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사장님과 11박 12일

페낭에서 산 나침반

by문성

《얼굴 없는 사장님과 11박 12일》


5화. 페낭에서 산 나침반

아침 여덟 시 정각.

도윤은 크루즈 로비에서 시계를 확인했다. 에블린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늦으면 두고 간다고 하셨는데.”

혼잣말을 끝내기도 전에 에블린이 로비 입구로 들어섰다. 약속 시간보다 딱 7분 늦은 시각이었다.

“7분 늦으셨습니다.”

“영국에서는 그 정도는 늦은 축에도 안 들어요.”

“여긴 페낭입니다.”

“그럼 오늘은 페낭식으로 늦은 거예요.”

두 사람은 나란히 부두를 걸어 나왔다. 페낭의 거리는 아침부터 활기가 넘쳤다. 오래된 건물의 벽에는 색색의 벽화가 그려져 있었고, 길모퉁이마다 작은 가게와 노점이 이어졌다.

도윤은 현지 음식을 파는 가게 앞에 멈췄다. 메뉴판을 훑던 에블린이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이건 어떻게 읽어요?”

“차퀘이티아오요.”

“정말 그렇게 읽어요?”

“아마요.”

“확신이 없는데 주문하려고 했어요?”

“무역회사 해외영업팀에서 살아남으려면 자신감이 중요합니다.”

에블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두 사람은 국수와 차가운 커피를 주문해 나눠 먹었다. 에블린은 처음엔 낯선 향신료에 조심스러워했지만, 이내 젓가락을 바쁘게 움직였다.

“생각보다 맛있네요.”

“제가 골랐으니까요.”

“아까는 읽는 법도 몰랐잖아요.”

“그건 별개의 능력입니다.”

식사를 마치고 골목을 걷던 중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졌다. 도윤은 가방에서 작은 우산을 꺼냈다.

“우산이 하나뿐이네요.”

“둘이 쓰면 되죠.”

“어깨가 젖을 텐데요.”

“그럼 제가 비를 더 맞겠습니다. 말단 대리의 희생정신이죠.”

“그 희생정신은 회사에서도 발휘해요?”

“주로 퇴근 직전에요.”

에블린이 웃으며 우산 안으로 들어왔다. 좁은 우산 아래 두 사람의 어깨가 몇 번 가볍게 스쳤다. 비를 피하려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선 그들은 낡은 간판이 걸린 작은 골동품 가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가게 안에는 오래된 시계와 도자기, 손때 묻은 장신구들이 빼곡했다. 도윤은 진열장 한쪽에 놓인 작은 황동 나침반을 발견했다.

나침반의 표면은 여기저기 닳아 있었지만, 뚜껑에는 파도 위를 날아가는 새가 새겨져 있었다.

“마음에 들어요?”

에블린이 물었다.

“그냥요. 오래된 물건이라서 그런지 눈이 가네요.”

가게 주인은 나침반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렸다.

“바다를 오래 다닌 사람의 물건입니다. 길을 잃어도 결국 자기 방향을 찾는 나침반이지요.”

도윤은 웃었다.

“나침반이 길을 찾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요?”

“그렇지요. 다만 이건 조금 늦게 방향을 잡습니다.”

주인은 나침반을 도윤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바늘이 잠시 흔들리더니 천천히 한쪽을 가리켰다.

도윤은 별생각 없이 값을 치렀다.

“이런 물건은 주인을 오래 기다리기도 합니다.”

가게 주인의 말에 도윤은 나침반을 가방에 넣으며 대답했다.

“그럼 제가 너무 늦게 온 셈이네요.”

“늦었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알맞은 때일 수도 있지요.”

에블린은 그 말을 듣고 도윤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는 그저 웃으며 가게 문을 나섰다.

에블린도 진열대에서 작은 은색 별 브로치를 골랐다. 오래된 물건인데도 반짝임이 남아 있었다.

“별을 좋아하세요?”

도윤이 물었다.

“길을 잃었을 때 올려다볼 수 있으니까요.”

“그럼 제 나침반이랑 잘 어울리네요.”

“나침반이 방향을 알려주고 별이 길을 밝혀주겠네요.”

두 사람은 비가 잦아든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크루즈로 돌아가는 길, 에블린이 물었다.

“도윤 씨는 길을 잃어본 적 있어요?”

“많죠. 회사에서도, 인생에서도요.”

“그런데 잘 찾아왔네요.”

“아직 찾는 중입니다.”

에블린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조용히 말했다.

“저도 그래요.”

그 말에 도윤은 그녀를 바라봤지만, 에블린은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는 서둘러 그녀의 옆을 따라갔다.

배에 돌아온 뒤 도윤은 가방을 정리하다 나침반을 꺼냈다. 바늘이 아주 약하게 떨리는 것 같았다. 배가 흔들려서 그런가 싶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지만, 바늘은 잠시 한 방향을 가리키다 다시 멈췄다.

“길을 찾았나 보죠.”

에블린이 옆에서 말했다.

도윤은 웃으며 나침반을 주머니에 넣었다.

다만 훗날, 그가 자신도 몰랐던 길의 끝에 서게 되었을 때, 오늘의 나침반이 그 시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이전 04화얼굴 없는 사장님과 11박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