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카디구티에레스증후군

by소여

다음 날 아침, 토리와 함께 Y병원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남편이 다른 지역으로 잠시 파견을 나가서 토리의 외할아버지와 함께 갔다.

3개월 전 검사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는 두려움과 걱정이 앞섰지만, 지금은 도리어 마음이 차분했다.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든 나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설령 토리가 움직이지 못하는 원인을 끝내 찾지 못한다 해도, 그저 평소처럼 재활에 전념하며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가는 토리를 지켜봐 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가 토리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자 의무니까.

그렇게 비장한 마음을 품에 안고 나는 다시 Y병원 어린이병원 소아임상유전학클리닉에 도착했다.

접수 후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정적 속에서, 토리의 외할아버지는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토리가 움직이지 못하는 게, 다 내 탓은 아닐까?”

“그런 말씀 마세요. 절대 아니에요.”

사실 토리의 외할아버지는 지체장애 3급 판정을 받은 상태였다.

토리의 외할아버지는 자신의 장애가 혹여나 토리에게 대물림된 것은 아닌지 깊은 우려에 빠져 있었다.

자신의 불편한 몸 때문에 죄바카라감을 느끼는 아버지의 모습은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자식이 아픈 것에 대해 부모가 죄바카라감을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처음에는 토리를 조산하고, 결국 나 때문에 토리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죄바카라감에 시달렸었으니까.

단 하루라도 더 품에 품고 키워야 했는데, 뱃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며 몸무게를 불려줬더라면 아이가 세상에 나와도 조금은 더 튼튼하게 태어나지 않겠느냐는 후회…

아마 일찍 아이를 만난 엄마라면, 한 번쯤은 그런 후회를 해봤을 것이다.

토리 외할아버지의 말에 마음이 뒤숭숭했지만,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일은 여전했다.

이번에도 1시간이라는 시간이 흐른 뒤 토리의 차례가 왔다.

나는 토리의 외할아버지, 그리고 토리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갔다.

교수님은 염색체 마이크로어레이(CMA) 검사에서는 토리가 움직이지 못하는 원인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나는 담담하게, 아 그냥 원인 없이 못 움직이는구나… 생각하며 다음 말을 기다렸다.

교수님의 염색체 마이크로어레이(CMA)에 대한 비유는 ‘바다’라고 하셨다.

CMA 검사로는 광활한 바다를 확인할 수는 있어도, 그 심연 속에 어떤 물고기가 어떤 모습으로 헤엄치고 있는지까지는 일일이 짚어내기 어렵다는 설명이었다.

교수님 말씀은 지금 결과는 바다의 표면은 볼 수 있었지만, 그 안의 물고기 종류와 상태까지는 알 수 없으니 더 정밀한 검사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교수님은 염색체 검사보다 더 정밀한 유전자 검사를 권유하며, 토리의 경우는 흔치 않으므로 연구 목적으로 진행하여 검사 비용 없이 지원해 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당일에는 검사할 수 없다며 2주 뒤에 다시 오라는 교수님의 말에, 나는 감사 인사를 몇 번이고 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검사 예약을 마쳤다.

2주 뒤, 다시 토리와 Y병원에 방문해서 검사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했다.

연구 목적으로 진행되는 만큼 작성해야 할 동의서도 많았다.

검사자의 개인 정보 동의서와 유전자 검사에 대한 동의서, 그리고 토리의 임상 기록 공유에 대한 동의서였다.

나는 이렇게 해서라도 토리의 상태를 공유해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모든 서류 작성을 마친 뒤의 검사 과정은 간단했다.

염색체 마이크로어레이(CMA) 검사와 마찬가지로 토리의 혈액을 채취하면 되었으나, 부모의 혈액도 함께 채취해야 한다는 점이 달랐다.

그렇게 유전자 검사 역시 염색체 마이크로어레이(CMA) 검사 결과처럼 3개월 뒤에 나온다고 안내받았다.

검사를 다 마친 후, 토리와 함께 다시 병원을 나서며 3개월 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받아들이겠다고 마음을 다잡으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석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결과를 확인하러 가는 길에도 남편은 파견지에서 자리를 비운 상태라 토리의 외할아버지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또 한 시간쯤 기다렸을까, 토리의 이름이 호출되었다.

결과를 듣기 위해 들어선 진료실은 이번이 벌써 네 번째였다.

이미 익숙해진 공간이었기에 교수님의 표정만으로도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교수님은 내게 종이를 두 장 정도 건네주며 토리의 결과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토리가 움직이지 못했던 이유가 나왔습니다. 일단 이 종이부터 살펴보세요. 병명이 조금 긴 편인데, ‘아이카디구티에레스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이름을 딴 병이라 생소하시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환자가 120명밖에 없는 매우 희귀한 병입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아이카디구티에레스증후군’에 대해 적혀있는 종이를 읽었다.

뇌의 염증성 손상과 기저핵의 석회화, 백질이영양증을 동반한 백질 손상부터 뇌 위축과 발달 지연, 근육 경직과 발작, 소두증에 이르기까지 온갖 신경학적 증상들이 빼곡히 나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내 시선이 멈춘 곳은, 중증 환자면 10세 이전 사망이라는 섬뜩한 단어였다.

토리의 결과를 어떤 것이든 받아들이고 아무렇지 않은 듯 재활에 매진하며 열심히 살아가겠다고 긍정적으로 다짐했지만, ‘사망’이라는 글자는 내 마음을 산산조각 냈다.

나는 터져 나오는 눈물이 도저히 컨트롤하려고 해도 되지 않았다.

마치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쉴 새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지난 2년여의 시간을 꿋꿋이 버텨왔건만, 그날 진료실에서 나의 세계는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교수님께 “토리 죽어요? 죽는 건가요? 치료할 방법은 정녕 없는 건가요? 서울로 가면 나을 수 있을까요? 제발 살려만 주세요.” 하고 절규했다.

교수님은 아무 말 없이 그저 티슈 한 장을 뽑아 내게 건네주시며 말을 이으셨다.

“현시점에서 쓸 수 있는 치료제는 없습니다. 그저 합병증이 오지 않게 관리하며 재활에 전념하는 수밖에요. 그나마 토리가 지금 발작을 일으키지 않는 게 천만다행입니다. 나중에 간 초음파로 간 수치와 간의 크기 변화도 꼭 확인해 봐야 합니다.”

나는 우느라 교수님이 말씀해 주시는 이야기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죽음’이라는 단어에 꽂혀서는 더욱 깊은 절망감에 빠져들었다.

교수님께서는 아이카디구티에레스 증후군이 산정특례 대상이 된다며, 마지막 정밀검사를 마친 후 등록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또한 이 검사가 연구 목적으로 진행되는 만큼 비용 부담은 없을 거라고 덧붙이셨다.

하지만 그런 말들이 지금을 내게는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했다.

나는 계속 펑펑 울면서 토리와 함께 진료실 밖으로 나섰다.

진료실 밖에서 기다리던 토리의 외할아버지는 내가 자꾸 울고 있으니 화들짝 놀라며 휠체어를 몰고 진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토리의 외할아버지는 교수님에게 토리에게 무슨 일이 있느냐며, 딸아이가 왜 저러느냐고 물었고, 나는 황급히 토리 외할아버지의 휠체어를 붙잡고 다시 진료실 밖으로 나섰다.

난 토리의 외할아버지에게 토리의 병이 적혀있는 종이를 조심스레 건네며 말했다.

“토리 희귀병이래.”

“고칠 수 없대?”

“고칠 수 없대. 검사 결과 나오면 산정특례 등록도 해준다니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하셨어.”

짧은 침묵 후, 우리는 추가 검사를 위해 토리의 채혈을 진행했고, 결과는 3개월이 아닌 한 달 뒤에 나온다는 안내를 받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자바카라과 절망이 내 머릿속을 헤집었다.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기에 내 아이에게 이런 시련이 닥친 걸까.

착하게 살면 복이 온다던 말은 다 거짓이었나.

삶을 지탱하던 힘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무엇을 위해 이토록 견뎌왔는지 회의감만이 밀려왔다.

내 삶에 평화가 찾아오긴 할까.

내가 없으면 토리는 누가 지켜줄까.

아무것도 못 하는 아이를 두고 떠날 수도 없는, 지독한 부정의 늪이 나를 괴롭혔다.

그때, 카시트 안의 토리가 꿈틀대더니 거북이처럼 고개를 꼿꼿이 세워 내 얼굴을 살폈다. 마치 ‘엄마, 왜 울어? 나 봐, 이제 고개도 잘 든다?’라며 위로를 건네는 듯했다.

아이의 위로가 닿는 순간 무너져 내리던 마음이 차곡차곡 다시 쌓이며 희망이 싹트기 시작했다.

마음을 잠식하던 어둠도 하나둘씩 빛에 지워져 갔다.

‘토리를 지키자.’

평소처럼 토리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그 속에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재활에 매진하며 잘 키워내자.

나보다 더 힘들 아이가 정작 나를 위로하고 있구나.

나는 눈물을 닦아내며 애써 토리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게 나와 토리는 ‘아이카디구티에레스증후군’이라는 거대한 벽에 맞서 싸우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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