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카드, 다가온 아침
《얼굴 없는 사장님과 11박 12일》
4화. 사라진 카드, 다가온 아침
다음 날 아침, 도윤은 어제보다 조금 일찍 식당으로 내려왔다.
창밖으로는 싱가포르의 항구가 멀어지고 있었다. 바다는 햇빛을 받아 잔잔하게 반짝였고, 크루즈는 느긋하게 다음 항로를 향해 나아갔다.
“여기 앉아도 될까요?”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에블린이 서 있었다. 어제와 달리 모자도 선글라스도 없었다. 그녀는 주변 시선을 살피는 듯하다가 도윤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오늘은 얼굴을 숨기지 않으시네요.”
“아침부터 모자를 쓰면 더 눈에 띄더라고요. 사람들은 오히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가렸지?’ 하고 쳐다봐요.”
“그럼 오늘은 평범한 승객처럼 보이겠네요.”
“그게 제 목표예요.”
에블린은 커피잔을 손에 들었다. 그러다 문득 코트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한쪽, 다른 쪽. 그리고 작은 가방 안까지 살폈다.
“왜 그러세요?”
“카드가 없어요.”
그녀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어제 갑판에서 꺼냈던 검은 카드요. 분명 코트 주머니에 넣었는데…….”
도윤은 어젯밤 갑판의 장면을 떠올렸다. 바람이 세게 불어 에블린의 코트 자락이 날렸고, 그녀가 주머니에 손을 넣었던 순간도 기억났다.
“어제 앉았던 자리부터 찾아보죠.”
두 사람은 식당과 갑판을 차례로 둘러봤다. 난간 아래와 의자 밑까지 살폈지만 카드는 보이지 않았다.
“중요한 카드인가요?”
“그냥 오래 가지고 다닌 물건이에요. 잃어버리면 조금 곤란하고요.”
에블린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 도윤도 굳이 캐묻지 않았다. 대신 승무원 안내 데스크에 분실물을 접수하자고 했다.
분실물 접수를 마치고 갑판으로 돌아오는 길, 선내 방송에서 다음 기항지인 페낭에 관한 안내가 흘러나왔다. 도윤은 에블린 쪽을 힐끗 바라봤다.
“내일 페낭에 내리실 거죠?”
“네. 잠깐 둘러볼 생각이에요.”
“혼자요?”
“아직 정하지 않았어요.”
“그럼 같이 가시죠. 제가 길은 잘 찾습니다.”
“무역회사 해외영업팀 말단 대리의 자신감인가요?”
“말단이라서 어디든 발로 뛰어야 하거든요. 길 찾는 건 업무 능력에 포함됩니다.”
에블린이 작게 웃었다.
“좋아요. 아침 여덟 시에 로비에서 만나요. 늦으면 두고 갈 거예요.”
“그건 제가 할 말인데요.”
약속을 정한 뒤 두 사람은 각자의 객실로 향했다. 복도 끝에서 에블린이 한 번 뒤돌아 손을 흔들었다. 도윤도 어색하게 손을 들어 답했다.
그들이 떠난 뒤, 갑판의 의자 아래를 정리하던 승무원이 검은 카드를 발견했다. 카드 표면에는 은빛 나방 문양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승무원은 그것을 분실물 봉투에 넣고 접수 날짜를 적었다.
아직 누구도 몰랐다.
이 카드가 언젠가 다시 도윤의 손에 들어가게 되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