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끝 월요일, 아내가 차린 아침과 저녁
오늘 나는 아내가 차린 상을 두 번 받았다. 한 번은 해가 뜨고 나서, 한 번은 해가 지고 나서. 그 두 상 사이에 내 월요일이 끼어 있었다. 월요일은 원래 긴 요일이다. 오늘은 그 긴 하루의 앞뒤를 아내가 붙잡아 주었다.
연휴가 끝난 월요일이었다.
새벽 여섯 시에 수영장에 갔다. 따져 보니 닷새 만의 물이었다. 지난 월요일은 대체휴일이라 수영장이 쉬었고, 금요일은 한글날이라 내가 쉬었다. 연휴 내내 부엌에서는 제법 부지런했던 몸이 물속에서는 조금 굼떴다. 부엌에서 쓰는 근육과 물에서 쓰는 근육은 아무래도 다른 모양이다.
집에 돌아온 건 일곱 시 십 분. 그 시간에 아들을 깨웠다. 연휴 동안 꺼져 있던 우리 집 평일 알람이, 오늘 아침 아빠 목소리로 다시 켜졌다. 지난 수요일 같은 시각에는 내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아들이 알아서 방문을 열고 나왔다. 연휴 끝의 월요일은 사정이 다르다. 연휴 끝 월요일 아침에 스스로 일어나는 5학년은 아마 전국에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잠에서 덜 깬 아들이 식탁 쪽으로 걸어왔다.
부엌에서는 아내가 아침을 차리고 있었다. 연휴 동안 몇 번 주방을 맡았던 나는 오늘부터 다시 손님 쪽 의자로 돌아갔다. 엊그제까지 신메뉴를 내던 개발팀은 예정대로 휴업에 들어갔다. 개발팀 직원은 오늘부터 다시 고객으로 전환됐다. 본사는 정상 영업이다. 생각해 보면 본사는 연휴에도 문을 닫은 적이 없었다. 내가 부엌에 섰던 휴일에도 아내는 전날 수프를 끓여 두었고, 재료를 꺼내 두었고, 냉동실에 쪄 둔 밤을 기억해 냈다. 내가 잠시 맡았던 일을, 아내는 오래도록 해 온 사람이다.
식탁에는 빵이 놓였다. 빵 위에 아보카도와 계란을 으깨서 올렸다. 그 옆에는 소고기를 넣고 푹 끓인 토마토 수프. 귤과 자두, 비타민 한 포와 발효콩환도 제자리에 있었다.
빵 위의 아보카도를 보다가 웃음이 났다. 으깬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어제 아침 나는 단호박과 고구마를 으깨서 신메뉴를 냈다. 오늘 아침 아내는 아보카도와 계란을 으깨서 빵 위에 올렸다. 이틀 연속 우리 집 식탁의 주인공은 으깬 음식이다. 어제는 수습생이 으깼고, 오늘은 원조가 으깼다. 물론 아내가 내 그릇을 보고 따라 한 건 아니다. 그런데도 괜히 으깨기 경연 대회 둘째 날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첫날 참가자는 잣을 몇 알 뿌릴지 한참 망설였고, 둘째 날 참가자는 망설임 없이 손을 멈췄다. 너무 곱게 으깨면 반죽이 되고, 너무 성글게 으깨면 재료가 따로 논다. 초록과 하양이 섞이면서도 각자 제 색을 지키고 있는 빵을 보니, 원조는 어디서 멈춰야 하는지 알고 있었다. 심사위원은 없었다. 그래도 결과는 이미 나와 있었다.
수프는 이달 들어 우리 식탁의 단골손님이다. 10월 둘째 날에도 붉은 국물이 올랐고, 개천절 아침에는 아내가 전날 끓여 둔 토마토 야채수프가 부랴부랴 아침을 차리던 나를 살렸다. 단골손님은 올 때마다 조금씩 다른 옷을 입고 온다. 오늘은 소고기를 품고 왔다.
소고기가 들어간 수프는 빨리 끓일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그 수프가 불 위에서 보낸 시간을 나는 다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건 푹 끓였다는 한마디뿐이다. 그런데 그 한마디 안에 들어 있는 시간이 꽤 길다. 연휴 동안 내가 차린 아침들은 대개 빨랐다. 삶고, 썰고, 담고, 으깨고. 아내의 평일 아침에는 그 빠름 말고 다른 것이 하나 더 들어 있다. 기다림이다. 먹는 사람은 그릇을 비우는 데 십 분이면 충분하지만, 끓이는 사람은 그보다 훨씬 오래 그 앞을 지킨다.
손님 자리로 돌아온 사람에게도 지켜야 할 예의가 있다. 맛있게 먹는 것, 남기지 않는 것, 그리고 저녁에 설거지라도 하는 것. 연휴 동안 차리는 쪽에 서 봤더니 이 세 가지가 얼마나 반가운지 알게 됐다. 차린 사람에게 제일 고마운 손님은 말이 많은 손님이 아니라 그릇을 비우는 손님이다. 오늘 나는 첫째 예의를 아침에, 셋째 예의를 저녁에 지켰다.
아들과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아침에는 그게 오늘 아내가 차린 상의 전부인 줄 알았다. 저녁에 현관문을 열기 전까지는.
10월인데도 낮에는 더웠다. 새벽 수영장에 갈 때는 긴팔을 챙길 만큼 서늘하다가도, 한낮이 되면 계절을 다시 확인하게 만들었다. 10월 첫날에는 기온이 떨어졌으니 감기 조심하자는 말이 나왔고, 엿새 전에는 날이 추워졌다며 침낭을 덮고 잤는데, 오늘은 여름이 재방송됐다. 달력은 가을인데 날씨는 아직 여름에 미련이 남은 모양이다. 그 와중에 식탁 위의 귤만은 꿋꿋하게 가을 편에 서 있었다. 날씨는 오락가락해도 아내가 고른 과일은 한번 정한 계절에서 물러서지 않는다.
회사는 신중동 쪽에 있다. 퇴근길에 중곡역까지 지하철로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둘 다 7호선 위의 역이다. 갈아탈 필요가 없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지만, 한 노선의 긴 구간을 통째로 가로질러 오는 길이다. 출근할 때는 집에서 멀어지는 방향이고, 퇴근할 때는 식탁 쪽으로 가까워지는 방향이다. 노선은 같은데 마음은 반대로 움직인다. 아침에는 서쪽으로 가로지르고, 저녁에는 동쪽으로 다시 가로지른다. 하루에 한 노선을 두 번 건너는 셈인데, 돌아오는 쪽이 늘 조금 더 길게 느껴진다. 식탁이 기다리는 방향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퇴근길 한 시간은 하루 중 가장 긴 공백이다. 회사에서 할 일은 끝났는데 집은 아직 멀다. 몸은 전동차에 실려 가고, 마음은 조금씩 먼저 집에 도착한다.
그 긴 길을 지나 현관문을 열었을 때, 아내는 저녁을 차려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에 무엇을 먹었는지는 길게 적지 않는다. 그보다 먼저 남은 장면이 있어서다. 차려진 상, 그리고 그 상 앞에서 나를 기다리던 사람. 한 시간 넘는 퇴근길의 끝에 그런 장면이 놓여 있다는 것. 지하철 노선도에는 역 이름이 다 나와 있지만, 그 끝에 차려진 식탁까지는 나오지 않는다.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설거지를 했다.
설거지는 나름 열심히 했다. 이 문장에서 중요한 건 '나름'이다. 나름은 설거지하는 남편들이 가장 아껴 쓰는 부사다. 결과에 자신이 없을 때 과정을 변호해 주는 말이기 때문이다. 개수대 앞에 선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내 기준으로는 꽤 성실했다. 오늘 내 실적은 개수대가 비었다는 데까지다. 품질 검사는 내일 아침 아내가 그릇을 꺼낼 때 끝난다. 내 설거지에는 아직 품질 보증서가 붙어 있지 않다.
오늘 하루를 다시 놓고 보니 아내는 두 번 기다렸다. 아침에는 불 앞에서 수프가 끓기를 기다렸고, 저녁에는 차려 둔 상 앞에서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 냄비는 시간이 되면 알아서 끓지만, 퇴근하는 남편은 지하철 사정에 따라 도착 시간이 들쭉날쭉하다. 어느 쪽 기다림이든, 그 끝에는 상이 차려져 있었다.
오늘의 점수를 매기면 이렇다. 아내는 아침상과 저녁상, 두 판을 차렸다. 나는 저녁 설거지 한 판으로 겨우 따라붙었다. 오늘 하루 내가 받은 상은 두 개, 내가 차린 상은 영 개. 연휴 동안 몇 번 아침을 맡았다고 이 점수 차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평일이 되면 점수판은 원래대로 돌아간다. 원래대로라는 건, 아내가 거의 모든 판을 맡는다는 뜻이다.
설거지를 마치고 아침에 찍어 둔 사진을 다시 열었다. 아침마다 식탁을 사진으로 남겨 두는 건 이제 습관이 됐다. 봄부터 이어 온 습관이다. 빵 위의 아보카도와 계란, 소고기를 넣고 푹 끓인 수프. 아침에는 먹느라 자세히 보지 못했던 것들이 화면 안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진은 늘 갓 차린 순간만 기억한다. 그릇이 비기 전, 숟가락이 들어가기 전의 식탁. 아침밥은 출근하려고 먹었고, 저녁밥은 하루를 마치려고 먹었다. 그런데 기록하려고 앉으니 두 끼 사이에 있던 시간이 함께 떠올랐다.
내가 회사에서 보낸 시간과 아내가 집에서 보낸 시간은 다르다. 나는 7호선을 오갔고, 아내는 부엌을 오갔다. 아내의 하루가 어땠는지 나는 다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건 아침에 차려져 있던 상과 저녁에 차려져 있던 상, 그 두 장면뿐이다. 그 사이의 시간은 내 몫의 기록 밖에 있다. 그래도 그 두 시간은 아침 식탁에서 한 번 헤어졌다가, 저녁 식탁에서 다시 만났다.
집밥은 매일 있으니 특별히 기억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하지만 매일 있다는 이유로 적어 두지 않으면, 그날의 식탁은 다음 날의 식탁에 금세 자리를 내준다. 어제와 오늘이 비슷해 보여도 실제로는 하루씩 다른 시간이다. 그래서 적는다. 대단한 요리라서가 아니라, 우리 집에서 실제로 먹은 밥이기 때문에.
고백하자면 오늘 아침 수프를 먹으면서는 그 안에 든 기다림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맛있게 먹고 서둘러 나갔을 뿐이다. 그건 지금, 설거지를 끝내고 사진을 다시 보면서야 눈에 들어온다. 평일의 고마움은 늘 이렇게 한 박자 늦게 도착한다.
솔직히 평일의 나는 그 당연함 위에 앉아 먹기만 하는 사람이다. 고맙다는 말을 길게 늘어놓는 것보다, 오늘의 일을 빠뜨리지 않고 적어 두는 편이 내게는 더 정직하다. 먹기만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니까.
평일의 나는 아내가 차린 두 상 사이를 달리는 전동차다. 아침 정거장에서 출발해 저녁 정거장으로 돌아온다. 아내는 그 양쪽 정거장의 역장이다. 주말에는 셋이 한 식탁에 둘러앉지만, 평일 아침에는 아들과 내가 먼저 먹고 아내는 나중에 먹는다. 역장은 늘 열차를 다 보내고 나서야 자기 자리로 돌아간다. 오늘도 역장은 마지막 전동차가 들어올 때까지 저녁 정거장을 지켰다. 그 전동차가 나였다.
적고 보니 오늘 내가 차린 건 식탁이 아니었다. 하루의 기록이었다.
아침 그릇도 저녁 그릇도 이제 다 씻겨 있다. 내일 아침 그 그릇에 무엇이 담길지는 나도 모른다. 아는 사람은 이 집에 한 명뿐이다. 그 한 명이 오늘 밤에는 푹 쉬었으면 좋겠다. 오늘 기록의 마지막 줄은 그 바람으로 남겨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