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바, 맨 뒷줄의 주춧돌

바순과 함께 가장 낮은 곳을 받치는 금관의 막내에 대하여

by첼콩델콩

지난번에는 내 등 뒤에서 불어오는 태풍, 트럼본 이야기를 했다. 오늘은 그 태풍 바로 옆자리로 눈을 돌려 보려 한다. 거기에는 유난히 커다란 금빛 덩어리 하나가 조용히 앉아 있다. 연주자 품에 안겨 있는데도 연주자보다 더 커 보이는 악기, 벨이 하늘을 향해 활짝 열린 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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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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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바는 금관악기 중에서 몸집이 가장 크고, 가장 낮은 소리를 낸다. 나는 목관 쪽에서 저음을 맡는 바순을 분다. 그래서인지 튜바에게는 이상하게 동지애 같은 것을 느낀다. 스포트라이트보다는 전체를 받쳐 주는 일을 맡은 사람들끼리 통하는 무언가가 있다. 오늘은 그 든든한 동료 이야기다.


생긴 건 고대, 나이는 막내

튜바는 생김새만 보면 고대 로마 시대부터 있었을 것 같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케스트라 금관악기 가운데 역사가 가장 짧은 막내다.


튜바가 세상에 나온 건 1835년이다. 프로이센의 군악대장 빌헬름 비프레히트와 악기 제작자 요한 모리츠가 특허를 내면서 태어났다. 그 전까지 오케스트라의 저음은 뱀처럼 구불구불한 목관악기 세르팡(Serpent)이나, 금관에 키를 달아 놓은 오피클라이드가 맡았다. 하지만 이 악기들은 소리가 작고 불안정해서 점점 덩치를 키워 가는 오케스트라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밸브를 제대로 갖춘 튜바가 등장하자 베를리오즈와 바그너처럼 대편성 음악을 좋아하던 작곡가들이 반겼다. 튜바는 곧 흔들리던 저음 자리를 통째로 넘겨받고 오케스트라의 필수 악기가 됐다. 늦게 들어온 막내가 집안의 기둥이 된 셈이다.


세르팡과 오피클라이드가 어떻게 생겼는지, 튜바의 음역이 얼마나 낮은지는 블로그에 그림과 함께 정리해 두었다. 튜바 이야기 원문 보러 가기


숨을 쉬는 게 아니라 공기를 마신다

트럼펫 소리는 날카롭게 앞으로 뻗는데, 튜바 소리는 왜 이렇게 둥글고 부드러울까. 비밀은 관의 모양에 있다.


튜바는 마우스피스에서 벨 끝까지 관의 지름이 점점 넓어지는 원뿔형이다. 덕분에 소리가 모나지 않고 솜이불처럼 포근하게 퍼진다. 꼬불꼬불 감긴 관을 쭉 펴면 길이가 3.6m에서 5.5m나 된다. 바순 관을 펴면 2.5m쯤이니, 나는 이 숫자 앞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 긴 관을 울리려면 당연히 숨이 많이 든다. 튜바 연주자들은 농담 삼아 숨을 쉬는 게 아니라 공기를 마신다고 말한다. 좁은 리드 틈으로 숨을 아껴 가며 밀어 넣는 바순 주자로서는 그 말이 조금 부럽고, 많이 무섭다.


튜바도 한 가지가 아니다

튜바는 그냥 제일 큰 거 하나 아니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조성에 따라 종류가 꽤 다양하다.


가장 크고 낮은 것은 콘트라베이스 튜바다. 그중 BB♭ 튜바는 관이 가장 길고 덩치도 가장 커서, 관악단이나 군악대에서 압도적인 저음이 필요할 때 주로 쓴다. CC 튜바는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악기다. BB♭보다 반응이 조금 빠르고 소리가 명료해서 섬세한 표현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보다 조금 작은 베이스 튜바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F 튜바인데, 독주곡이나 앙상블, 그리고 고음이 많이 나오는 곡에서 쓴다. 소리가 맑고 노래하는 듯하다.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 그런 곡이다. 이 곡 이야기는 조금 뒤에 다시 하겠다.


걸어 다니는 튜바

야구장 응원석이나 놀이공원 퍼레이드에서, 커다란 나팔이 연주자 머리 위로 솟아 있고 관이 몸통을 둥글게 감싼 악기를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튜바의 사촌, 수자폰(Sousaphone)이다.


'행진곡의 왕' 존 필립 수자가 행진하면서도 튜바의 웅장한 저음을 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1890년대에 개량한 악기다. 일반 튜바는 무릎에 올려놓고 불지만 수자폰은 어깨에 걸쳐 멘다. 벨이 정면을 향해 있어서 소리가 앞으로 시원하게 뻗는다. 금속으로 만든 수자폰은 10kg이 넘을 만큼 무거워서, 요즘 행진용으로는 가벼운 흰색 강화 플라스틱 수자폰을 많이 쓴다.


3~4kg짜리 바순 하나 들고도 어깨가 뻐근하다고 엄살을 부리던 나로서는 할 말이 없다.


블로그 원문에는 튜바 연주자들의 애환이 담긴 짤도 잔뜩 모아 두었다. 거대한 악기를 뒤집어쓴 사람들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이 무거운 악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유쾌한지 알게 된다. 튜바 이야기 원문에서 짤 구경하기


맨 뒷줄의 문지기

공연장에서 튜바를 찾으려면 무대 맨 뒷줄을 보면 된다. 객석에서 볼 때 오른쪽 끝이나 가운데, 보통 트럼본 바로 옆이 튜바의 지정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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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진 뒷자리에 앉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소리가 워낙 크고 울림이 강하다. 앞줄에 앉으면 목관이나 현악기 소리를 다 덮어 버릴 수 있어서, 맨 뒤로 물러나 전체 사운드를 감싸 안는다. 가까이에서 들으면 정말 뱃고동 소리 같다. 또 튜바의 벨은 하늘을 향해 있다. 소리가 천장을 치고 공연장 전체로 둥글게 퍼지기 때문에, 맨 뒤에 있어도 존재감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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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본 주자들이 슬라이드로 칼군무를 추는 그 옆에서, 튜바는 대개 혼자 금관의 저음을 바카라임진다. 그 무게를 혼자 지고 있는 모습은 볼 때마다 조금 대단해 보인다.


주춧돌과 접착제, 그리고 바순

튜바가 하는 일을 건물에 비유하면 주춧돌이다. 튜바가 정확한 타이밍에 가장 낮은 음, 화음의 뿌리를 쿵 하고 찍어 주지 않으면 바이올린과 트럼펫이 아무리 화려하게 연주해도 음악이 붕 뜬 것처럼 가볍게 들린다.


튜바의 풍성한 배음은 접착제 역할도 한다. 날카로운 금관 소리와 목관 소리를 하나로 섞어 준다.


여기서 바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바순도 저음 악기지만 질감이 다르다. 바순이 통, 통 하며 리듬의 윤곽을 그린다면, 튜바는 부우웅 하는 묵직한 지속음으로 공간을 꽉 채운다. 이 둘이 겹칠 때 비로소 저음이 완성된다. 윤곽을 긋는 사람과 그 안을 채우는 사람. 나는 이 분업이 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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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바 소리가 궁금하다면

튜바가 늘 쿵, 쿵 반주만 하는 건 아니다. 주인공이 되는 순간도 분명히 있다. 처음 듣는 분께는 두 곡을 권한다.


엔니오 모리코네의 〈라 칼리파(La Califfa)〉. 튜바 곡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저음 악기라고 하면 무겁고 둔한 소리를 떠올리기 쉬운데, 이 곡에서 튜바는 멜로디를 노래한다. 덩치 큰 사람이 뜻밖에 다정한 목소리를 가졌을 때 느끼는 반전 같은 것이 있다.


무소륵스키의 〈전람회의 그림〉 중 '비들로(Bydlo)'. 거대한 소가 끄는 짐수레를 그린 곡이다. 튜바가 아주 높은 음역으로 솔로를 부는데, 그 소리가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겨워하는 소의 울음처럼 들린다. 튜바 연주자들에게는 가장 긴장되는 순간 중 하나라고 한다.


하나를 더 꼽자면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 3악장이다. 우리가 잘 아는 동요 〈Are you sleeping〉의 멜로디를 단조로 바꿔, 아주 느리고 음산하게 솔로로 부르는 대목이 나온다. 저음이 주는 묘한 매력을 느끼기에 이만한 곡이 없다.


가장 낮은 곳의 심장

튜바는 화려하지 않다. 멜로디를 이끄는 일은 드물고, 객석에서 그 소리만 따로 골라 듣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래도 튜바는 자기 숨을 온통 쏟아, 남들이 빛날 수 있도록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무거운 소리를 낸다. 없어서는 안 될 오케스트라의 묵직한 심장이다.


그러다 밖에 나가면 수자폰으로 변신해 신나는 리듬을 선물하기도 한다. 무겁기만 한 줄 알았더니 놀 줄도 아는 친구다.


다음에 오케스트라 공연에 가시면, 무대 맨 뒷줄 트럼본 옆에서 하늘을 향해 금빛 입을 벌리고 있는 커다란 악기를 찾아봐 주시면 좋겠다. 그 덩치만큼 따뜻한 위로가 거기서 나온다.


그리고 그 저음 위에서 열심히 윤곽을 긋고 있는 목관 뒷줄의 바순에게도, 잠깐 눈길을 주시면 더 좋겠다.


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 '클래식을 소개해요'에 연재한 튜바 이야기를 에세이로 다시 쓴 것입니다. 튜바의 역사와 음역, 구조와 종류, 수자폰과 튜바 연주자들의 짤, 명곡 영상은 원문에 사진과 함께 더 자세히 적어 두었습니다.


튜바 편: https://blog.naver.com/davidchel/22418410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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