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여섯 시, 우리 집 부엌에서는 콩 삶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전날 깨끗이 씻어 불순물을 골라낸 유기농 콩 11킬로그램을 찬물에 담가둔 지 열네 시간쯤 지난 뒤였다. 물을 잔뜩 머금은 콩은 전날보다 몇 배는 불어나 있었고, 그 많은 콩을 큰 곰솥 두 개에 나누어 세 차례에 걸쳐 삶아야 했다. 첫 번째 솥에 불을 올리고 나니 이제야 정말 시작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의 긴 하루가 시작되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메주 만들기였다. 지난해 처음 캐나다에서 메주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유기농 콩을 구해 메주를 만들고, 그것으로 된장과 간장을 담갔다. 직접 만든 된장과 간장이 항아리에서 익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힘들게 만든 보람이 있었고, 맛도 내 입에는 참 좋았다. 그래서였을까. 지난해 메주를 다 만들고 나서는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못 하겠다고 했던 내가, 올해가 되자 또 유기농 콩 11킬로그램을 사다 놓았다.
캐나다에서 메주를 만들려면 한국에서 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준비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볏짚을 구하기가 쉽지 않아 지난해처럼 올해도 밀짚을 준비했다. 여러 번 깨끗하게 씻은 뒤 마지막에는 식초를 넣은 물에 두 시간 정도 담가두었다가 다시 씻어 햇볕 좋은 뒷마당에서 며칠 동안 바짝 말렸다. 그렇게 준비한 밀짚을 잘 보관해두었다가 메주를 만드는 날 꺼냈다. 콩을 삶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곰솥 두 개에 나누어 세 차례에 걸쳐 삶고, 잘 삶아진 콩을 으깨고, 손으로 모양을 잡아 하나씩 메주를 만들어내다 보니 어느새 해가 기울고 있었다. 아침 여섯 시에 시작한 일이 모두 끝났을 때는 저녁 여덟 시였다.
남편은 오래전부터 허리가 좋지 않다. 그래서 시작할 때부터 힘든 일은 내가 할 테니 당신은 무조건 쉬라고 했다. 그런데 쉬라고 하면 잠깐 어디론가 가는가 싶다가도 어느새 다시 내 옆에 와 있었다. 내가 무거운 것을 들려고 하면 또 나타났고, 콩을 만지고 있으면 주위를 빙빙 돌며 도와줄 것이 없는지 살폈다. “당신 허리 아프니까 좀 쉬어.” 몇 번을 말해도 마음 놓고 쉬지를 못했다. 내가 혼자 고생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안쓰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웃기기도 해서 결국 말리는 것을 포기했고, 그렇게 둘이 하루 종일 콩과 씨름했다.
저녁이 되어 마지막 메주까지 만들고 나니 온몸이 녹초가 되었다. 그제야 나는 남편에게 “살면서 이렇게 힘든 일이 또 있을까 싶어. 내년에는 진짜 메주 안 만들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자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 “당신 작년에도 그렇게 말했어”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둘이 한참 웃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랬다. 지난해에도 다 만들고 나서 다시는 못 하겠다고 했는데 일 년이 지나자 나는 또 콩을 사고 있었고, 남편은 또 내 옆에서 콩을 나르고 있었다. 그러니 내년에는 정말 안 만들 거라는 말을 이제 남편도 믿지 않는 눈치다.
완성한 메주는 전기장판 위에 담요를 깔고 그 위에 준비해둔 밀짚을 놓은 다음 하나씩 자리를 잡아주었다. 온도는 28도 안팎으로 맞췄다. 여기까지 왔다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내가 무엇을 더 하는 시간이라기보다 메주가 스스로 변해가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이틀쯤 지나자 표면에 조금씩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흰색을 띤 곰팡이와 털처럼 보이는 곰팡이도 제법 자리 잡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메주부터 들여다보고 저녁이면 또 한 번 온도와 상태를 살핀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웃는다. 사람들은 캐나다에서 무슨 메주까지 직접 만드느냐고 놀라는데, 정작 나는 메주가 잘되고 있는지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여다보고 있으니 나도 내가 조금 우습다.
지난해 만든 된장과 간장이 잘 익었을 무렵, 아이들과 가까운 지인들에게 조금씩 나누어주었다. 한 통 두 통 챙겨 보내고 나서 항아리를 들여다보니 정작 우리 부부가 먹을 것은 생각보다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으니 조금쯤 아껴두고 싶을 법도 한데, 누군가에게 나누어줄 때는 이상하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친정엄마가 떠올랐다.
엄마는 평생 직접 메주를 만들고 된장과 간장을 담그셨다.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놓고도 자식들이 가져간다고 하면 아까워하지 않고 퍼주셨다. 그 시절의 나는 엄마가 주시는 된장과 간장을 받아오면서 그것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손이 가고 시간이 필요한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엄마에게는 늘 있는 것이었고, 자식에게 주는 것도 당연한 일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직접 콩을 고르고 불리고 삶아 으깨고, 메주를 만들어 띄우고, 다시 된장과 간장이 되기까지 기다려보니 엄마가 내게 건네주셨던 된장 한 통이 예전과는 다르게 보였다. 그때는 그저 엄마가 담근 된장이었는데, 이제야 그 한 통 안에 얼마나 많은 손과 시간이 들어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가만히 돌아보니 나도 어느새 그러고 있었다. 힘들어서 내년에는 안 한다고 해놓고도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나면 우리 먹을 것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시 콩을 사고 있었다. 어쩌면 엄마도 그랬을지 모른다. 자식에게 퍼주고 나면 다시 만들어야 했고, 힘들다고 하면서도 때가 되면 또 콩을 준비하셨을 것이다. 그때는 몰랐던 엄마의 마음을 내가 엄마의 나이를 지나며 조금씩 따라가고 있는 것 같았다.
작년에는 처음 해보는 일이라 만드는 과정을 하나하나 기록해두었다. 콩은 얼마나 불렸는지, 어떻게 삶았는지, 메주는 어떻게 만들었는지 글과 사진으로 파일에 남겨두었고, 올해는 그 기록을 다시 꺼내놓고 하나씩 확인하면서 만들었다. 올해도 만드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고 지난해와 달라진 점을 다시 적어두었다. 내년에는 절대 안 만든다고 남편에게 큰소리쳐놓고 정작 내년에 다시 펼쳐볼 기록은 꼼꼼하게 남기고 있으니, 생각해보면 나도 참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금 우리 집에는 콩 11킬로그램으로 만든 메주가 밀짚 사이에 줄을 맞춰 누워 있다. 아침저녁으로 들여다보며 온도를 확인하고 상태를 살피는데, 요즘은 메주가 익어가는 냄새가 집 안에 진동한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제일 먼저 메주 냄새부터 맡게 될 정도다. 토요일 아침 곰솥에서 콩을 삶을 때 부엌을 채웠던 냄새와는 또 다르다. 아직은 된장도 아니고 간장도 아니지만 그 냄새를 맡고 있으면 콩이 조금씩 다른 것이 되어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이 메주를 잘 띄우고 겨울을 지나 내년 1월쯤 장을 담글 생각이다. 다시 두 달쯤 기다려 된장과 간장을 가르고, 그 뒤에도 한동안 더 익혀야 비로소 우리 밥상에 오를 장이 된다. 콩 한 알이 밥상 위의 된장 한 숟가락이 되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접 만들어보고서야 알았다. 그렇게 긴 시간을 기다려 만든 된장은 우리 집 식탁에도 올라오겠지만 아마 또 여러 통에 나뉘어 아이들과 가까운 사람들에게 갈 것이다.
그러고 나면 항아리는 다시 가벼워질 것이다. 내년 이맘때쯤 빈 항아리를 들여다보다가 나는 또 유기농 콩을 살지 모른다. 그때 남편이 옆에서 “당신 작년에도 안 만든다고 했잖아”라고 하면, 나는 아마 할 말이 없어 또 웃을 것 같다.
힘들어서 다시는 안 한다고 하면서도 자식들에게 나누어주고 나면 또 만들게 되는 것. 어쩌면 내가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것은 된장과 간장을 만드는 법만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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