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출근날, 아내가 차린 야채 샌드 아침
지금 나는 사람으로 꽉 찬 지하철 안에 서 있다. 두 다리로 중심을 잡고, 휴대전화 화면 위에 한 글자씩 이 글을 쓰고 있다. 전동차가 흔들릴 때마다 문장도 같이 흔들린다. 오늘 글은 지하철이 허락하는 만큼만 앞으로 나간다. 앉아서 썼다면 문장이 더 매끄러웠겠지만, 오늘 아침을 적기에는 이 흔들림이 더 어울린다. 비 오는 화요일 아침이다.
오늘은 빗소리에 잠이 깼다.
눈을 뜨기 전부터 오늘 아침이 만만치 않겠다는 걸 알았다. 창밖에서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화요일은 새벽 수영을 가지 않는 날이다. 수영장 물은 내가 찾아가야 만날 수 있는데, 오늘 비는 알아서 창문 밖까지 찾아왔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먼저 와서 문을 두드리는, 반갑지 않은 방문객이었다.
빗소리는 알람과 다른 방식으로 사람을 깨운다. 알람은 일어나라고 재촉하고, 빗소리는 일어나기 싫은 이유부터 알려 준다. 오늘 밖은 젖어 있다고, 출근길이 만만치 않을 거라고. 눈을 뜨기도 전에 하루의 난이도가 먼저 귀에 들어왔다. 어제는 10월에 여름이 재방송되더니, 오늘은 장맛비가 특별 출연했다.
출근할 때쯤에는 조금 잦아들기를 바랐다. 비는 내 사정을 들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아침은 비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아들을 깨우고, 씻고, 식탁을 닦고, 수저와 젓가락을 제자리에 놓았다. 날씨가 바뀌었다고 달라지는 순서는 없었다. 아들은 학교에 가고 나는 회사에 간다. 아들은 아들대로 이 비를 뚫고 학교에 가야 하고, 나는 나대로 이 비를 뚫고 회사에 가야 한다. 비는 집 밖의 사정이고, 아침은 집 안의 사정이다. 비가 오면 우산 하나가 추가될 뿐, 우리 집 아침의 순서는 그대로다.
이런 날은 몸이 생각보다 먼저 움직인다. 무엇으로 식탁을 닦을지, 수저를 어느 자리에 놓을지 머릿속으로 확인할 필요가 없다. 반복은 가끔 지루하지만, 아침부터 모든 걸 새로 결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큰 장점이 있다. 적어도 수저 위치를 고민하느라 비 오는 출근길을 늦출 일은 없다.
반복이라면 나도 할 말이 있다. 일주일에 세 번 새벽 수영장에서 같은 레인을 몇 번이고 왕복한다. 물속에서는 같은 동작을 되풀이해야 앞으로 나아간다. 한 번 팔을 젓는다고 멀리 가지 않는다. 같은 동작이 쌓여야 거리가 된다. 아침 식탁도 그렇다. 식탁을 닦고 수저를 놓는 일이 매일 쌓여서 우리 집 아침이 된다. 창밖이 요란한 날일수록 그 반복이 손잡이처럼 든든하다. 지난 수요일에도, 그리고 오늘도, 식탁을 닦는 손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식탁에는 아내가 만든 야채 샌드가 놓였다.
애호박과 가지, 연근과 새송이버섯을 겹쳐 샌드처럼 만들고, 토마토소스와 피자 치즈로 마무리한 음식이다. 빵이 한 조각도 없는 샌드위치였다. 빵이 빠졌는데도 샌드라는 이름이 붙을 수 있다는 게 조금 재미있었다. 샌드위치를 처음 만든 사람이 봤다면 고개를 갸웃했을지도 모른다. 채소들끼리 서로를 끼워 주면 그것도 샌드가 되는 모양이다. 애호박이 가지를 끼우고, 가지가 연근을 받치고, 연근이 버섯 옆에 자리를 내준다. 모두가 서로의 빵이다.
창밖은 잿빛이었는데 접시 위에는 초록과 보라와 하양, 그리고 붉은 소스가 모여 있었다. 게다가 아침부터 피자 치즈라니. 날씨는 우중충해도 식탁만큼은 들떠 있었다.
연근의 구멍이 눈에 들어왔다. 연근은 처음부터 빈 곳을 품고 태어나는 채소다. 그런데 그 구멍 덕분에 소스를 머금고, 그 구멍 덕분에 어디에 놓여도 금방 연근인 줄 안다. 빈틈이 있다고 버팀목이 못 되는 건 아니구나. 음식 하나를 놓고 별생각을 다 한다 싶다가도, 아침에는 이런 생각이 오래가지 않는다. 먹어야 하니까.
그저께 나는 단호박과 고구마를 바닥에 깔고 위로 쌓아 올렸다. 오늘 아내는 채소를 옆으로 겹쳐 끼웠다. 위로 쌓는 사람과 옆으로 끼우는 사람. 같은 부엌에서 나온 요리인데 건축 방식이 다르다. 물론 공사 경력은 비교가 안 된다. 한쪽은 수습생이고, 한쪽은 경력이 십 년을 훌쩍 넘었다.
옆에는 삶은 계란과 자두와 귤, 그리고 비타민 한 포. 자두와 귤은 이제 우리 집 아침의 고정 출연자다. 창밖의 비는 그칠 기미가 없었고, 출근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아침을 다 먹고 아내에게 말했다.
"맛있게 잘 먹었어."
짧은 말이었다. 입 밖으로 꺼내는 데 이 초도 걸리지 않았다. 특별한 표현도, 새로 배운 문장도 아니었다. 매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말이다. 그런데 가끔은 매일 하는 일보다 더 늦게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이 있다.
익숙해지면 고마움도 익숙함 속에 섞여 버린다. 누군가 차려 준 밥을 먹는다는 사실보다, 밥을 먹는다는 사실에만 신경이 간다. 배가 고프면 먹고, 다 먹으면 일어나고, 시간이 되면 집을 나선다. 평일 아침은 그렇게 흘러가기 쉽다. 고마움은 늘 식탁 위에 있는데, 말은 자꾸 식탁 밑으로 숨는다.
나는 아침에 있었던 일을 글로 남기는 사람이다. 글에서는 고마움을 조금 더 그럴듯하게 표현할 수 있다. 장면을 고르고, 문장을 다듬고, 제목도 붙일 수 있다. 하지만 식탁에서 그럴듯한 문장을 찾는 동안 음식은 식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내는 내 원고를 기다리며 아침을 차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먼저 말하는 편이 낫다. 오늘은 글을 쓸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말로 하는 고마움과 글로 쓰는 고마움은 도착하는 시간이 다르다. 글은 누군가 읽어야 도착하지만, 말은 그 자리에서 바로 도착한다. 식탁 건너편까지 일 초도 걸리지 않는다. 글로 쓰면 고칠 수 있고 멋도 부릴 수 있지만, 말은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끝이다. 그래서 말이 더 어렵고, 그래서 말이 더 정확하다. 고맙다는 말에도 유통기한이 있다면, 아침 식탁에서 바로 건넨 말이 제일 신선할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소리가 두 가지 있었다. 나를 깨운 빗소리, 그리고 식탁에서 내가 낸 목소리. 하나는 하늘에서 내려왔고, 하나는 내 입에서 나갔다. 빗소리는 하루를 무겁게 시작하게 했고, 내 목소리는 그 무게를 조금 덜어 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소리는 내가 고를 수 없지만, 내 입에서 나가는 소리는 내가 고를 수 있다.
그 말을 하고 나니 아침 식탁에서 해야 할 일을 하나 제대로 끝낸 기분이었다. 식탁을 닦거나 수저를 놓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하지 않으면 빠진 줄도 모르고 지나가는 일이다. 매일 해도 닳지 않고, 하루 빼먹으면 티가 나지 않아서 더 쉽게 빠지는 일.
출근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비는 약해지기는커녕 더 세차게 쏟아졌다. 우산을 펴고 중곡역을 향해 걸었다. 집 안에서는 배경음 같던 빗소리가 우산 위에서는 훨씬 요란했다. 집 안의 빗소리는 듣는 소리고, 우산 위의 빗소리는 견디는 소리다. 비 오는 날 길 위의 사람들은 다들 어딘가에 늦을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실제로 늦었는지는 몰라도, 걸음만큼은 평소보다 바쁘다. 나도 그랬다.
출근길에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이달 들어 아침 하늘은 거의 매일 맑았다. 날이 추워졌다가 다시 더워졌다가 하는 동안에도 하늘만은 꼬박꼬박 맑았다. 그 맑음이 오늘 아침 한꺼번에 젖었다.
비나 눈이 오는 날은 지하철에 사람이 더 많다. 평소에 걷거나 다른 길로 다니던 사람들까지 지하철로 몰린다. 우산을 접어도 젖은 우산이 차지하는 자리는 남는다. 아마 이 칸에 선 사람들 대부분이 오늘 아침 나처럼 비가 약해지기를 바라며 눈을 떴을 것이다. 같은 바람을 품고 나온 사람들이 같은 칸에 모여 같은 방향으로 흔들린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우산이 끼어 있고, 우산과 우산 사이에 또 사람이 끼어 있다.
아침 식탁의 야채 샌드가 떠오른다. 오늘 출근길 지하철은 사람으로 만든 샌드다. 나도 그 한 겹이다. 다만 이 샌드에는 토마토소스 대신 습기가 발려 있고, 치즈 대신 젖은 우산이 얹혀 있다. 맛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전동차가 출발할 때 한 번, 멈출 때 한 번, 몸이 앞뒤로 쏠린다. 그때마다 다리가 알아서 균형을 잡는다. 새벽 수영으로 다져 둔 다리가 이럴 때 쓸모가 있다. 물속에서 버티던 다리가 오늘은 흔들리는 칸 안에서 버틴다. 한 글자를 쓰고 고개를 들어 사람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다시 한 글자를 쓴다. 앉아서 쓸 때처럼 생각을 길게 잇기는 어렵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한 시간이 넘는 길이다. 이 글이 끝날 즈음이면 나는 신중동 근처 어딘가에 닿아 있을 것이다.
흔들리는 칸에서 중심을 잡는 일과 글을 쓰는 일은 조금 닮았다. 한쪽으로 너무 쏠리면 넘어진다. 감동 쪽으로 너무 기울면 글이 넘어지고, 투정 쪽으로 너무 기울면 하루가 넘어진다. 그래서 두 다리에 고르게 힘을 준다. 비 오는 출근길의 고단함과, 오늘 아침 식탁의 고마움 사이에서.
솔직히 오늘 출근길은 고단하다. 비에 젖고, 사람에 밀리고, 서서 가야 한다. 그렇다고 오늘 아침을 통째로 불편한 날로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 출근길이 힘들다는 사실과 아침이 고마웠다는 사실은 서로 다른 일이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지워 버릴 필요는 없다.
매일 아침을 차리는 사람은 비가 오는 날에도 아침을 차린다. 날씨를 핑계로 쉬지 않는다. 그 아침을 먹고 나온 사람이 비 좀 온다고 출근길을 길게 투정할 수는 없다. 나는 붐비는 칸 안에서 다시 두 발에 힘을 준다. 회사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다.
오늘 아침 내가 소리 내어 한 말은 하나였다. 맛있게 잘 먹었어. 일곱 글자다. 그 일곱 글자를 글로 옮기는 데는 지금 이 칸 안에서 훨씬 더 많은 글자가 필요했다. 그래도 아내에게 먼저 도착한 건 이 긴 글이 아니라 그 일곱 글자 쪽이다.
전동차가 다시 흔들린다.
휴대전화를 조금 더 단단히 쥔다.
오늘 아침, 비는 집을 나서기 전부터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내에게 건넨 고마운 말까지 젖게 둘 필요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