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사장님과 11박 12일

검은 카드

by문성

《얼굴 없는 사장님과 11박 12일》

2화. 검은 카드

그는 문고리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문부터 열어요. 복도에 누가 있어요.”

낮고 다급한 목소리였다. 그는 체인 잠금장치를 건 채 문을 손바닥 하나 들어갈 만큼만 열었다. 검은 모자와 선글라스, 목을 감싼 스카프. 아까 승선장에서 카드를 떨어뜨렸던 여자였다.

“무슨 일입니까?”

“아까 카드요. 제가 돌려받았죠?”

“네.”

“그 카드에 뭐가 새겨져 있었는지 기억해요?”

그는 문을 조금 더 열었다. 여자의 눈이 복도를 살폈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지만, 엘리베이터 앞쪽에서 발소리가 한 번 들렸다가 끊겼다.

“은색 나비 같은 그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비가 아니라 나방이예요.”

여자는 코트 안주머니에서 검은 카드를 꺼냈다. 앞면에는 글자도, 이름도 없었다. 뒷면 가운데에 은색 나방 한 마리가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이게 뭔데요?”

“누군가 이 카드의 모양을 확인하려고 당신에게 접근할 거예요. 그때 본 걸 말하지 마세요.”

“이미 문자도 받았습니다. 당신을 조심하라고요.”

여자의 몸이 잠깐 굳었다.

“무슨 문자죠?”

그는 휴대전화 화면을 보여주었다. 여자는 글을 읽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 대신 카드의 모서리를 엄지로 문질렀다. 손끝이 아주 조금 떨렸다.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

“에블린 애슈퍼드예요. 영국 패션잡지 ‘루미에르’의 사장입니다.”

그는 그녀의 얼굴을 다시 바라보았다. 잡지 이름은 알고 있었다. 해외 패션 화보를 자주 다루는 유명한 잡지였다. 하지만 사장의 얼굴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인터뷰 사진에도 늘 뒷모습이나 그림자만 실렸다.

“그럼 정말 그 얼굴 없는 사장님?”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더군요.”

“왜 얼굴을 공개하지 않습니까?”

“공개하지 않는 편이 더 안전하니까요.”

그녀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그 말이 끝나자 복도에서 발소리가 다시 가까워졌다. 이번에는 서두르는 기색이 없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누군가 객실 문 앞을 천천히 지나가는 소리였다.

에블린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

“문을 닫아요.”

그는 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확인했다. 발소리는 바로 앞에서 멈췄다. 손잡이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문이 흔들렸다.

그는 숨을 삼켰다. 여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손에 든 검은 카드만 꽉 쥐고 있었다. 손잡이가 놓이고, 잠시 뒤 발소리가 멀어졌다.

한동안 둘 다 말을 하지 않았다.

“이 배에 당신을 찾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왜 혼자 다닙니까?”

“혼자가 아니라고 믿었던 사람도 있었죠.”

그녀의 대답은 짧았다. 하지만 끝에 남은 침묵은 길었다.

그는 괜히 자기 셔츠에 붙은 회사 명찰을 내려다보았다. ‘세림무역 해외영업팀 강도윤 대리.’ 회사에서는 대리였지만, 실제로는 온갖 잔심부름을 도맡는 말단 직원이었다. 이번 휴가도 회사에서 멀어지려고 떠나온 것이었다.

“강도윤 씨.”

그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제 명찰을 보셨습니까?”

“승선장에서 가방을 들어 올릴 때요. 이름이 보였어요.”

그 순간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이번에는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승선장에서 그가 카드를 주워 건네는 모습이었다. 사진 아래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 여자에게서 검은 카드를 가져와라. 그러면 당신은 무사히 내릴 수 있다.

그는 화면을 보여주었다.

에블린의 표정이 굳었다.

“그 카드에 뭐가 들어 있습니까?”

그녀는 대답 대신 검은 카드를 뒤집었다. 은색 나방의 날개가 객실 조명 아래서 희미하게 반짝였다.

“이건 단순한 초대장이 아니에요. 누군가 훔쳐 간 디자인의 원본을 찾을 수 있는 단서가 들어 있어요.”

“그럼 왜 저한테 카드가 있다는 듯이 말하는 겁니까?”

“당신이 그 카드를 봤기 때문이에요. 누군가는 당신이 어디까지 봤는지 확인하고 싶어 할 거예요.”

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배의 뱃고동이 길게 울렸다. 객실 창밖으로 싱가포르 항구의 불빛이 천천히 뒤로 밀려났다.

강도윤은 휴대전화에 도착한 사진을 다시 보았다. 사진에는 그와 에블린만 찍힌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 뒤편, 유리문 너머에 누군가 서 있었다.

그 사람의 손에는 똑같은 은색 나방이 새겨진 검은 카드가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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