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엄마가 된 여름》 7
딸이 처음 남자친구를 데리고 와 우리에게 소개했을 때, 걱정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외국인 사위라는 사실 자체가 싫었던 것은 아니지만 서로 다른 문화와 언어, 식습관 속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한 가정을 꾸려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부모로서의 염려는 있었다. 그렇다고 반대할 생각은 없었다. 두 사람이 서로 좋다는데 부모가 나설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딸이 선택한 사람이니 우리가 먼저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처음 만난 사위는 말수가 많지 않았다. 조용한 성격이 조금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차분하고 듬직해 보였다.
그렇게 딸의 남편이 된 사위를 여러 해 보아왔지만, 이번에 영국에서 함께 지낸 2주는 조금 달랐다. 한집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함께 생활하다 보니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사위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둘째가 예상보다 일찍 태어나 우리가 영국에 도착하기 전까지 사위는 혼자 첫째를 챙기면서 병원에 있는 딸을 살폈다. 엄마가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첫째가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아이의 모습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어 딸에게 계속 보내주었다고 했다. 딸이 퇴원한 뒤에는 신생아까지 돌봐야 했으니 우리가 도착했을 무렵에는 사위도 많이 지쳐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왔으니 이제 큰애도 우리가 보고 작은애도 내가 돌볼 테니 그동안 밀린 회사 일이 있으면 마음 놓고 하고, 피곤하면 좀 쉬라고 여러 번 말했다. 실제로 몇 번은 늦게까지 일을 하고 들어왔지만 대부분은 평소처럼 퇴근했다. 집에 돌아오면 첫째와 놀아주었고, 아무리 피곤해도 잠들기 전에는 아이에게 동화바카라을 읽어주었다. 그것이 둘 사이의 오래된 습관인 듯했다. 퇴근한 뒤 큰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딸과 신생아의 상태를 살피며 자기 몫의 일을 해나가는 사위를 보면서 남편과 나는 몇 번이나 “캐빈도 참 힘들겠다”는 말을 했다. 이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으니 그 어깨도 가볍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딸과 사위가 서로를 챙기는 모습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밤마다 신생아에게 모유를 먹여야 하는 딸은 사위까지 잠을 설치게 하고 싶지 않다며 첫째와 사위는 한 방에서 자게 하고 자신은 신생아와 다른 방에서 잤다. 사위는 아침이면 딸에게 밤새 잘 잤는지 물었고, 회사에 가서도 틈틈이 연락해 아내와 아기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러면 딸은 엄마가 와 있어서 괜찮다며, 밤에는 엄마가 아기를 봐주니 자기도 조금씩 잘 수 있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힘든 시기였지만 서로의 힘든 몫을 알고 있다는 것이 곁에서 지켜보는 내게도 느껴졌다.
하루는 딸이 작은방에서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고 있어 나도 그 옆에 있었다. 수유가 끝나면 아기를 받아 안아 트림을 시키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때 1층 거실에는 남편과 사위 둘만 남아 있었다. 갑자기 딸이 나를 보며 말했다.
“엄마, 캐빈도 말이 없고 아빠도 말이 없잖아. 둘이 있으면 어색할 수도 있으니까 엄마가 얼른 내려가.”
그 말을 듣고 둘이 한참 웃었다. 나는 괜찮다며 그냥 있으라고 했다. 말수가 적은 장인과 말수가 적은 사위가 거실에 둘만 남아 있으면 정말 어색하려나 싶어 나도 웃음이 났다. 그런데 나중에 내려가 보니 딸의 걱정과 달리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AI 이야기가 나오면서 대화는 생각보다 꽤 오래 이어졌다.
사위를 조금 다르게 보게 된 것은 어느 날 새벽이었다. 아기가 배가 고파 깨어 딸이 수유를 했는데 먹고 나서도 좀처럼 잠들지 않았다. 2층에 있는 식구들이 아기 울음소리에 잠을 설칠까 봐 내가 아기를 안고 1층으로 내려갔다. 모두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식탁 쪽에 불이 켜져 있었고, 사위가 노트북을 앞에 두고 일을 하고 있었다.
“아직 안 자고 뭐 해?”
회사 일이 조금 남아서 이것만 마무리하고 자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아기를 안고 내려온 나를 보며 어머니가 잠을 못 주무셔서 어떡하느냐고 걱정했다. 모두 잠든 새벽까지 식탁에 앉아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그날 이후 사위가 회사에 갈 때면 삼각김밥과 김밥을 번갈아 만들어 도시락으로 챙겨주었다. 아침에 도시락을 들고 출근했던 사위가 저녁에 돌아와 “맛있었어요”라고 말해주면 그것도 괜히 기분이 좋았다. 딸에게 따뜻한 국을 끓여 먹이고 싶었던 마음이나 사위에게 도시락 하나 더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나, 가족이 되고 나니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위는 원래 말수가 적은 편이라 가끔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말보다 먼저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하루는 딸네가 키우는 강아지가 첫째의 팔을 물었다. 아이가 갑자기 울어 우리 부부와 딸이 놀라 달려갔는데 팔에는 이빨 자국이 보였고 조금 지나자 멍도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겁이 나서 당장 응급실에 데리고 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고, 딸은 아이의 팔을 사진으로 찍어 사위에게 보내며 전화를 했다.
나중에 딸에게 들으니 사위가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장모님 많이 놀라시지 않았어?”
나는 원래 겁이 많은 편이라 그런 나를 사위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자기 아이가 다친 일로 마음이 쓰였을 텐데 내 걱정까지 했다는 것이 조금 뜻밖이었다. 사위에게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한마디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처음 사위를 만났을 때 나는 아무래도 그를 ‘내 딸과 살아갈 남자’라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것 같다. 내 딸을 잘 이해해줄까, 문화가 다른 두 사람이 잘 맞춰가며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였을 것이다. 그런데 한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출근하고 돌아와 아이와 놀고, 아내의 상태를 살피고, 모두가 잠든 뒤 밀린 일을 하는 모습을 보다 보니 어느 순간 사위라는 관계보다 한 가정의 남편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로 살아가는 한 사람이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 우리 세대와 모두 같지는 않았다.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자란 만큼 생각하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의 일을 두 사람이 의논하며 자기들 방식으로 풀어가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캐나다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지자 한 가지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우리가 떠나면 다시 딸과 사위 둘이 두 아이의 하루를 감당해야 했고, 둘째는 아직 너무 어렸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생활이 계속되면 딸의 몸과 마음이 많이 지칠까 봐 걱정되어 어느 날 사위에게 부탁했다.
“우리가 캐나다로 돌아가고 나면 송이가 두 아이 돌보느라 많이 힘들 수도 있어. 너무 지치면 마음까지 힘들어질 수 있으니까 그럴 때는 네가 많이 이해해주고, 둘이 이야기도 많이 해.”
사위는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평소처럼 짧은 대답이었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아마 2주 동안 사위가 가족을 어떻게 대하며 살아가는지 내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함께 지내다 보니 사위의 말보다 행동이 더 많이 보였다. 새벽 식탁에 켜져 있던 불빛도, 잠들기 전 첫째에게 읽어주던 동화바카라도, 손자가 다쳤을 때 내 걱정까지 했다는 짧은 한마디도 그런 모습들이었다.
캐나다로 돌아갈 날이 가까워졌다고 해서 딸 걱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두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고 있었으니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쓰였다. 그래도 처음 영국에 왔을 때와는 조금 달랐다.
딸의 곁에서 함께 두 아이를 키우고 하루를 살아가는 사위의 모습을, 이번에는 내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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