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된 우리

《딸이 엄마가 된 여름》 8

by이민자의 부엌

첫째가 아침마다 우리 방을 찾아오고, 작은 손녀가 내 품에서 잠드는 날들이 이어지면서 남편과 나는 어느새 손주들의 하루 속에 들어와 있었다. 손자가 “할아버지”를 찾으면 남편이 먼저 몸을 일으켰고, 아기가 울면 나도 모르게 두 팔부터 내밀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는 정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부모였을 때와는 또 다른 마음이었다. 내 아이들을 키울 때는 먹이고 입히고 학교에 보내고, 아프면 병원에 데리고 다니며 하루를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바빴다. 그때는 아이가 자라는 순간순간을 가만히 들여다볼 여유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손주를 바라보는 지금은 달랐다.


아이들을 키우는 바카라임의 중심에는 딸과 사위가 있었고, 우리는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손주들이 자라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아이가 웃는 모습도 한참 바라보게 되고, 재미있는 말을 하면 나중에 남편과 다시 이야기하곤 했다. 내 아이들을 키울 때는 바쁜 하루 속에서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는 작은 표정과 행동까지 눈에 들어왔다. 부모였을 때는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바카라임이 먼저였다면, 할머니가 된 지금은 아이가 내 앞에서 웃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은 순간이 많았다.


남편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을 키울 때는 먹고살기 위해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세월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는데, 할아버지가 되고 나니 손자와 손녀가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런 남편이 첫째와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보기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자꾸 허리가 걱정되었다. 오래전부터 허리가 좋지 않은 사람인데 손자가 안아달라고 하면 덜컥 안아 올리고, 놀아달라고 하면 또 따라나섰다. 아파도 쉽게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틈틈이 남편의 얼굴을 살폈다.


첫째는 아침이면 3층에 있는 우리 방부터 찾아왔고, 밤에도 아빠가 재우려고 하면 어느새 슬그머니 우리 방으로 올라오곤 했다. 처음에는 이제 잘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남편과 내가 일부러 자는 척을 하면서 계단 불도 끄고 방의 불도 꺼보았다. 그런데 불이 모두 꺼져 컴컴한데도 손자는 우리를 찾아왔다. 앞이 잘 보이지 않으니 계단을 더듬으며 한 계단씩 조심조심 올라오는 모습에 웃음이 나면서도 마음이 쓰였다.


그 모습을 보고 나니 다음 날부터는 생각이 달라졌다. 밤중에 또 우리를 찾아오다가 어두운 계단에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떡하나 걱정이 된 것이다. 결국 우리는 그날부터 밤마다 계단 불을 켜놓고 자기 시작했다. 전날에는 손자에게 이제 잘 시간이라고 알려주려고 껐던 불을, 다음 날부터는 손자가 넘어질까 봐 다시 켜놓았다.


손주가 예쁘다고 무조건 받아주기만 할 수도 없었다. 딸은 첫째가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예의 바르지 않은 행동을 하면 귀엽다고 그냥 넘어가지 말고 반드시 주의를 주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하루는 첫째가 놀다가 할아버지에게 장난감을 살짝 던졌는데, 우리 부부는 그 정도는 그냥 넘어가려고 했다. 마침 그 모습을 본 딸은 아이를 불러 잘못된 행동이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한 뒤 무엇을 잘못했는지 생각해보고 사과할 마음이 생기면 나오라며 따로 마련한 공간으로 보냈다.


손자는 울면서 그곳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안쓰럽기도 하고 그 모습이 조금 귀엽기도 해서 웃음이 나올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잠시 후 아이가 나와 딸에게 “Mommy, I’m sorry”라고 말하더니 할아버지에게도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I’m sorry”라고 했다. 딸은 다시 우리에게 손주가 아무리 예뻐도 잘못한 행동까지 받아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도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된다고 해서 무조건 손주의 편만 되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배워가는 중이었다.


둘째 손녀는 이상하게도 내가 안고 있으면 비교적 얌전했는데 남편 품에 가면 금세 보채곤 했다. 남편은 “내가 안으니까 아기가 불편한가 보다”라며 내게 다시 건네면서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또 손녀를 안아보겠다며 두 팔을 내밀었다. 번번이 울음으로 퇴짜를 맞으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났다.


저녁이면 남편과 나는 첫째를 데리고 강아지 산바카라을 나갔다. 손자는 우리 사이를 오가며 걷고, 우리는 그 뒤를 따라 천천히 동네를 걸었다. 낮에는 아이들을 돌보느라 정신없이 지내다가도 그렇게 밖으로 나오면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생겼다. 어느 날은 자연스럽게 우리 건강 이야기가 나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되는 것은 참 좋은데, 우리도 이제 60을 넘겼으니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더 건강해야겠다고 했다. 지금 네 살인 손자와 아직 품에 안겨 있는 작은 손녀가 자라 대학교에 들어가는 모습도,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하는 모습도 보고 싶었다. 아이들이 자라가는 시간을 가능한 한 오래 곁에서 지켜보고 싶었다. 손주들이 생기기 전에도 건강은 중요했지만, 이제는 건강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이었다.


우리 앞에서 걷고 있는 손자의 작은 등을 바라보다가 문득 남편과 나란히 걷고 있는 우리 모습을 생각했다. 한때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걷던 젊은 부모였는데, 이제는 손주의 걸음에 맞춰 천천히 걷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사실이 그날은 서글프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아이들이 자라 자기 가정을 이루었고, 우리에게는 다시 작은 손을 잡아줄 시간이 찾아왔으니 그것으로 충분히 고마웠다.


지금은 네 살인 손자도 언젠가는 우리 아이들처럼 훌쩍 자라 있을 것이다. 아직 품에 안겨 있는 작은 손녀도 어느 날이면 제 발로 뛰어다닐 것이다.


앞으로도 오래 이렇게 손주들의 걸음 뒤를 따라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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