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집밥의 다정한 온기

아빠가 처음 만든 단호박 샐러드 아침

byWren

오늘 아침, 우리 집 부엌에서 신메뉴가 하나 출시됐다.

개발자는 나다. 시식단은 아내와 아들. 메뉴판에 올릴 이름은 아직 없다. 단호박과 고구마를 으깨 섞고, 그 위에 바나나와 시나몬 가루와 아보카도를 차례로 얹은 뒤, 잣으로 마무리한 샐러드다.

출시 첫날 정식 평가가 나왔다.

"맛있다."

아내의 한마디였다. 시식단 전원의 의견을 기다릴 것도 없이 나는 속으로 성공을 선언했다. 사전 홍보도 없었고 시식회도 없었다. 기획부터 생산, 출시까지 아침 한 번에 다 끝났다. 집밥에는 품평회도 없고 매출 보고서도 없다. 맛있다는 말 한마디면 다음 메뉴를 고민할 이유가 충분하다.

연휴 마지막 날, 맑은 일요일 아침이었다.


어제 나는 부엌에 출근하지 못했다. 과음한 다음 날이었고, 아침을 차리려던 나를 아내가 설렁탕집으로 데려갔다. 그 덕에 잘 먹고 잘 쉬었다. 하루를 쉬고 나니 몸이 제자리를 찾았다.

그래서 오늘 아침, 부엌으로 복귀했다. 하루 결근한 직원이 아무 일 없었다는 얼굴로 출근하는 모양새였다. 두 번의 연휴를 통틀어 따져 보면 엿새 가운데 다섯 번을 부엌에 섰다. 빠진 하루가 하필 어제였고, 빠진 사유가 하필 과음이었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개근상은 놓쳤어도 성실상 정도는 노려볼 만하다. 다행히 우리 집 부엌에는 출근 카드를 찍을 단말기도 없고, 결근 사유서를 받는 인사팀도 없다. 냄비도 그릇도 어제 일을 따지지 않았다. 부엌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든, 오늘 아침 불을 켜는 사람을 그냥 받아 준다.

그런데 복귀 첫날이라 그런지 평소처럼 익숙한 걸 차리고 싶지 않았다. 재료를 꺼내 놓고 한참 들여다봤다. 단호박, 고구마, 바나나, 아보카도, 잣, 시나몬 가루. 따로따로 보면 다 아는 얼굴들이다. 누가 알려 준 조합도 아니고, 어디서 본 요리도 아니었다. 그냥 이걸 한 그릇에 같이 담으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어놓지 말고 쌓아 보자. 옆으로 나란히가 아니라 위로 차곡차곡.

단호박과 고구마는 그저께 한글날 아침에도 우리 식탁에 올랐던 재료다. 그날은 각자 제 모양 그대로 접시에 앉아 있었다. 같은 재료라도 그대로 내놓으면 반찬이 되고, 섞고 쌓으면 요리가 된다. 이틀 사이에 재료는 그대로인데 내 손이 조금 달라졌다.

오늘은 정해진 답을 따라가기보다 내 입맛을 믿어 보기로 했다.


먼저 단호박과 고구마를 으깨 섞었다. 으깨 놓고 보니 둘은 누가 누군지 구분이 잘 안 됐다. 껍질을 입고 있을 때는 생김새부터 다른 둘이, 섞이고 나니 경계가 사라졌다. 주황빛과 노란빛이 하나로 섞여 그릇 바닥이 됐다.

그 위에 바나나를 동전처럼 얇게 썰어 올렸다. 바나나 위로 시나몬 가루를 뿌렸다. 이틀 전 한글날이었다면 계피 가루라고 불러야 했을 가루다. 그 위에 아보카도를 얹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잣.

잣을 뿌릴 때가 제일 망설여졌다. 많이 뿌리면 잣이 주인공처럼 보이고, 적게 뿌리면 안 뿌린 것만 못하다. 게다가 잣은 비싸다. 한 알 한 알에 손이 신중해지는 데는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다. 글을 쓸 때 마지막 문장을 고르는 순간과 비슷했다. 더한다고 꼭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덜어 낸다고 꼭 깔끔해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손이 멈추는 데서 멈췄다. 마지막 문장도 대개 그렇게 정해진다.

완성된 그릇을 보니 지층 같았다. 맨 아래에 단호박과 고구마로 다진 땅이 있고, 그 위로 바나나가 한 층, 시나몬이 얇은 한 겹, 아보카도가 다시 한 층. 맨 위에는 잣이 눈처럼 앉았다. 숟가락을 넣으면 위에서 아래까지 한 번에 떠지는 그릇이다. 한 숟가락 안에 층이 다섯 개. 지질학자라면 연대부터 따졌겠지만, 이 지층의 나이는 고작 아침 한 번이다.

다 만들고 나서야 재료들이 왜 서로 어울리는지 보였다. 시나몬은 고구마와도 바나나와도 사이가 좋은 향신료라, 둘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 아보카도는 단맛 위에 담백함을 한 겹 덮고, 잣은 부드러운 것들 틈에서 씹는 재미를 맡는다. 만들 때는 이렇게까지 따지지 않았다. 손이 먼저 움직였고, 이유는 나중에 따라왔다. 요리도 글도, 어떤 날은 그렇게 거꾸로 완성된다.

옆에는 삶은 계란 두 알과 찐 옥수수를 두고, 자두와 귤과 방울토마토를 담았다. 비타민 한 포와 발효콩환도 늘 앉던 자리에 앉았다. 오늘의 주인공이 처음 무대에 서는 날이라, 익숙한 얼굴들이 옆을 든든하게 받쳐 주었다.


문제는 이름이다. 재료를 다 넣어 이름을 지으면 '단호박 고구마 바나나 시나몬 아보카도 잣 그릇'이 된다. 주문하다가 숨이 찬다. 앞 글자만 따서 줄이면 '단고 바시아잣'. 이번에는 혀가 꼬인다. 어쩐지 먼 나라 섬 이름 같기도 하다. 그냥 샐러드라고 부르면 간단하다. 다행히 한글날은 지났다. 정식 이름은 숙제로 남겨 둔다. 가격도 아직 없다. 우리 집 메뉴판에서 통하는 화폐는 맛있다는 말 한마디뿐이고, 그 값은 오늘 이미 치러졌다. 아들에게 이름을 맡기면 이름보다 새 규칙이 먼저 생길지도 모른다.


아내가 맛있다고 했을 때, 나는 요리 경력에 새로운 한 줄을 추가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내가 차린 아침은 대부분 아내의 아침을 보고 배우고 흉내 낸 것이었다. 오늘 그릇에는 원본이 없다. 아내가 차려 준 아침 가운데 이런 그릇은 없었다. 처음으로 남의 답안지를 보지 않고 쓴 답이다. 커닝 없이 치른 첫 시험이었다.

그 답에 맛있다는 점수가 붙었다. 그것도 우리 집 식탁에서 가장 오래 일한 사람, 가장 많은 아침을 차려 본 사람의 점수다. 동네 사람 열 명의 칭찬보다 무거운 한 표다.

지난주 일요일에도 아내에게 칭찬을 들은 적이 있다. 그날 아내는 내가 담은 접시를 보고 예쁘게 잘 됐다고 했다. 그건 눈이 내린 점수였다. 오늘 점수는 혀가 내렸다. 일주일 사이에 칭찬이 한 칸 옮겨 갔다. 보기 좋은 아침에서 먹기 좋은 아침으로. 사진을 찍으면 보이는 칭찬에서, 먹어 봐야만 알 수 있는 칭찬으로. 어깨가 또 올라갔다. 일주일에 한 번 올라가는 어깨라면 이 정도는 봐줘도 되지 않을까. 아들의 평가는 오늘 기록에 남기지 못했다. 이번 출시는 일단 한 표로 마감한다. 가장 까다로운 심사위원의 한 표였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물론 한 번 맛있었다고 다음에도 같은 맛이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오늘의 손맛이 내일도 출근한다는 법은 없으니까. 손맛은 원래 출근부를 잘 안 지킨다.


그런데 오늘 아침 식탁에서 가장 반가운 말은 맛있다는 말이 아니었다.

밥을 먹던 아내가 말했다.

"오늘은 두통이 없어. 서울숲에 가자."

나는 그 말이 반가웠다. 맑다는 날씨보다, 두통이 없다는 그 말이 오늘 아침 가장 먼저 들은 일기예보였다.

서울숲은 지난주에 가려던 곳이다. 지난 일요일 아침, 아내는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서울숲은 다음 연휴에 가자고 했다. 그날 아내를 괴롭힌 건 심한 두통이었다. 그날 아내는 집에서 쉬기로 했고, 나는 아들과 둘이 나가 놀기로 했다. 서울숲은 그렇게 한 주 뒤로 밀렸다. 그리고 다음 연휴의 마지막 날 아침이 되어서야, 미뤄 둔 약속이 다시 식탁 위로 올라왔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몸이 따라 주지 않는 날이 있다. 아내에게는 요즘 그런 날이 종종 있다. 그래서 두통이 없다는 말은 우리 집에서 그냥 몸 상태를 알리는 말이 아니다. 오늘 하루를 어디까지 쓸 수 있는지 알려 주는 말이다. 오늘은 그 말 덕분에 하루가 집 밖까지 길어졌다.

나는 샐러드에 무엇을 더 얹을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아내는 우리가 오늘 어디로 가면 좋을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각자 다른 고민을 하던 두 사람이 한 식탁에서 같은 목적지를 갖게 됐다.


어제는 아내가 내 아침을 골랐고, 오늘은 내가 가족의 아침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아침을 먹은 아내가 오늘 하루의 행선지를 골랐다. 하루씩 번갈아 서로의 몫을 맡는 것. 우리 집 주말은 대체로 그렇게 굴러간다.

적어 놓고 보니 이틀 사이에 아침이 한 바퀴를 돌았다. 한 사람이 고른 아침이 다른 사람의 몸을 일으키고, 일어난 사람이 만든 아침이 다시 다른 사람의 하루를 연다. 어제의 설렁탕은 한 가지 색을 오래 끓인 음식이었고, 오늘의 샐러드는 여러 가지 색을 짧게 쌓은 음식이었다. 설렁탕은 시간으로 깊어지고, 샐러드는 층으로 깊어진다. 방식은 달라도 둘 다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 데는 모자람이 없었다.

언젠가 아내가 이 그릇을 따라 만드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날이 오면 우리 집 부엌의 순서가 처음으로 뒤바뀐다. 늘 따라 하던 사람이 원본이 되고, 늘 원본이던 사람이 따라 하는 날. 아마 오지 않을 날이겠지만, 상상만으로도 오늘 아침은 충분히 흐뭇하다.

물론 아내의 두통이 사라진 게 내 샐러드 덕분이라고 우길 생각은 없다. 그건 과장이고, 과장은 이 글에 어울리지 않는다. 다만 두통 없는 아침에 아내가 맛있다고 한 그릇이 하필 내가 처음 만든 요리였다는 것. 그 우연 정도는 오래 기억해 두고 싶다.


다음 메뉴가 무엇이 될지는 아직 모른다. 냉장고를 열어 봐야 안다. 메뉴 개발은 대체로 그렇게 시작된다. 문제는 개발 일정이다. 연휴가 끝나면 아내가 다시 부엌의 주인이 되고, 나는 월요일 새벽 여섯 시 수영장으로 돌아간다. 달력을 넘겨 보니 11월에는 빨간 날이 하루도 없다. 신메뉴 개발팀의 다음 출근은 주말 아침에나 기대해 볼 수 있겠다.

샐러드의 이름은 서울숲에 다녀오는 동안 떠오를지도 모른다. 숲길을 걷다 보면 단고 바시아잣보다는 나은 이름이 하나쯤 생각나지 않을까.

오늘 아침 내가 만든 그릇의 맨 아래에는 단호박과 고구마로 다진 땅이 있었다. 설거지를 마치면 나갈 채비를 할 것이다. 오늘은 그릇 속 땅 말고 진짜 땅을 밟으러 간다. 숲의 땅은 한 층뿐이라 걷기는 훨씬 수월할 것이다.

일주일 동안 달력 위에 머물러 있던 서울숲이, 오늘 드디어 달력에서 내려와 오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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