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희망, 유전자 검사

by소여

재활 횟수를 주 4회로 늘리고 어린이집에서 다양한 자극을 접하게 되자, 토리는 눈에 띄게 성장했다.


씹는 힘이 약해 뒤늦게까지 이유식에 의존해야 했던 토리는 이제 일반식을 먹을 수 있을 만큼 몰라보게 좋아진 것이다.


늘 죽만 삼켜온 토리의 혀는 다양한 맛을 배우며 새로운 맛의 지평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이제는 제 입맛에 맞는 것만 찾는 귀여운 편식도 시작했다.


한때는 삶은 단호박을 가장 좋아하던 아이가, 이제는 단호박을 보면 혀를 내밀어 정중히 거절할 만큼 제법 자존심도 세우는 모습을 보였다.


토리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알아갈 때마다 나 역시 즐거움을 느꼈다.


당시의 나는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토리에게 맛있는 식사를 본격적으로 대접하겠다며 호기롭게 장담했다.


그러나 토리는, 엄마의 사랑이 가득 담긴 밥상보다, 어린이집 급식이나 아니면 마트에서 산 덮밥소스를 더 선호했다.


그렇게 토리의 밥은 토리보다 내 입으로 더 많이 들어갔다.


결국 토리의 입맛을 사로잡는 것은 나의 정성이 아니라, 시판 제품의 자극적인 맛이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이상적인 육아의 상상과 실제 육아의 현실이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 절감하게 된다.


정성을 쏟은 엄마표 요리보다 시판 제품을 반기는 모습, 그리고 아이의 심장 소리를 들으면 아이가 엄마의 머리를 쓰다듬는 다정한 풍경을 꿈꾸며 토리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면,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내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헛웃음을 삼키며 씁쓸한 현실을 직시했다.


하지만 그런 아이의 행동마저도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토리를 유모차에 태우고 하원하던 평범한 날이었다.


놀이터에서 토리 또래 아이가 엄마와 다정하게 손을 잡고 미끄럼틀을 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 다정한 장면을 보며, 나도 언젠가 토리와 함께 저 일상을 보낼 수 있는 날이 올까 하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토리도 그 아름다운 모자의 모습이 부러웠던 걸까? 이 아이 역시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토리와 직접적인 대화는 불가능했지만, 그 눈빛은 토리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었다.


나는 그 눈빛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유모차를 밀며 토리와 처음으로 놀이터로 향했다.


만약 토리가 다른 아이들처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면, 지겹도록 찾아왔을 장소였다는 사실이 못내 마음을 아리게 했다.


그럼에도 나는 토리와 함께 이곳에 왔다.


막상 놀이터에 도착하니 토리가 직접 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토리를 미끄럼틀에 태워 보았다.


어설프게 내 두 손으로 어깨를 꽉 붙잡은 채로, 천천히 미끄러지는 토리…


하지만 토리는 처음 타보는 미끄럼틀이 즐거웠는지, 환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어설픈 첫 미끄럼틀놀이는 토리에게는 큰 경험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5분 정도 토리를 미끄럼틀에 태워주며 놀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10kg가 넘는 아이를 품에 안듯 붙잡고 미끄럼틀을 오르내리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허리도 아프고 손도 후들거려서 “토리야 이제 가자~” 하니 토리는 더 놀고 싶어서 어리광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미끄럼틀 말고 또 뭐 없나 놀이터를 둘러봤다.


미끄럼틀 맞은편에 흔들 목마가 보였다.


저것도 내가 토리의 허리만 잡고 흔들어준다면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토리를 안아 들고 조심스럽게 흔들 목마 앞으로 다가갔다.


흔들 목마 위에 토리를 앉히고 양옆으로 토리의 허리를 꼭 붙잡았다.


그리고 내가 자력으로 흔들어줬다.


혹시라도 토리가 떨어질까 봐 노심초사했지만 토리는 신이 나서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미끄럼틀을 탈 때처럼 손목과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지만, 토리가 즐거워하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렇게 토리와 나의 첫 놀이터 나들이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음에도 토리랑 같이 놀이터에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토리가 몸을 좀 더 가눠서 더 많은 놀이기구를 마음껏 즐길 수 있기를 바라며 작은 소원을 빌었다.


다음날 아침


최근 들어 토리의 상태가 점차 나아지고 있었기에, 재활을 하면 분명 더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품으며 평소와 같이 재활을 시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재활 선생님께서는 토리가 재활 횟수에 비해 성장 속도가 더디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지난번에 언급하셨듯, 토리의 상태가 일반적인 뇌병변 아동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그러던 중 선생님은 토리처럼 보행이 어려웠던 아이가 유전자 검사로 원인을 찾아낸 뒤, 주사 치료를 통해 다시 걷게 된 사례가 있었다며 조심스레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가슴이 두근거리며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머릿속을 스치기 시작했다.


혹시 토리도 그 아이처럼 주사치료로 걷게 된다면, 더 신나게 놀이터에서 놀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상상만으로도 가슴 뭉클해졌다.


때마침 내일은 재활의학과 외래이기도 해서 방문할 때 꼭 한번 여쭤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재활센터에서 돌아온 직후, 그 희망 같은 한 줄기 빛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토리에게 두 발로 땅을 딛고 서는 기적이 일어날 수만 있다면, 나는 나의 모든 것을 전부 바쳐도 아깝지 않았다.


그렇게 희망을 품고 재활의학과 외래를 찾았다.


나는 교수님에게 어제 재활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유전자 검사로 원인을 파악한 아이가 주사 치료 후 보행이 가능해졌다는 말을 전하자, 교수님도 그런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드물기 때문에 큰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답하셨다.


교수님은 토리를 유심히 살피더니, 팔다리의 근력이 또래의 평범한 아이들과 비슷하고 강직도도 없다는 점에 주목하셨다.


그리고 무엇보다 백질연화증이 있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유독 허리의 발달만 생후 2개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을 이상하게 여기셨다.


그래서 의뢰서를 써줄 테니 어린이 유전자검사가 가능한 대학병원을 찾아가 보라고 하셨다.


토리가 출생했던 대학병원은 소아임상유전학클리닉이 없었다.


그래서 서울까지 가야 하나 걱정이 앞서던 찰나, 토리의 출생병원에서 다시 전화가 와서는 어린이 유전자검사를 할 수 있는 곳을 알아봐 주었다.


Y병원에는 아기들의 유전자 검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나는 서둘러 Y병원에 진료의뢰서를 팩스로 보내고 진료 예약을 잡았다.


다행히 날짜는 생각보다 빠른 시일 내로 잡혔고, 나는 병원에 갈 날만을 기다리며 걱정반 기대반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토리의 발달 지연 원인이 밝혀져 치료를 통해 걸을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희망과, 지금의 증상이 모두 백질연화증 때문이라고 결론 내려질까 봐 두려운 마음이 교차했다.


시간은 흘러, Y병원으로 향하는 아침이 마침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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