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순 자리에서 매일 바라보는 등과 뒤통수에 대하여
합주가 있는 날이면 나는 합주 시간 내내 한 사람의 등을 본다. 정확히는 등과 뒤통수다. 지휘자보다 그 등을 더 오래 보고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내 바로 앞자리에 앉는 사람, 오보에 수석이다.
지난번에는 내 파트너인 바순 이야기를 했다. 오늘은 바순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가족이나 다름없는 악기, 그리고 솔직히 조금은 무서운 악기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오보에는 얼핏 보면 클라리넷과 닮았다. 검은 몸통에 은색 키가 촘촘히 달린 생김새가 비슷해서, 처음 보는 사람은 둘을 자주 헷갈린다. 차이는 입을 대는 부분에 있다. 클라리넷은 뭉툭한 마우스피스를 무는데, 오보에 끝에는 빨대처럼 가느다란 리드가 꽂혀 있다.
몸통은 바순처럼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리드, 윗관, 아랫관, 그리고 끝이 살짝 벌어진 벨이다. 다섯 조각으로 나뉘는 바순을 들고 다니는 나로서는, 가방 하나에 쏙 들어가는 오보에가 늘 부럽다.
그런데 이 가느다란 리드에서 나오는 소리가 대단하다. 오케스트라가 아무리 웅장하게 몰아쳐도 오보에 소리는 그 위를 뚫고 나온다. 비음이 살짝 섞인, 애절하면서도 또렷한 음색이다. 그래서 작곡가들은 가장 슬프거나 가장 아름다운 멜로디를 오보에에게 맡겼다.
그 멜로디를 바로 뒤에서 듣는 바순은, 부러운 눈으로 앞을 바라보며 묵묵히 저음을 깐다.
오보에는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좋은 자리에 앉는다. 목관악기의 첫째 줄이다. 보통 첫째 줄 왼쪽에 플루트, 오른쪽에 오보에가 앉고, 둘째 줄 왼쪽에 클라리넷, 오른쪽에 바순이 앉는다.
그러니까 오보에는 플루트와 나란히 앞줄에 앉는다. 소리가 객석으로 가장 잘 전달되는 명당이고, 지휘자와 가장 가까이에서 눈을 맞추는 자리다. 목관의 센터라고 불러도 좋다.
그리고 그 바로 뒤, 오른쪽 뒷줄이 내 자리다. 앞에 앉은 오보에 수석의 키가 크면 지휘자가 가려져서, 나는 고개를 이리저리 빼꼼거리며 지휘봉 끝을 찾는다. 객석에서는 아무도 모르는, 뒷줄만의 작은 고충이다.
오케스트라 안에서 목관이 어떻게 앉는지는 블로그에 무대 사진과 배치도로 정리해 두었다. 오보에 이야기 원문 보러 가기
오보에의 조상은 숀(Shawm)이라는 악기다. 피리처럼 생긴 이 악기는 소리가 워낙 커서 중세에는 주로 야외 행사에서 쓰였다고 한다.
그러다 17세기 프랑스 루이 14세 시절, 실내에서도 연주할 수 있도록 악기를 고쳐 만들었다. 이때 붙은 이름이 오부아(Hautbois)다. 높다는 뜻의 오(Haut)와 나무라는 뜻의 부아(Bois)를 합친 말로, '높은 소리를 내는 나무 악기'라는 뜻이다. 이 이름이 이탈리아로 건너가 오보에(Oboe)가 됐다.
장작 묶음이라는 이름을 가진 바순과 비교하면, 태생부터 왕실의 사랑을 받은 귀족이다. 같은 겹리드 집안인데 족보부터 이렇게 다르다.
공연이 시작되기 직전, 악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면 무대가 조용해진다. 그 정적 위로 '삐—' 하고 라(A) 음을 길게 부는 악기가 있다. 오보에다. 그 음을 기준으로 오케스트라 전체가 음을 맞춘다.
왜 하필 오보에일까. 첫째는 소리의 직진성이다. 오보에 소리는 멀리, 정확하게 꽂힌다. 둘째는 조금 역설적이다. 오보에는 음정을 조절하기가 가장 어려운 악기다. 리드를 한번 꽂으면 미세하게 고치기 힘들다. 그러니 "내가 바꾸기 힘드니까 너희가 나한테 맞춰"가 된 셈이다. 역시 여왕답다.
나는 리허설 때마다 바로 앞의 그 라 음에 귀를 쫑긋 세우고 내 악기를 맞춘다.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먼저 듣는 소리이자, 가장 가까이에서 듣는 소리다.
오보에와 바순은 형제 악기다. 둘 다 갈대 두 장을 겹친 더블 리드로 소리를 낸다. 그래서 고민도 같다. 리드 관리가 지옥 같고, 리드 값이 너무 비싸다. 날씨가 흐리면 둘이 같이 한숨을 쉰다.
다른 점은 맡은 역할이다. 오보에는 소프라노다. 높은 음으로 멜로디를 노래하고, 화려하다. 바순은 베이스다. 낮은 음으로 반주를 받치고, 푸근하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오보에가 더 주인공 같은데, 부럽지 않아?" 물론 오보에는 멋지다. 하지만 그만큼 압박감이 엄청나다. 솔로가 워낙 많고, 맨 앞줄에서 실수하면 객석이 다 안다. 나는 뒷줄에서 묵묵히 받쳐 주는 바순 쪽이 더 좋다. 이건 진심이다.
오보에와 바순이 얼마나 닮았고 또 다른지는 블로그 원문에 영상과 함께 더 적어 두었다. 오보에 이야기 원문 보러 가기
오보에가 기네스북에 '가장 배우기 어려운 악기'로 올라 있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런 말이 나올 만큼 예민한 악기인 건 분명하다.
가장 큰 이유는 호흡압, 흔히 백 프레셔(Back Pressure)라고 부르는 것이다. 바순은 숨이 숭숭 빠져나가서 폐활량이 많이 필요하다. 오보에는 반대다. 리드 구멍이 너무 작아서 숨이 잘 빠져나가지 않는다. 바람을 억지로 밀어 넣어야 하니 머리로 압력이 몰리고, 두통을 호소하는 연주자도 많다. 긴 솔로가 끝나면 얼굴이 빨개져 있기 일쑤다.
합주 때마다 내가 바라보는 그 등 너머에서도 아마 같은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우아한 백조가 물밑에서 쉴 새 없이 발을 젓듯, 아름다운 오보에 소리 뒤에는 연주자의 숨 막히는 싸움이 숨어 있다.
처음 듣는 분께는 두 곡을 권한다. 듣고 나면 "아, 이 소리였어?" 하게 될 것이다.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의 〈가브리엘의 오보에(Gabriel's Oboe)〉. 영화 〈미션〉의 음악이고, 〈넬라 판타지아〉의 원곡이다. 천국이 있다면 이런 소리가 나지 않을까. 평화롭고 성스러운 오보에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 주는 곡이다.
차이콥스키(Tchaikovsky)의 〈백조의 호수〉 중 '정경'. "따라라— 딴—" 하고 시작하는 그 유명한 멜로디를 오보에가 맡는다. 슬픈 백조의 울음소리를 오보에가 연기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의 곡이라, 들을 때마다 앞자리 오보에가 조금 더 부러워진다.
오케스트라 가장 앞줄에서 빛나는 오보에, 그리고 바로 그 뒷줄에서 받쳐 주는 바순. 앉은 자리는 앞뒤로 다르지만, 까다로운 리드를 만지작거리며 함께 날씨를 걱정하는 우리는 영혼의 단짝이다.
혹시 공연장에서 오보에 솔로가 흘러나오면, 그 아름다운 소리를 내려고 얼굴이 빨개지도록 숨을 버티고 있을 연주자에게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내 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그 등 뒤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바순에게도, 잠깐 눈길을 주시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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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 '클래식을 소개해요'에 연재한 오보에 이야기를 에세이로 다시 쓴 것입니다. 오보에의 구조와 오케스트라 배치, 튜닝과 연주 영상은 원문에 사진과 함께 더 자세히 적어 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