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병원으로 향하는 길

by소여



마침내 유전자 검사를 위해 Y병원으로 향하는 날이 밝았다.


우리 토리는 어떤 결과와 마주하게 될까.


희망의 빛을 발견할 수 있을까, 아니면 벼랑 끝으로 밀려나는 절망을 맛보게 될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무미건조한 통보에 그치게 될까.


나는 Y병원에서 방문 시 들고 오라는 진료 의뢰서, 토리의 진단서, 검사결과지, 그리고 MRI CD를 챙겨 다시 한번 가방 속을 꼼꼼히 확인했다.


필요한 것을 다 챙긴 걸 확인한 뒤 우리 세 사람은 Y병원으로 향했다.


그날 날씨는 더없이 맑았고 바람마저 상쾌했다.


나는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도 부디 지금의 가벼운 마음을 간직한 채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집에서 Y병원까지는 차로 1시간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토리는 여느 때처럼 나들이라도 가는 양,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무척이나 들떠 있었다.


우리 토리는 밖으로 나가는 것을 참 좋아하는 아이였다.


부디 좋은 결과가 나와 치료법이 있다는 소식을 듣기를, 그리고 토리가 스스로 걸으며 마음껏 세상을 누빌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그렇게 우린 Y병원 어린이병원 앞에 도착했다.


나는 토리를 품에 안고 소아임상유전학클리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료실 앞에는 이미 많은 환자들이 대기 중이었다.


아이들의 연령대는 아주 갓난아이부터 사춘기 직전의 청소년까지 다양했다.


그 아이들의 눈동자에는 각기 다른 빛깔의 희망과 막연한 두려움이 공존했다.


엄마의 품이 좋아 영문도 모른 채 해맑게 웃는 아이와, 병원의 공기에 눌려 금세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교차했다.


그 풍경 속 부모님들의 눈빛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결같은 간절함을 담고 있었다.


‘제발, 내 아이만은 아프지 않기를.’


그것은 부모라면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 새겨두었을 바람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나는 품에 토리를 안고 안내데스크로 가서 진료 접수를 마쳤다.


간호사님은 토리의 키와 몸무게를 체크하며 대기가 조금 많으니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잠시 후, 간호사님은 진료에 들어가기 전 유전클리닉 초진 설문지를 작성해 달라고 했다.


설문지에 적혀있는 항목들은 이러했다.


부모의 현재 연령과 출산 당시의 나이 및 기저 질환과 복용 약물, 수술 이력 등 부모의 건강 상태를 묻는 질문부터, 아이의 출생일과 성별, 임신 주수, 출생체중, NICU 입원 여부, 형제자매 유무, 그리고 발달 지연 시기까지 아이의 성장 과정 등이었다.


그 외에도 현재 토리의 진단과 검사결과와 가족 가계도 (양가 조부모님, 부모님, 토리)를 표시하는 게 있었다.


문항 하나하나를 작성할 때마다 토리가 NICU에 머물던 시절의 기억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유리창 너머로 산소 호흡기에 매달려 작고 가냘픈 몸을 떨고 있던 토리의 잔상과, 전화 벨소리 하나에도 심장이 가라앉던 그 절박한 나날들’(NICU에서는 전화가 오면 아이의 상태가 나빠졌다. 혹은 기저귀나 물티슈가 떨어졌으니 가지고 와달라는 단순한 요청이었다) 그리고 백질연화증을 판정받은 뒤 퇴원하자마자 재활에 몰두해야 했던 힘들었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갔다.


당시의 기억은 형언할 수 없는 괴로움이었으며, 끝이 보이지 않는 지옥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그 고통마저 토리가 치열하게 생을 버텨온 증거가 되었고, 이제는 아픈 흉터가 아닌 우리가 함께 맞서 싸워 얻은 훈장처럼 다가왔다.


나는 그때의 토리가 온 힘을 다해 버텨주었기에 지금 밝고 건강한 모습이 있는 것이라고, 이 순간 또한 훗날 지나온 시간의 소중한 조각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설문지를 다 작성한 후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토리의 진료 순번을 기다렸다.


약 한 시간 정도 흐른 뒤, 마침내 토리의 이름이 호출되었고 나는 교수님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토리의 상태를 상세히 말하고, 재활 선생님이 들려주셨던 사례를 조심스레 꺼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원인이 밝혀져 주사 치료를 통해 다시 걸을 수 있게 된 아이의 이야기였다.


토리의 MRI 결과지를 살피던 교수님의 표정이 점차 어두워졌다.


“백질연화증이 맞긴 한데, 손상 부위가 생각보다 적군요. 이 정도라면 보행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데…”


교수님의 말은 내가 지금까지 붙잡고 있던 믿음을 단숨에 뒤흔들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심장은 차갑게 식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토리가 걷지 못하는 이유가 오직 백질연화증 때문이라고 믿어 왔으니까.


교수님은, 내 희망적 사례를 무색하게 만들 만큼 무거운 침묵 끝에 조심스레 말을 이으셨다.


“일단 검사부터 해보죠. 재활의학과에서도 토리의 케이스가 매우 특이하다고 판단해 이쪽으로 보내신 모양입니다. 우선 염색체 마이크로어레이(CMA)를 실시하고, 여기서 원인이 나오지 않는다면 더 정밀한 유전자 검사로 넘어가야 합니다. 비용 문제가 걸림돌이 될 텐데, 만약 토리에게 이상이 있다면 연구 과제로 등록해 무상 검사를 진행하는 방안도 고려해 보겠습니다.”


그 말에 나는 안도감과 막막함이 뒤섞인 묘한 감정에 휩싸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난 떨림이 멈추지 않는 목소리로 교수님께 매달리듯 물었다.


“만약에, 전부 다 확인했는데도… 백질 손상 정도로는 걸을 수 있어야 하는데 토리가 못 움직이는 거라면, 아무 원인도 없이 그저 이렇게 못 움직이는 건가요?”

“맞아요. 원인을 규명하지 못하는 사례가 훨씬 많습니다.”


교수님의 담담한 대답은 마치 날카로운 송곳처럼 내 심장을 파고들었다.


우리는 텅 빈 마음을 이끌고 진료실 밖으로 나와 수납 절차를 밟았다.


염색체 검사인 마이크로어레이(CMA) 비용은 80만 원 후반 대였다. 실손 보험을 청구하면 하루 한도인 20만 원 정도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검사 과정은 단순했다. 토리의 피를 뽑고 가족관계증명서를 첨부하여 제출하면 끝이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3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린다는 말에, 나는 토리의 병명이 제발 밝혀지길 간절히 기도했다.


그렇게 우리는 가라앉은 마음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토리는 내 속도 모르고 창밖 풍경이 즐거운지 연신 까르르 웃어댔다.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었지만, 토리만큼은 언제나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빌었다.


그렇게 3개월이라는 기다림을 품은 채, 우리는 다시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시작했다.


토리는 주 4회 재활을 하고, 어린이집을 다니고, 친구들과 좋은 추억을 쌓으며 건강하게 지냈다.


나는 그런 토리를 보며 불안을 억누른 채, AI와 의학 지식을 뒤져가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시간은 무심히 흘러, 토리의 검사 결과를 마주하기 하루 전날에 이르렀다.


‘… 제발, 토리가 치료할 방법이 있길.’


간절한 기도를 품은 채, 나는 겨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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