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집밥의 다정한 온기

14화. 2센티미터 자란 아들과 쌀쌀한 수요일 아침밥

byWren


수요일 새벽, 수영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들이 이미 깨어 있었다.

아들을 깨우러 갈 준비를 했는데, 정작 깨울 사람이 먼저 일어나 있었다. 할 일이 사라진 아빠는 잠깐 어색했다. 늘 하던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아침이라니. 출근 준비를 하다가 양말 한 짝을 못 찾은 것처럼 익숙한 순서에서 한 칸이 비어 있었다.

맑은 아침이었지만 공기는 쌀쌀했다. 며칠 전에는 10월답지 않게 덥더니, 어제는 비가 세차게 쏟아졌고, 오늘은 다시 찬 기운이 찾아왔다. 이번 주 날씨는 옷장을 뒤지는 사람처럼 하루마다 다른 걸 꺼내 입었다. 수영장에서 몸을 깨우고 온 내게는 그 차가운 공기가 제법 또렷하게 느껴졌다.

아들은 스스로 일어났고, 나는 그 모습을 바라봤다. 별일 아닌 것 같지만 부모에게는 이런 아침이 은근히 반갑다. 아이를 깨우는 일은 늘 하던 일인데, 어느 날 그 일이 필요 없어지는 순간이 온다. 부모는 한 가지 일을 덜 하면서도 어쩐지 뭔가를 얻은 기분이 든다.

이틀 전 월요일에는 내가 아들을 깨웠다. 그때는 연휴가 끝났는데도 스스로 일어나는 초등학교 5학년이 전국에 몇이나 될까 생각했다. 오늘은 그 생각이 너무 성급했다는 걸 알았다. 전국의 통계는 모르겠지만, 우리 집에는 한 명 있었다. 아빠의 예측은 이틀 만에 틀렸고, 다행히 기분 좋게 틀렸다.

아들이 아내 옆에 섰을 때 또 다른 변화가 눈에 들어왔다. 키가 제법 커 보였다. 늘 보는 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을 뿐인데, 그 사이의 높이 차이가 전보다 줄어든 것 같았다.

매일 보는 사람의 키는 잘 보이지 않는다. 어제의 아들과 오늘의 아들은 거의 같은 키다. 하지만 그 ‘거의’가 두 달 쌓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루치 변화는 눈에 띄지 않아도 두 달치 변화는 어느 아침 눈앞에 나타난다.

그래서 키를 쟀다. 마지막으로 확인한 지 두 달쯤 지났다. 숫자는 대략 2센티미터 늘어 있었다.

2센티미터.

자로 보면 별것 아닌 길이다. 그런데 아들의 키에 붙으니 아침의 계획을 바꿔 놓았다. 수영 가방을 내려놓고, 아들 옆에 서서 키를 재게 만드는 숫자였다. 두 달 동안 나는 수영장 레인을 오가며 비슷한 동작을 반복했고, 아들은 그사이에 위로 자랐다. 같은 시간을 보냈는데 내 쪽에는 수영 기록이, 아들 쪽에는 키 기록이 남았다. 공평하지 않은 성장표다.

우리 집에는 오래전부터 추진해 온 프로젝트가 하나 있다. 아들을 180센티미터까지 키우고 싶다는 것.

아내와 나는 키가 큰 편이 아니다. 그러니 이 목표는 부모의 신체 조건만 놓고 보면 꽤 야심 차다. 부모가 물려줄 수 없는 것을 생활 습관으로 조금이라도 거들어 보자는 마음이다. 물론 키는 주문한다고 배송되는 물건이 아니다. 180센티미터를 장바구니에 담아 결제할 수 있다면 얼마나 편하겠는가. 현실은 그렇지 않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부터 챙긴다.

첫 번째는 잠이다. 아들은 밤 9시 반이면 잠자리에 든다. 늦어도 10시 전에는 재우려고 한다. 이 규칙은 아들에게는 잘 적용되지만, 밤늦게까지 글을 쓰는 아빠에게는 예외가 많다. 규칙을 만든 사람이 예외를 누리는 건 썩 모범적인 운영 방식은 아니다. 그래도 아이의 잠만큼은 지키려고 한다.

두 번째는 아침밥이다. 아침을 거르지 않게 챙겨 먹인다. 세 번째는 운동이다. 월요일과 수요일, 금요일에는 농구를 하고 화요일과 목요일, 토요일에는 복싱을 한다. 달력만 보면 초등학교 5학년의 일정표가 회사 다니는 아빠보다 빽빽하다.

주말에는 나도 아들과 함께 복싱을 한다. 아들의 운동 상대가 가끔 아빠라는 점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상대가 봐주지 않는다고 투덜댈 수도 있고, 아빠가 지쳐도 경기는 끝나지 않는다.

월수금에는 나도 새벽 수영을 한다. 아빠는 물속에서 레인을 오가고, 아들은 오후에 농구공을 쫓는다. 같은 날 서로 다른 장소에서 땀을 흘리는 셈이다. 다만 목적은 다르다. 아들의 성장판은 아직 출근 중이고, 내 성장판은 오래전에 퇴근했다. 아들은 키를 늘리려 하고, 나는 지금 가진 키라도 잃지 않으려는 쪽이다. 한쪽은 공격, 다른 한쪽은 수비다.

그렇다고 우리가 키만 보고 사는 건 아니다. 180이라는 숫자는 바람이지 약속이 아니다. 얼마나 자랄지는 아들의 몸이 결정할 일이다. 우리가 챙기는 잠과 밥과 운동은 키를 보장하는 비법이라기보다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도록 도울 수 있는 생활이다. 목표에 도달하지 못해도 습관은 남는다. 그 습관이 나중에 자기 몸을 돌보는 힘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오늘 아침 식탁에는 소고기와 방울토마토가 놓였다. 옆에는 토마토야채수프, 빵, 삶은 계란이 있었다. 메가도스도 빠지지 않았다. 키를 재는 날이라고 음식을 달리 준비한 건 아니다. 늘 먹던 아침이었다.

그런데 키가 2센티미터 자랐다는 걸 알고 나니 평범한 음식들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이 한 끼가 아이를 몇 밀리미터 자라게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오늘도 아침을 먹고, 내일도 먹고, 그런 날들이 이어진다는 건 안다.

토마토도 두 가지 모습으로 식탁에 있었다. 방울토마토는 접시 위에서 동그랗게 제 모습을 지켰고, 토마토야채수프에서는 다른 채소와 어울려 국물이 되었다. 같은 재료가 한쪽에서는 자기 얼굴을 드러내고, 다른 쪽에서는 여러 재료와 함께 맛을 만든다.

아들의 성장도 비슷할 것이다. 키가 크는 건 눈에 보이는 변화지만, 그 안에는 잠과 식사, 운동,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과 친구들 사이에서 배우는 일들이 함께 섞여 있다. 부모가 알아보는 건 그중 일부뿐이다.

아침을 먹은 뒤 아들은 웃으며 말했다.

“내년이면 아빠보다 더 클 것 같아. 운동 더 열심히 해야겠다.”

말끝에는 자신감이 묻어 있었다. 아빠를 추월할 계획을 세운 사람이 자기 몸에 투자까지 하겠다니, 제법 진지한 프로젝트다. 나는 그 선언을 기꺼이 접수했다. 아들이 나보다 커지는 건 내가 져도 기분 좋은 시합일 테니까.

지금은 아직 내가 아들보다 크다. 이야기를 나눌 때 내 시선은 조금 아래를 향한다. 하지만 내 키는 몇 년째 그대 로고, 아들의 키는 계속 자라는 중이다. 어느 쪽이 유리한지는 굳이 계산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내년이면 정말 아들이 나보다 커질까. 그날이 오면 나는 아들과 이야기할 때 처음으로 턱을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아직 오지도 않은 날인데 괜히 자세부터 신경 쓰인다. 키는 더 자랄 수 없으니 등이라도 꼿꼿하게 펴야겠다.

아이를 키운다는 말은 참 이상하다. 어릴 때는 아이를 들어 올려 안고, 신발을 신겨 주고, 손을 잡고 길을 건넌다. 그러다 어느 날은 아이가 스스로 일어나고, 자기 운동 가방을 챙기고, 아빠보다 커질 미래를 말한다. 부모가 해 주던 일 가운데 일부가 하나씩 필요 없어지는 동안 아이는 자기 몫의 일을 늘려 간다. 오늘 아침 내가 아들을 깨울 필요가 없었던 것처럼.

아들이 180센티미터에 도달할지, 내년이면 정말 나보다 커질지는 아직 모른다. 키를 재는 자는 숫자를 보여 주지만, 그 숫자가 어디까지 갈지는 알려 주지 않는다.

그래서 다음에 키를 잴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그사이에도 아침은 올 테고, 아들은 밥을 먹고 학교에 가고 운동을 할 것이다. 나는 새벽 수영을 다녀와 아들이 깨어 있는지 확인하게 될지도 모른다. 오늘처럼 이미 일어나 있다면 깨우러 가던 발걸음은 또 잠깐 할 일을 잃을 것이다.

그런 아침이 자주 오면 좋겠다. 키가 얼마나 자랐는지보다 먼저, 아들이 스스로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면 좋겠다. 물론 180센티미터도 여전히 바란다. 부모의 욕심이 그렇게 쉽게 사라질 리 없다.

오늘 아침 기록에는 숫자 두 개가 남았다. 두 달, 그리고 2센티미터. 아들은 그사이에 자랐고, 나는 그 사실을 오늘에야 알아차렸다.

언젠가 정말 아빠보다 커진 날에는 키를 다시 재고 싶다. 그때는 아마 자보다 먼저 웃음이 나올 것이다. 아들이 고개를 조금 숙여 내게 무언가를 말하고, 내가 고개를 들어 대답하는 장면을 상상해 본다.

그날에도 식탁에는 아침밥이 놓여 있으면 좋겠다. 아들이 얼마나 커졌는지 확인하는 일보다, 함께 앉아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기뻐하면서.

오늘 아침의 2센티미터는 그날을 향해 가는 작은 표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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