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히 먼 옛날에도 그랬겠지만, 눈의 마을 대관령에는 겨울만 되면 한도 끝도 없이 눈이 내린다. 한번 내리기 시작하면 며칠씩 퍼부어 대고, 밤새 쌓인 눈은 아침이면 세상을 온통 하얗게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대관령의 겨울은 아름답다는 말만으로는 다 표현하기 어렵다. 때로는 신비롭기까지 하다.
햇살이 눈 위로 내려앉으면 나뭇가지에 쌓인 눈은 보석처럼 반짝이고, 산과 들은 마치 누군가 거대한 붓으로 흰 물감을 칠해 놓은 듯하다. 눈으로 뒤덮인 세상은 익숙하면서도 매번 새로운 감동을 안겨 준다.
내 기억 속에 눈이 가장 많이 내렸던 겨울은 국민학교 6학년 때였던 것 같다. 하루에 2미터가 넘는 눈이 내렸다. 당시 우리 집 앞 담 높이가 6자 정도였는데, 새벽에 일어나 보니 가재도구는 물론 집 울타리까지 눈 속에 파묻혀 있었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에서 불과 20여 미터 떨어진 곳에 샘이 있었지만, 그곳까지 갈 방법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사흘 동안 눈을 가마솥에 넣고 끓여 식수로 사용했다. 밖으로 나가야 할 때는 눈 속에 굴을 파서 이웃집으로 이어지는 길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 대관령에서는 이 정도의 폭설과 그로 인한 불편함이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일 년의 절반이 사실상 겨울인 대관령에서 눈은 혹독한 추위와 함께 찾아오는 친구였다. 체감온도가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봄이 올 때까지는 눈과 함께 살아야 했다. 피할 수도, 쉽게 떨쳐 낼 수도 없는 질긴 인연이었다.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지만, 눈은 또한 대관령 사람들의 삶과 추억을 빚어낸 소중한 존재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눈 마을 아이들에게 유일하다시피 한 놀이는 스키 타기였다. 전기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던 시절,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은 온통 눈으로 덮여 있었다. 친구들은 부모님이 만들어 주신 투박한 나무 스키를 신고 뒷동산으로 모여들었다.
솔잎을 따다 눈 위에 꽂아 놓고 그 사이를 빠져나가며 회전 연습을 했다. 야트막한 점프대를 만들어 뛰어오르기도 했다.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눈밭을 누비며 놀던 시간은 어린 우리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눈은 길을 막기도 했지만, 우리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넓고 신나는 놀이터이기도 했다.
1984년, 그해 겨울에는 첫눈부터 유난히 많은 눈이 내렸다. 산과 들은 온통 설원으로 변했다. 방송에서는 대관령의 차량 운행이 통제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스키를 챙겨 대관령 정상을 향해 올라갔다. 하얀 솜구름을 살며시 뒤집어쓴 듯한 나무들의 아름다운 자태가 눈앞에 펼쳐졌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고요한 눈길을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순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벅찬 감동이 온몸을 감쌌다.
그때의 느낌은 지금도 생생하다.
아마 그 순간부터였을 것이다.
내 삶에서 스키와 대관령이 하나가 되어 서로 떼어 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은.
돌이켜 보면 대관령의 눈은 내게 단순한 자연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에는 친구들과 뛰놀던 놀이터였고, 청년 시절에는 스키를 통해 세상과 만나는 길이었다. 그리고 훗날에는 사람들과 함께 꿈을 꾸고, 아이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며, 지역의 미래를 고민하게 만든 삶의 터전이었다.
설국의 정취에 숨이 막힐 듯 가슴 벅찬 곳.
겨울이 길기에 오히려 겨울을 사랑하게 되는 곳.
눈이 불편함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큰 선물이었던 곳.
그곳이 나의 고향, 평창 대관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