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향한 첫걸음

by소여

토리가 아이카디구티에레스 증후군 판정을 받은 뒤, 나는 질병에 관한 정보를 찾기 위해 밤낮없이 인터넷을 뒤졌다.

하지만 국내의 의학 정보는 턱없이 부족했고, 병의 경과나 예후에 대해서는 만족할만한 단서조차 찾을 수 없었다.

난 결국 해외 사이트까지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조금씩 증상의 흐름과 향후 경과를 짐작게 하는 단서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모든 정보는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까운 것들뿐이었다.

아이카디구티에레스 증후군을 앓는 아이들은 대부분 발작을 동반했고, 5년 전 어느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며 올린 절박한 글이 눈에 들어왔다.

SNS를 통해 접한 사례들도 이미 아이가 사망했거나, 몇 년째 소식이 끊긴 채 멈춰버린 기록들뿐이었다.

나는 혹시나 우리 토리마저 이 아이들과 같은 운명을 겪게 될까 봐, 꽃도 펴보지 못하고 스러질까 봐 두려웠다.

아이카디구티에레스 증후군을 겪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해외에서나 국내에서나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다.

그 병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대중의 인식 너머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토리가 이 희귀병을 앓기 전까지는 그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기에, 내가 무심코 지나쳤던 순간에도 누군가는 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아이카디구티에레스 증후군’

전 세계적으로 단 120명만이 걸린 아주 희귀한 병.

환아의 20%가 신생아기에 발병하며, 발병 시기가 늦어질수록 신경학적 증상은 더 악화한다.

더욱 잔인한 것은 중증 환아의 80%가 열 살이 되기도 전에 생을 마감한다는 사실이다.

중추신경계(CNS) 백질 손상이 병의 기전이며, 신경계의 과도한 예민함 때문에 정상적인 식사 진행이 매우 어렵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내가 찾아본 자료에는 만약 아이카디구티에레스증후군 환자가 추후에 자녀를 가지면 50% 확률로 유전이 되며 이외에도 녹내장이 발생하지 않는지 매년 검사를 통해 모니터링을 해야 하고 폐동맥 고혈압이나 심근증이 발생할 수 있으며, 혈소판에 문제가 발생하여 출혈 위험을 높일 수 있으니 정기적인 평가도 필요하다고 돼 있었다.

가장 중요하게 언급된 것은 운동기능 이상과 관련된 문제였다. 척추측만증이나 관절 탈구 등이 발생할 수 있어 지속적인 신체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 병에 대해 알아가면 알수록 의아함을 느꼈다.

나열된 증상들을 훑어보아도, 대근육 발달이 더디다는 점을 제외하면, 토리에게서 그 어떤 증상도 찾아볼 수 없었다.

예민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성격에 먹성도 남달라 다른 아이들보다 두 배는 더 먹어 치웠다.

심지어 환아 대부분이 겪는다는 발작조차 토리는 비껴갔다.

토리가 이토록 증상에서 비껴가 있는 사례가 또 있을까 싶을 만큼 의문이 들었다.

물론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한편으론 아이카디구티에레스증후군이라는 진단 자체가 오진이기를 내심 바랐다.

어차피 한 달 뒤면 아이카디구티에레스 증후군의 세부 유형이 밝혀지겠지만, 엄마인 나는 그저 이 모든 것이 오진이기만을 간절히 기도할 뿐이었다.

나는 정보를 얻을 만큼 얻었다고 생각하고 내 옆에서 자동차를 가지고 노는 토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사랑하는 우리 토리야… 설령 이게 오진이 아니라 해도 괜찮아. 네가 움직일 수 없다면 엄마가 기꺼이 네 팔과 다리가 되어줄게. 그러니까 제발, 살아만 있어 줘.”

토리가 앓고 있는 병을 직시한 순간, 내 삶의 목적은 아이의 움직임을 되찾아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생존’을 지켜내는 것으로 변했다.

언젠가 기어 다니고, 언젠가 걷게 될 거라는 간절한 소망은, 이제 그저 '살아만 있어 주길'이라는 가냘픈 희망으로 바뀌어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토리가 기침을 쏟아내더니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설마 이게 발작의 전조는 아닐까 하는 불안함에, 나는 떨리는 손으로 아이의 이마를 짚었다.

이마에 손을 대자마자 열기가 확 느껴졌고, 체온계에는 38도라는 숫자가 선명하게 찍혔다.

나는 해가 뜨자마자 어린이집 결석을 시키고 소아청소년과로 향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9시가 되자마자 어린이집에 연락해 토리의 상태를 알리고 결석을 하겠다고 한 뒤, 서둘러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소아청소년과에 도착하니 아침 일찍부터 대기 행렬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병원 안은 빈자리 하나 없이 꽉 들어찼으며, 복도 끝까지 아픈 아이를 데려온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는 접수를 마치고 토리를 안은 채 벽에 기대어 순서를 기다렸다.

다행히 아이는 열이 나는데도 생긋 웃으며 나쁘지 않은 컨디션을 보였다.

한 시간 이상 기다렸을까, 드디어 토리의 이름이 불렸다.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소아청소년과 선생님은 따뜻한 눈길로 토리를 바라보며 상태를 물었다.

아침부터 열과 기침이 심해졌다는 내 말에, 선생님은 열이 나더라도 아이가 잘 먹고 잘 놀면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다 문득, 나는 토리가 앓고 있는 ‘아이카디구티에레스증후군’ 관해 묻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아청소년과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세상에 그런 병이 있어요?’라고 대답하셨다.

그러다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한 뒤, 한참 화면을 들여다보시다 나긋한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여셨다.

“어머니, 토리가 눈 맞춤이나 엄마라고 잘 부르나요?”

“네… 눈 맞춤 잘하고 잘 웃고 엄마라고 잘 불러요.”

“그럼 됐습니다. 눈 맞춤이 가능하다는 것만으로도 아주 긍정적인 신호거든요. 세상에 고칠 수 없는 병은 없습니다. 병이 생소하고 희귀해서 치료법을 찾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지, 머지않아 분명 치료제도 나올 겁니다.”

처음이었다.

언제나 최악의 시나리오만을 말씀해 주시는 의사 선생님들이, 이렇듯 마음 한구석에 희망을 심어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리고 선생님은 따뜻한 미소로 말을 이으셨다.

“치료제 개발의 첫걸음은 이 병의 존재를 알리는 것입니다. 저 같은 의사도 처음 들어본 희귀한 질환이니까요. 반드시 알려야 합니다. 그래야 연구자들이 그 목소리에 반응해 움직일 수 있습니다. S 병원의 모 회장님이 유전자 질환 사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계시니, 그쪽에도 아이의 사례를 알리세요. 그러면 희망이 더 빨리 찾아올 겁니다.”

그 말을 듣고 깨달았다. 작은 목소리라도 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그저 무력하게 시간만 흘려보내며 기적 같은 치료제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나는 예전부터 써오던 글쓰기를 매개로 아이의 상태를 세상 밖으로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웹소설 이야기만 가득하던 내 SNS 공간에 아이의 이야기를 채워 넣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SNS 속 사람들은 차가운 시선 대신 따뜻한 공감과 격려를 보내주기 시작했다.

토리를 위해 관심을 두고, 함께 기도해 주며 우리의 작은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그 응원들은 절망의 끝에 서 있던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이끄는 거대한 빛줄기가 되었다.

수많은 사람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은 걸까.

토리는 아주 조금씩, 기적과도 같은 작은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기 스스로 뒤집더니, 팔 힘을 이용해 배밀이를 시작했다.

그리고 원하는 장난감이 있는 쪽으로 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처음이었다.

이 아이가 스스로 움직인 것은…

그리고 그건 우연이 아니라, 계속해서 토리는 떼굴 굴렀다.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버틴다는 말처럼, 토리는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몸을 놀리며 행동반경을 늘렸다.

마치 살아있는 작은 불꽃처럼, 아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세상에 맞서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토리의 사소한 변화 하나하나를 SNS에 기록하며 병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고, 그때마다 사람들은 따뜻한 응원으로 토리를 반겨주었다.

그러다 문득 내 아이의 투병만이 유일한 아픔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희귀병 아이들이 어딘가에서 홀로 싸우고 있을 거라고…

그 아이들에게도 세상이 조금 더 다정하고 따뜻한 품이 되어주기를 마음 깊이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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