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판정패, 두산이 진 다음 날, 아내가 차린 지중해식 아침
이번 주 우리 집에는 패배가 두 번 있었다. 하나는 어젯밤 야구장에서, 다른 하나는 오늘 아침 현관 앞에서였다. 두산은 LG에 졌고, 나는 아내에게 졌다. 두 경기 모두 결과를 뒤집지는 못했지만, 한쪽은 시즌을 끝냈고 다른 한쪽은 하루를 시작하게 했다.
어제는 두산의 올해 마지막 경기였다. 상대는 LG. 같은 잠실을 홈으로 쓰는 두 팀이니, 한 지붕 아래 이웃끼리 벌인 마지막 승부에서 우리가 진 셈이다. 아쉬웠다. 그래도 올해 야구를 생각하면 패배만 남는 건 아니다.
아들이 부쩍 자라면서 야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두산 경기가 있는 날이면 나란히 앉아 중계를 챙겨 보는 일이 생겼다. 전에는 내가 혼자 확인하던 점수와 선수 이름을 이제 아들과 나눌 수 있다. 아빠가 좋아하는 팀을 아이도 좋아하게 되는 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다. 응원팀은 유전이 아니라 전염에 가깝다. 억지로 옮길 수 없고, 어느 날 아이가 스스로 화면 앞에 앉아야 시작된다. 올해 우리 집에서는 그 일이 일어났다.
어제 아침 아들은 두 달 만에 키를 쟀다가 2센티미터 자란 걸 확인했다. 키만 자란 게 아니었다. 관심사도 하나 자랐다. 같은 팀을 응원하고, 경기 결과를 궁금해하고, 내년 경기를 기다리는 아이가 됐다. 두산은 마지막 경기에서 졌지만 우리 집 응원석에는 올해 한 자리가 늘었다. 내년이면 키도 더 크고 선수 이름도 나보다 많이 외울지 모른다. 나는 키에서 밀리고 야구 해설에서도 밀릴 준비를 해 둬야겠다. 그런 변화가 올해의 선물처럼 남았다. 내년이 기다려진다.
오늘 아침의 패배는 현관에서 시작됐다.
몇 시에 눈을 떴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목요일은 새벽 수영을 가지 않는 날이었다. 잠결에 택배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귀는 멀쩡했다. 소리도 들리고, 아내가 택배를 들이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바위가 이불속에 누워 있었다면 딱 이런 모양이었을 것이다.
간신히 일어나 현관으로 나가 아내를 도왔다. 아내가 나를 보더니 말했다.
“빨리도 나와 줬네.”
칭찬은 아니었다. ‘빨리도’라는 말에 늦었다는 뜻이 이렇게 얌전히 들어갈 수 있다니. 부부가 오래 살면 핀잔도 짧아진다.
나는 능글맞게 대답했다. 몸이 너무 무거웠다고. 변명은 짧았지만 아내는 바로 다음 질문을 던졌다.
“어제 몇 시에 잤어?”
아내의 질문은 정확했다. 어제는 정말 일찍 잤다. 열 시 반쯤 잠자리에 들었다. 평소에는 열한 시가 넘어야 잠드는 편이니 나름 모범적인 취침이었다. 그런데 새벽 네 시쯤 추워서 눈이 떠졌다. 다시 잠들기는 했지만 깊게 자지 못했다. 침대에 누워 있던 시간과 몸이 쉰 시간은 달랐다.
아내에게 이 사정을 설명하자니 변론이 길어질 것 같았다. 일찍 잤다고 하면 왜 늦게 나왔느냐는 질문이 따라오고, 잠을 설쳤다고 하면 그럼 더 일찍 자야 하지 않느냐는 답이 돌아올 수 있다. 어느 쪽으로 가도 아내의 다음 말이 유리했다. 나는 웃고 말았다. 오늘 아침 판정패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니 사흘 전에는 날이 다시 더워져 침낭을 개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그런데 새벽 네 시에는 추워서 깼다. 10월의 날씨는 낮의 얼굴만 보고 밤까지 판단하면 안 된다. 침낭을 펴 두었으면 오늘 아침 몸이 조금 덜 무거웠을까. 다만 그랬더라도 택배 소리에 늦게 나온 바카라임까지 침낭에 떠넘길 수는 없다.
식탁에는 아내가 차린 지중해식 샐러드가 놓여 있었다. 소고기와 아보카도, 귤과 토마토가 한 접시에 담겼다. 삶은 계란과 수제 호박빵도 있었다. 메가도스 한 포까지 제자리를 지켰다. 삶은 계란은 오늘도 나보다 먼저 아침 근무를 시작한 셈이다.
‘지중해식’이라는 이름은 중곡동의 우리 식탁을 잠시 먼 곳으로 데려간다. 접시 위에서는 소고기와 아보카도와 과일이 한데 어울려 있었다. 특히 귤이 눈에 들어왔다. 이달 초 처음 식탁에 등장했을 때는 접시 한쪽에 따로 놓였는데, 오늘은 샐러드 안에 들어가 있었다. 가을이 우리 집 아침에 조금씩 자리를 넓히는 중인가 보다.
토마토의 빨강을 보자 어젯밤 경기가 잠깐 떠올랐다. 두산의 유니폼 색을 떠올린 건지, 그냥 토마토가 빨갰던 건지 모르겠다. 토마토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 괜히 노려보지 않고 먹었다.
수제 호박빵을 보면서는 며칠 전 내가 만들었던 아침 메뉴가 생각났다. 나는 단호박과 고구마를 으깨 신메뉴를 냈다. 오늘 아내는 호박을 빵으로 만들어 식탁에 올렸다. 같은 호박을 두고 나는 으깨는 데서 끝났고 아내는 굽는 데까지 갔다. 개발팀과 원조의 차이가 결과물에서 드러난다. 내 신메뉴는 시식 행사였고, 아내의 호박빵은 정식 출시였다.
아침부터 몸은 무거웠지만 식탁 앞에서는 조금씩 정신이 들었다. 깊게 못 잔 잠을 한 끼로 갚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하루를 시작할 힘은 얻었다. 내가 일어나기 전부터 움직인 사람이 준비한 음식이었다는 사실도 함께 먹었다. 그 수고를 매번 알아차리는 건 아니지만, 오늘은 현관에서 늦게 나온 탓인지 평소보다 또렷했다.
그리고 지금, 내 작업실은 전철 안이다.
바카라상도 의자도 없다. 교통카드를 찍고 들어와 사람들 사이에 서서 휴대전화로 글을 쓴다. 전동차가 출발하면 몸이 뒤로 기울고, 멈추면 앞으로 쏠린다. 한 문장을 쓰고 고개를 들어 중심을 잡은 뒤 다시 화면을 내려다본다. 이 작업실의 장점은 출근길에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고, 단점은 마감 시간을 내가 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려야 할 역이 가까워지면 문장도 서둘러야 한다.
오늘 작업실의 날씨는 맑음, 작업자 컨디션은 흐림. 몸은 아직 새벽 네 시에 남겨 둔 잠을 찾는 중이지만, 손가락은 아침의 장면을 옮기고 있다. 야구 이야기는 아들과 함께한 한 해를 남겼고, 아침의 대화는 내가 얼마나 늦게 움직였는지 남겼다. 식탁은 그 둘 사이에서 하루를 시작하게 했다.
아내의 “어제 몇 시에 잤어?”는 처음에는 내 변명을 막는 질문처럼 들렸다. 그런데 글로 옮기다 보니 그 말 안에는 내 잠을 궁금해하는 마음도 있었다. 내가 왜 그렇게 무거웠는지, 밤에 제대로 잤는지 확인하는 질문. 핀잔과 걱정은 우리 집에서 종종 한 문장에 같이 산다. 그렇다고 핀잔이 전부 다정함이라는 뜻은 아니다. 늦게 나온 건 늦게 나온 일이고, 아내가 물어본 건 물어본 일이다. 둘 다 사실이다.
올해 두산의 시즌은 끝났다. 아들과 함께 경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내년 봄까지 잠시 쉬어 간다. 하지만 우리 집 아침에는 비시즌이 없다. 누군가는 일어나 택배를 들이고, 누군가는 늦게 따라 나와 돕고, 식탁에는 아침이 차려진다. 내일도 그럴 것이다.
내일 아침에는 택배 소리에 오늘보다 조금 빨리 일어나고 싶다. 아내에게 판정패를 당하지 않으려는 마음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귀만 깨어 있고 몸은 이불속에 남아 있는 일을 줄이고 싶다. 두산은 내년 경기를 기다려야 하지만, 나는 내일 아침부터 다시 출전할 수 있다.
전동차가 흔들렸다. 나는 두 발에 힘을 주고 휴대전화를 조금 더 단단히 쥐었다. 어젯밤 두산의 경기는 끝났고, 오늘 아침 식탁은 비워졌다. 이제 내 앞에는 출근길과 오늘 하루가 남아 있다. 오늘의 판정패는 여기까지 적어 두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