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싸 들고 간 엄마의 부엌

《딸이 엄마가 된 여름》 9

by이민자의 부엌

딸에게 가져간 것은 몇 가지 한국 음식만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캐나다에서 오랫동안 이어온 나의 부엌을 네 개의 여행가방에 조금씩 나누어 담아 가져갔다고 하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영국으로 떠나기 전부터 나는 무엇을 가져가야 할지 머릿속으로 목록을 만들었다. 둘째를 낳은 딸에게 가능하면 내가 해오던 한국 음식을 그대로 먹이고 싶었다. 영국에도 한인마트가 있으니 웬만한 것은 구할 수 있겠지만, 막상 도착하면 장을 보러 다닐 시간도 많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사서 만드는 음식보다 캐나다 우리 집에서 먹던 재료로 딸에게 밥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된장과 고추장, 간장은 지난해 내가 직접 담근 것을 챙겼다. 내게 이 세 가지는 마트에서 사는 식재료와는 조금 다르다. 캐나다에서 메주를 만들고 장이 되기까지 기다렸던 시간이 그 안에 있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할머니와 친정엄마의 부엌에서 보고 배운 기억도 함께 들어 있었다.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서 살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온 우리 집의 맛이었기에 영국에 있는 딸에게 가져갈 것을 생각하면서 처음부터 빼놓을 수 없었다.


묵은지와 직접 담근 깻잎김치, 몇 가지 밑반찬도 챙겼다. 참기름과 고춧가루, 새우육젓, 말린 인삼을 비롯해 딸에게 해주고 싶은 음식에 필요한 재료들을 하나씩 준비하다 보니 어느새 부엌 한쪽에 가져갈 것들이 수북이 쌓였다. 음식물이 새지 않도록 진공 포장기도 새로 장만했고, 국물이 있는 것은 혹시라도 가방 안에서 터질까 몇 번씩 확인하며 포장했다.


그러다 보니 네 개의 큰 캐리어 안에서 우리 부부의 옷이 차지하는 자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나는 가방 하나를 채울 때마다 저울에 올려 무게를 재고, 조금 빼냈다가 다시 넣기를 반복했는데 남편은 오히려 태평했다.


“그냥 마음껏 넣어. 넘으면 추가 요금 내면 되지.”


남편의 그 한마디에 나는 망설이던 것 하나를 또 집어넣었다. 하나쯤 빼놓아도 될 것 같은데 막상 내려놓으려면 영국에 가서 꼭 필요할 것 같았다. 이쯤 되니 우리가 딸의 산후조리를 하러 가는 것인지, 캐나다에 있는 우리 집 부엌을 영국으로 옮기는 것인지 나도 헷갈릴 정도였다. 결국 네 개의 캐리어 대부분은 음식과 식재료 차지가 되었다.


한국을 떠나 산 지 오래되었지만 우리 집 부엌에서는 여전히 된장 냄새가 난다. 캐나다에 와서도 된장과 고추장을 담그고 김장을 했으며, 봄이면 뒷마당 텃밭에 깻잎과 고추, 오이, 애호박, 토마토와 가지를 심었다. 여름과 가을이 되면 그곳에서 자란 채소로 한국 음식을 만들어 아이들을 먹였고,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어느새 각자의 삶을 찾아 집을 떠났다.


이번에는 그 텃밭에서 자란 깻잎으로 담근 깻잎김치까지 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갔다. 딸이 어릴 때는 깻잎김치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에 사실 딸보다는 우리 부부가 먹으려고 가져간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식탁에 내놓으니 딸이 너무 맛있다며 잘 먹었다. 남편과 나는 서로 눈치를 보다가 웃으며 말했다.


“여보, 송이가 깻잎 좋아하니까 우리는 먹지 맙시다. 우리 집에 가면 많이 먹을 수 있잖아요.”


그 뒤로 깻잎김치는 자연스럽게 딸 몫이 되었다. 예전에는 잘 먹지 않던 깻잎김치를 맛있다며 먹는 딸을 보니 사람의 입맛도 세월을 따라 달라지는가 싶었다. 아니면 나이가 들면서 어린 시절 집에서 먹던 맛이 다시 좋아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묵은지도 넉넉하게 가져왔다고 생각했는데 며칠이 지나자 마음이 달라졌다. 우리 부부도 김치가 없으면 식사가 허전하다 보니 이대로 먹다가는 딸에게 남겨줄 것이 얼마 없을 것 같았다. 마침 동네 마트에서 배추를 살 수 있어 네 포기를 사다가 캐나다에서 가져간 고춧가루와 새우육젓을 넣어 겉절이를 담갔다. 딸이 맛있다며 잘 먹는 것을 보고 며칠 뒤 다시 배추 네 포기를 사다가 한 번 더 김치를 담갔다. 캐나다에서 가져온 재료와 영국에서 산 배추가 딸의 부엌에서 만나 김치가 되는 것도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일이었다.


캐나다에서 가져온 말린 인삼은 백숙을 만들던 날 꺼냈다. 닭을 푹 끓여 먼저 고기를 먹고 남은 국물에는 찹쌀과 채소를 넣어 죽을 만들었다. 딸과 사위는 물론 네 살 손주까지 잘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것으로 됐다 싶었다. 한국에서 온 인삼이 캐나다 우리 집을 거쳐 영국에 있는 딸의 밥상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보니, 음식 하나가 참 먼 길을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딸의 부엌에서 내가 가져간 된장과 고추장, 간장을 하나씩 열어 음식을 만들었다. 딸은 간장과 고추장이 맛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훗날 딸에게 이 맛은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영국에서 살다가 문득 떠오르는 캐나다 집의 맛일까, 아니면 어린 시절 엄마가 해주던 밥의 맛일까.


나 역시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서 살면서 친정엄마의 음식을 그리워했던 날이 많았다. 엄마는 그런 나에게 한국에서 먹을 것을 자주 보내주셨다. 음식뿐 아니라 자잘한 생활용품이며 화장품 샘플까지 상자 안에 빈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채워 보내곤 하셨다. 그때는 택배 상자를 열며 그저 반갑고 좋았는데, 이제 내가 캐나다에서 네 개의 여행가방에 음식을 가득 채워 영국까지 와보니 엄마가 왜 마지막 빈자리까지 그냥 두지 못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한국에서 캐나다로 보내지던 엄마의 상자가 이번에는 캐나다에서 영국으로 가는 내 여행가방이 되어 있었다. 엄마가 보내준 음식을 먹으며 나는 낯선 나라에서 살았고,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내가 만든 장과 김치를 다른 나라에 사는 딸에게 가져다주고 있었다. 그 사실을 생각하니 음식이 건너온 길만큼이나 시간이 멀리 흘러온 것 같았다.


돌아갈 날이 가까워지면서는 우리가 떠난 뒤 딸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었으면 싶어 국과 반찬을 넉넉하게 만들어 냉동실에 넣어두었다. 캐나다 집으로 돌아가면 우리는 얼마든지 다시 해 먹을 수 있으니 그곳에 남겨둘 음식에는 되도록 손을 대지 않았다. 한 끼라도 딸과 사위가 편하게 먹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떠날 무렵 딸의 부엌을 둘러보니 냉장고에는 캐나다에서 가져온 묵은지와 몇 가지 밑반찬, 영국에서 새로 담근 김치가 있었고, 된장과 간장, 고추장도 부엌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냉동실에는 우리가 떠난 뒤 꺼내 먹을 음식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우리 집 텃밭에서 자란 깻잎으로 만든 깻잎김치는 어느새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캐나다에서 가져온 것과 영국에서 새로 만든 것이 딸의 부엌 안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다시 친정엄마가 생각났다. 엄마의 부엌에서 보고 배운 것들은 나와 함께 한국에서 캐나다로 건너왔고, 그곳에서 내 가족을 먹이며 어느새 나의 부엌이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부엌의 일부가 다시 바다를 건너 엄마가 된 딸의 부엌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내가 온라인카지노에서 ‘이민자의 부엌’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는 데에도 이유가 있다. 이민 생활을 하며 우리 집에서 가장 많은 온기가 있는 곳이 어디일까 생각했을 때, 내게는 늘 부엌이었다. 가족에게 밥을 해 먹이고, 아이들이 오가고, 고향의 음식을 만들며 살아온 곳. 한국을 떠난 뒤에도 내가 살아온 시간과 가족의 기억을 이어주던 곳이었다.


이번에는 그 부엌을 통째로 가져갈 수 없으니 네 개의 여행가방에 조금씩 나누어 담았다. 된장과 고추장, 묵은지와 깻잎김치를 하나씩 꺼내 딸의 부엌에 자리를 만들어주고 돌아보니, 캐나다의 우리 집 부엌이 아주 조금 그곳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딸에게 가져다주고 싶었던 것은 음식보다 그 안에 오래 머물러 있던 온기였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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