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엄마가 된 여름》 10
영국에 도착하고 며칠 동안은 캐나다 집을 생각할 겨를이 거의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딸과 두 아이의 하루가 먼저 시작되어 있었고, 그 흐름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저녁이었다. 시차에 적응할 틈도 없이 갓 태어난 둘째 손녀를 안아보고, 첫째 손주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보내는 동안 캐나다의 우리 집은 잠시 내 생활에서 멀어진 곳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일주일쯤 지나자 이상하게도 집 생각이 나기 시작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잠깐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거나 밤에 침대에 누우면 문득 캐나다의 일상이 떠올랐다.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은 떠나오기 전 한창 자라고 있던 텃밭이었다. 오이와 호박은 얼마나 자랐을까, 고추와 토마토는 잘 익어가고 있을까, 상추와 깻잎은 더운 날씨를 잘 견디고 있을까 궁금했다. 매일 걷던 동네 길도 생각났고, 밤이면 오래 사용해 몸에 익은 우리 집 침대가 그리웠다.
딸의 집이 불편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딸과 손주들이 있는 곳인데 불편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오랫동안 반복하며 살아온 내 생활의 리듬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깊이 몸에 들어와 있었던 모양이다. 어느 날 밤 남편과 나란히 누워 있다가 슬쩍 물었다.
“우리 집도 슬슬 그립지?”
남편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그럼. 역시 내 집이 제일 편하지.”
둘이 그 말을 하고 웃었다. 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좋았고 손주들은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을 만큼 사랑스러웠다. 그런데 그것과는 별개로 우리에게도 오랜 시간 만들어온 우리만의 생활이 있었다. 남의 집도 아니고 내 딸의 집인데도 내 몸과 마음이 가장 편안하게 머무는 곳은 따로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캐나다 집에 있을 때 우리의 하루는 영국에서와 많이 다르다. 아침에 커피를 내려놓고 한참 앉아 있어도 당장 나를 찾는 사람이 없고, 배가 고프지 않으면 식사 시간을 조금 늦춰도 된다.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내 형편과 마음에 맞춰 쓸 수 있다. 아이들을 키울 때는 누군가 “엄마” 하고 부르면 하던 일을 멈추고 돌아보는 것이 너무도 당연했다. 아이들이 모두 독립한 뒤에는 처음에는 조용해진 집이 낯설기도 했지만, 남편과 둘이 살아가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리에게도 우리 나름의 생활이 생겼다. 그 생활이 얼마나 내 몸에 익어 있었는지는 오히려 집을 떠나와서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캐나다로 돌아갈 날만 기다렸던 것은 아니다. 집이 그리워질수록 딸을 두고 가야 한다는 사실도 함께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돌아가면 딸과 사위는 다시 두 아이와 자기들의 하루를 살아가야 했다. 아직 손이 많이 가는 첫째가 있고, 몇 시간마다 젖을 먹어야 하는 신생아도 있었다.
어느 날 딸이 무심한 듯 말했다.
“엄마 가면 너무 힘들 것 같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철렁했다. 정말 조금 더 있다가 가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돌아가는 비행기표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사실이 그날은 괜히 야속했다. 우리가 조금 더 머문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언제까지나 딸 곁에 있어줄 수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엄마 마음은 그렇게 이성적으로만 움직이지 않았다.
“정 힘들면 애들 데리고 캐나다로 와. 몇 달 있다가 가도 돼. 혼자 너무 힘들게 버티려고 하지 말고.”
나는 딸에게 그 말을 몇 번이나 했다. 캐나다로 돌아간 뒤 딸이 힘들다고 해도 당장 문을 열고 들어가 손녀를 받아 안아줄 수는 없다. 하지만 정말 버거운 날이 오면 언제든 돌아와 쉴 곳이 있다는 것만은 딸이 알고 있었으면 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점점 줄어들어도, 힘들 때 돌아와 쉴 자리는 언제나 열어둘 생각이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틈만 나면 휴대전화로 캐나다 집을 들여다보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지인에게 텃밭에 물을 부탁해두었고, 가끔 CCTV를 확인하며 집 주변에 별일은 없는지도 살폈다. 어느 날 그 지인이 텃밭에 물을 주러 갔다가 오이와 고추, 호박과 가지가 잘 자랐다며 수확한 채소 사진을 보내왔다. 주인이 없어도 채소들은 때가 되면 열매를 맺고 있었고, 우리가 없는 동안에도 캐나다의 여름은 자기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캐나다에서의 나는 누군가의 엄마로만 살고 있지 않았다. 낮에는 슬롯복지사로 일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조용한 시간이 생기면 글을 쓴다. 텃밭에 나가 채소가 얼마나 자랐는지 들여다보고, 익숙한 길을 걸으며 하루를 정리하기도 한다. 주말이면 남편과 장을 보러 가고, 별다른 계획 없이 차를 타고 나가는 날도 있다. 아이들이 모두 독립한 뒤 처음에는 비어버린 것처럼 느껴졌던 그 자리에서 남편과 나는 다시 우리 둘의 생활을 만들어왔다.
영국에 있는 동안 나는 오래전처럼 하루에도 여러 번 “엄마”라는 부름에 대답했다. 딸이 나를 찾고 손주들이 우리를 찾는 생활 속에 있으니 아이들을 키우던 시절의 내가 잠시 돌아온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캐나다로 돌아가면 다시 일하고, 글을 쓰고, 남편과 둘이 살아가는 나의 일상이 기다리고 있다.
엄마라는 이름은 내 삶에서 아주 오랫동안 큰 자리를 차지해왔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떠난 뒤 내 삶까지 그 자리에 멈추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자기 삶을 만들어가는 동안 나 역시 내 자리에서 살아갈 시간을 만들고 있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살아온 일상이라 평소에는 특별히 생각하지 않았는데, 딸의 집에서 다시 엄마의 역할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지내보니 오히려 내가 돌아갈 삶이 있다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딸의 곁에 더 있고 싶은 마음과 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서로 반대되는 마음이 아니었다.
한쪽에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자기 가정을 살아가는 딸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남편과 내가 오랜 시간 만들어온 우리의 생활이 있었다. 그곳에는 다시 출근할 온라인 게임이 있고, 쓰다 만 글이 있으며, 주인 없이도 자라고 있는 텃밭과 늘 걷던 길이 있었다. 아침이면 내가 사용하는 컵이 있고, 오래 손에 익은 살림살이가 있으며, 둘이 마주 앉아 별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 부부의 시간도 있었다.
이제 아이들은 각자의 집에서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고, 나에게도 돌아가 이어갈 생활이 있었다. 그것이 자식에게서 멀어진다는 뜻은 아니었다. 서로의 자리에서 살아가다가 필요할 때 다시 만나고, 힘들 때는 언제든 돌아올 자리를 내어주는 것. 지금의 우리 가족은 그렇게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열네 날 동안 딸의 집에서 살아보고 나서야 너무 당연해서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사실 하나가 내게 또렷해졌다.
엄마에게도 돌아갈 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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