불쑥 말했다.


“사위도 그렇고 송이도 그렇고, 둘이 애들 키우려면 참 안쓰럽다.”


그 말 한마디에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집에서는 울고 싶지 않았다. 딸 앞에서도, 손주들 앞에서도 괜찮은 얼굴로 떠나고 싶었다. 아이들을 안아주고 사위와 딸에게 인사를 건네느라 정신도 없었다. 그런데 차 문이 닫히고 우리가 그 집에서 점점 멀어지자 그제야 정말 떠났다는 것이 실감났다. 남편도 내가 우는 모습을 보더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창밖만 바라보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남편이 조용히 물었다.


“송이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


남편에게 한 말이었지만 어쩌면 나 자신에게도 그렇게 말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열네 날 동안 가까이에서 본 딸은 힘든 가운데서도 두 아이를 돌보고 있었고, 사위와 함께 자기들의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꾸려가고 있었다. 부모 눈에는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걱정되는 자식이지만 이제는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보다 딸과 사위가 스스로 해나가야 할 일이 더 많았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돌아서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해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열네 날 전 같은 공항에 내렸을 때는 빨리 딸의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제는 같은 곳에서 반대 방향으로 가는 비행기에 앉아 있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하자 창밖의 건물과 길이 빠르게 뒤로 밀려났고, 잠시 후 땅도 조금씩 멀어졌다. 저 아래 어딘가에 조금 전까지 우리가 함께 밥을 먹고 아이들을 안아주던 집이 있다고 생각하니 다시 눈가가 뜨거워졌다.


비행기가 고도를 잡은 뒤 휴대전화를 꺼냈다. 열네 날 동안 찍어둔 사진과 동영상이 생각보다 많았다. 첫째가 마당에서 뛰어다니는 모습도 있었고, 갓 태어난 둘째의 작은 얼굴도 있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함께 놀던 장면도 있었고, 딸이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도 있었다. 남편과 한 장씩 넘겨보다가 어떤 사진에서는 웃었고, 어떤 사진에서는 한동안 다음 사진으로 넘기지 못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우리 눈앞에 있던 사람들이 벌써 휴대전화 화면 속에 있다는 것이 이상했다.


사진을 보다가 딸이 아빠에게 건네준 편지가 생각났다. 집을 나서기 전 딸이 남편에게 조용히 준 편지였다. 비행기 안에서 남편이 다시 펼쳐본 편지에는 엄마 아빠가 자신에게 베풀어준 사랑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는 말과 고맙다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특별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딸이 아이를 낳았으니 가서 밥을 해주고, 손주들을 안아주고, 빨래를 하고, 필요한 일을 거들었을 뿐이었다. 부모인 우리에게는 그저 해주고 싶어서 한 일이었는데 딸에게는 그 시간이 그렇게 남았다는 것을 편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편지를 읽고 있는 남편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나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열네 날 전 런던으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딸을 돌보러 간다고 생각했다. 첫째를 낳았을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한 일이 오래 마음에 남아 있었기에 이번에는 꼭 가서 딸 옆에 있어주고 싶었다. 잘 먹이고 조금이라도 쉬게 해주고 싶었고, 첫째도 돌봐주면서 산후의 시간을 함께 지나주고 싶었다.


그런데 같은 바다를 반대 방향으로 건너며 생각해보니 내가 보고 온 것은 산후조리가 필요한 딸만은 아니었다. 둘째를 품에 안고 달래면서도 첫째의 마음을 살피고, 피곤한 몸으로 다시 일어나 아이를 챙기고, 남편과 함께 가정을 꾸려가는 딸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왔다.


딸은 어느새 엄마가 되어 있었다.


물론 첫째를 낳은 날부터 엄마였을 것이다. 나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멀리 캐나다에서 전화와 영상통화로 바라보던 것과 한집에서 함께 지내며 딸의 하루를 직접 보는 것은 달랐다. 이번 여름 나는 그 아이가 엄마로 살아가는 시간을 처음으로 가까이에서 오래 바라보았다. 내가 알던 딸의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그 옆에는 내가 미처 다 보지 못했던 한 사람의 시간이 쌓여 있었다.


그 생각을 하다가 오래전 친정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도 나를 두고 돌아갈 때 이런 마음이었을까.


그때의 나는 엄마가 왜 밥 잘 챙겨 먹으라는 말을 그렇게 여러 번 하는지, 몸조심하라는 말을 돌아서면서까지 되풀이하는지 다 알지 못했다. 엄마가 돌아가고 나면 나는 다시 내 생활로 돌아갔고, 엄마 역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때는 헤어진 뒤에도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지냈을지 깊이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런데 내가 딸에게 같은 말을 몇 번씩 하고, 냉동실을 열어 음식을 확인하고, 떠나는 순간까지 아이들 걱정을 하다가 결국 차 안에서 울고 나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엄마도 몸은 돌아가면서 마음 한쪽은 자식 곁에 두고 갔을지 모른다는 것을.


이제는 그 마음을 직접 물어볼 엄마가 없다. 내가 엄마가 되고도 오래 알지 못했던 마음을, 할머니가 되어 딸을 두고 돌아가는 길에서 조금 더 알아가고 있었다.


휴대전화 속 사진을 다시 넘겼다. 그 안에는 딸과 사위, 두 손주가 있었고 그 곁에는 어느새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된 우리도 있었다. 이번 여행은 딸이 엄마가 된 모습을 보러 간 시간이었지만 돌아보니 우리 역시 그 아이를 바라보며 또 다른 부모의 자리를 배우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릴 때 부모의 사랑은 대부분 손으로 하는 일이었다. 먹이고, 입히고, 데려다주고, 아프면 밤을 새웠다. 하지만 다 자란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은 조금 달라져 있었다. 해주고 싶은 것이 있어도 기다려야 할 때가 있고, 걱정되어도 믿어야 할 때가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는 돌아서서 자기 자리로 돌아오는 것도 부모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캐나다에 도착하면 우리에게도 다시 평소의 생활이 시작될 것이다. 딸에게 딸의 집과 생활이 있듯 우리에게도 돌아가 이어갈 삶이 있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각자의 하루를 살아가겠지만, 그렇다고 그곳에 두고 온 마음까지 멀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창밖에는 어느새 땅이 보이지 않았다. 구름만 끝없이 이어져 있었고 비행기는 그 위를 지나 캐나다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열네 날 전에는 딸에게 가는 길이었다.


그때의 나는 딸을 돌보러 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는 조금 다른 마음이 함께 있었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딸을 보고 왔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오래전 나를 돌보던 엄마를 다시 생각했다. 그리고 나 역시 엄마이자 할머니로서 또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었다.


딸이 엄마가 된 여름, 나도 다시 엄마의 마음을 배웠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다시 우리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함께 읽어주신 분들께


《딸이 엄마가 된 여름》을 마지막 편까지 함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둘째 손녀가 태어나고 우리 부부가 영국에서 보낸 열네 날을 한 편씩 꺼내 쓰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열두 번째이자 마지막 이야기에 닿았습니다. 처음에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딸의 시간을 기록해두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그 안에는 딸뿐 아니라 엄마인 저와 할머니가 된 저, 그리고 오래전 저를 돌봐주었던 친정엄마의 시간까지 함께 있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우리 가족의 이야기였는데도 자신의 딸과 엄마, 손주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건네주신 분들이 계셨고, 말없이 다음 편을 찾아와 읽어주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저 역시 지나간 그 여름을 한 장면씩 다시 꺼내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 영국으로 갈 때는 열네 날의 평범한 일상이 이렇게 많은 이야기로 남을 줄 몰랐습니다. 지나고 보니 밥을 하고, 아이를 안고, 함께 웃고 지쳐 잠들었던 그런 날들이 우리 가족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한때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제 《딸이 엄마가 된 여름》은 여기에서 마칩니다.


다음에는 《덜어낸 자리에 남은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려 합니다. 살아오면서 붙잡고 있던 것들, 이제는 조금씩 내려놓고 싶은 것들,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 무엇을 남겨두고 싶은지에 관한 이야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열두 편 동안 우리 가족의 여름을 함께 걸어와 주신 분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다음 이야기에서도 반갑게 만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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