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후, 토리의 아이카디구티에레스증후군 판정과 함께, 토리가 정확히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 정밀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 밝았다.
결과를 기다리는 한 달 동안, 운동 발달 속도가 느리다는 것 외에는 다른 이상이 없었기에, 나는 내심 토리의 병이 오진이길 바라는 이기적인 희망을 품고 있었다.
인터넷으로 찾아본 아이카디구티에레스증후군은 발병 시기에 따라 조기 발병형과 후기 발병형으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했는데, 그 특징을 정리하면 이러했다.
조기 발병형: 출생 전후 또는 생후 매우 이른 시기에 증상이 나타나는 형태
후기 발병형: 출생 당시에는 비교적 뚜렷한 증상이 없다가 생후 수개월에서 1년 이후 신경학적 증상이 나타나는 형태
내가 본 토리는 어쩐지 후기 발병형인 것 같았다.
신생아 시기에는 별다른 이상이나 발작 없이 수유도 잘 해냈기 때문이다.
아이카디구티에레스증후군은 MRI상 나타나는 백질 변화가 다른 백질 질환과 구분이 모호하다는 설명이 있었다.
그래서 토리 역시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백질연화증인 줄로만 알았다.
혹시라도 이 글을 접하게 될 백질연화증 아이의 부모님들께 당부드리고 싶다.
토리처럼 백질 손상은 가벼움에도 운동 발달이 유독 더디다면, 유전자 검사를 진지하게 고려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치던 찰나, 진료실 안에서 토리의 이름을 불렀다.
교수님께서는 다시 결과를 봐도 토리는 ‘아이카디구티에레스증후군’이 맞고, 유형은 RNASEH2B 유전자와 관련된 AGS2 이며 신생아기에 뚜렷한 증상이 없었기 때문에 후기 발병 양상에 해당한다고 설명해 주셨다.
부모 세대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병적 유전자 변이가 토리 세대에서 발현된 유전질환이라는 말씀이었다.
그러면서 만약 토리가 아이를 낳는다면, 50%의 확률로 동일한 증후군을 가진 아이가 태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이셨다.
교수님께서는 지난 한 달간 토리의 상태를 물으셨다.
나는 토리가 아이카디구티에레스증후군의 증상이 운동발달지연 외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뜻밖의 희망적인 소식을 전해 들었다.
“토리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만 주의 깊게 살펴봅시다. 그때까지 별다른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다행히 질환을 품은 채 평생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그전까지는 마음을 놓지 마세요. 증상이 언제, 어떻게 발현될지 알 수 없으니까요. 발작 또한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엄마로서 나는 토리가 오진이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한편으로는 이 정도 결과도 내게는 최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은 토리가 현재 발작도 없고 안정적인 상태이니, 1년 뒤 재활의학과에서 발달 검사를 받은 후 그 결과지를 지참하여 다시 내원하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교수님께 감사의 인사를 건넨 뒤 그나마 희망적인 소식을 품에 안은 채,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병원을 나왔다.
이제 토리와 함께 헤쳐 나가야 할 긴 여정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소아청소년과 교수님의 조언을 따라 '아이카디구티에레스증후군'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고, 토리는 변함없이 주 4회 재활 운동에 매진하며 조금이라도 더 나은 내일을 꿈꾸기로 했다.
토리의 상태는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기적처럼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다.
허리에 힘이 전혀 없던 토리는 이제 허리를 받쳐주는 긴 의자에 앉히면 스스로 중심을 잡고 제법 오래 버텼으며, 심지어 의자 손잡이를 붙잡고 일어서려는 시도까지 보였다.
나는 그 시도를 보고 예전에 토리가 범보의자조차 버티지 못하고 스르륵 미끄러지던 모습이 문득 머릿속을 스쳤다.
목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한 채 필사적으로 버티려 애쓰던 그 가녀린 몸짓…
나는 그 생각만 하면 여전히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그러나 지금의 토리는 그때와 달랐다.
스스로 의자 손잡이를 붙잡고 일어서려는 의지를 온몸으로 증명해 보이지 않는가.
나는 좋아지고 있는 토리를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백질연화증과 뇌병변, 그리고 아이카디구티에레스증후군이라는 무거운 이름의 질병들을 딛고, 토리가 이토록 강인하게 생명의 꽃을 피워내고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홀로였으면 불가능했을 기적이다.
수많은 사람이, 우리의 손을 잡아주고 응원과 기도를 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죽는 그 순간까지 이 은혜를 잊지 않고 토리와 함께 감사하며 살아가리라 다짐했다.
한 번은, SNS에서 토리의 사진을 보고 토리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는 분이 계셨다.
그분은 서울에서 사진작가를 하시는 분이셨다.
그분은 토리의 맑은 눈망울과 미소 속에 담긴 생명력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토리가 몸을 가누기 힘든 상태라 촬영할 수 있을지 우려 섞인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작가님은 예전에 뇌병변 아이를 찍었던 적도 있다며, 그런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웃으며 안심시켜 주셨다.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 날짜를 정해 그분을 뵙기로 했다.
스튜디오 문을 열자마자 작가님은 밝은 표정으로 우리를 맞아주셨다.
작가님의 세심한 배려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토리는 낯선 스튜디오임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웃으며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작가님은 토리의 이야기를 영상화하여 스튜디오 채널에 게시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 순간 나는 몸을 가누지 못해도 충분히 아름다운 모습을 담을 수 있으며, 아이에게 불가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날의 촬영은 우리 가족에게 잊지 못할 기적 같은 선물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행복한 추억을 만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얼마 후, 스튜디오에서 사진 촬영했던 사진이 도착했다.
작가님의 따뜻한 렌즈를 거친 토리는 세상 그 누구보다 아름다운 아이의 모습으로 사진에 담겨 있었다.
나는 이 사진처럼 토리의 미소가 영원하기를, 그래서 그 누구보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성장하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