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비 내리는 새벽, 길은 나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by김영교

오전 10시쯤, 항공 운송을 위해 자전거점에 들렀다.

핀란드는 자전거를 타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호텔 주변에만 자전거 전문점이 두 곳이나 있었다. 처음 찾아간 곳에는 손님도 많고 직원도 두 명이나 있었지만, 너무 바쁜 탓인지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세 시간 가까이 기다렸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어 결국 호텔 근처의 다른 자전거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여사장님이 환한 미소로 나를 맞아 주셨다.

“오후 4시에 오세요.”

짧은 한마디였지만 마음이 놓였다. 약속한 시간에 다시 찾아가니 자전거는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비용은 20유로라고 했지만, 고마운 마음에 30유로를 드렸다. 여행 막바지까지 따뜻한 친절을 베풀어 주는 분을 또 한 분 만나게 되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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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로 돌아오는 길에는 프런트에 부탁해 7일 오전 10시쯤 자전거 상자를 실을 수 있는 큰 택시를 예약했다. 방으로 돌아와서는 자전거 상자에 남은 공간을 활용해 가방과 장비를 하나씩 차곡차곡 넣었다. 짐을 정리할수록 긴 여행이 정말 끝나 가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이제 내일이면 핀에어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64일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 따뜻한 인연들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이번 귀국은 끝이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몸을 잘 회복한 뒤 언젠가 다시 유럽의 길 위에 설 그날을 조용히 준비해 보려 한다.


새벽 4시.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창밖에는 또다시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하루라도 비가 오지 않은 날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오늘은 헬싱키 공항에서 직항 편을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한다. 남승희 후원회장님께서 공항까지 마중 나와 대관령까지 데려다 주시기로 했다. 출발할 때만 해도 이렇게 여정을 중단하고 귀국하게 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마음이 무겁다.


돌이켜 보면 사고 이전부터 몸은 이미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하루 188km를 달리는 무리한 일정이 계속되면서 왼쪽 정강이 아래쪽에도 통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더 일찍 알아차렸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장거리 여행에는 언제든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녹록지 않았다. 북유럽의 물가는 러시아보다 몇 배나 비쌌고, 무엇보다 인터넷이 되지 않아 길을 찾는 것조차 어려웠다. 마침 우연히 만난 동갑내기 박동섭 님을 통해 헬싱키에서 인천까지 직항 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귀국이라는 선택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이번 여행을 되돌아보며 왜 귀국할 수밖에 없었는지 하나씩 정리해 보았다.

러시아에서는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는 지역이 많았다. 여행 도중 휴대전화가 고장 나 새 기기로 바꾸는 과정에서 중요한 자료까지 대부분 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교통사고까지 겹쳤다. 정신을 잃을 정도의 사고였고 경찰과 구급차까지 출동했다. 그 후유증으로 머리가 계속 흔들리는 느낌이 들었고 어깨 통증도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전거를 타는 데 대한 자신감이 크게 꺾였다.


에스토니아에서는 휴대전화 매장을 여러 차례 찾아가 유심을 교체하고 설정도 다시 했지만, 여전히 인터넷을 사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헬싱키에서는 호텔 안에서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밖으로 나가는 순간 인터넷이 끊겼다. 번역도 할 수 없고, 길도 찾을 수 없고, 가족들과 연락하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


혼자 여행하는 사람에게 통신이 끊긴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큰 문제였다. 낯선 곳에서 길을 찾고, 숙소를 구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요청하려면 휴대전화가 꼭 필요했다. 몸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통신 문제까지 해결하지 못한다면 무리하게 여정을 이어 가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결국 여기서 멈추기로 했다.

막상 귀국을 앞두니 만감이 교차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던가. 응원해 주신 분들, 기도해 주신 분들, 후원해 주신 분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오전 10시, 택시를 타고 헬싱키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 도착해서는 자전거부터 수하물로 맡기고, 친절한 직원들의 도움 덕분에 어렵지 않게 48번 게이트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공항에 너무 일찍 도착한 탓에 출발 시간까지는 여유가 많았다. 대합실에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조용한 의자에 앉아 지난 두 달을 천천히 되돌아보았다.


돌이켜 보면 나 같은 사람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결코 내 힘만으로는 아니었다. 하느님께서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 주셨기에 가능한 여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나이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무모한 도전보다는 지혜로운 도전이 필요한 시기인지도 모른다.


대합실에서 기다리던 중 권정복 부부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두 분은 일흔 살까지 일을 하시고 은퇴한 뒤, 벌써 2년째 부부 여행을 이어 오고 있다고 했다. 잠시 후에는 다른 한국인 여행객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청송에서 오신 1960년생 여성분들은 단체여행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이었고, 이천에서 오신 가족도 지인들과 함께 여행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낯선 외국 공항에서 한국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그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공 박사님께서 원자력병원 신경외과 진료를 예약해 두셨다는 소식이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면 남승희 후원회장님의 차를 타고 곧바로 병원으로 가기로 했다. 귀국하자마자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미리 챙겨 주신 마음이 참으로 고마웠다.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했다.

기내식이 나올 때 승무원에게 와인 한 병을 부탁했다. 이번 여행에서 마시는 첫 와인이었다. 작은 병 하나였지만 잔에 따라 천천히 마시니 긴장도 조금 풀리고 마음도 한결 편안해졌다. 창밖으로 헬싱키의 하늘이 조금씩 멀어져 갔다. 언젠가 다시 이 하늘을 넘어 유럽의 길 위에 설 그날을 조용히 마음속에 그려 보았다.


이번 여행은 65일 동안 자전거로 약 6,200km를 달렸고, 배와 열차, 트럭, 버스 등을 이용해 총 10,000km가 넘는 거리를 이동했다. 그런데 비행기에 오르니 불과 11시간 만에 한국에 도착한다고 했다.

두 바퀴로 한 걸음 한 걸음 달려온 시간을 생각하니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수많은 날을 달려온 거리가 단 하루도 채 되지 않는 시간에 이어진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비록 계획했던 여정을 끝까지 마무리하지는 못했지만,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모스크바를 지나 유럽의 관문까지 무사히 달릴 수 있도록 기적처럼 이끌어 주신 하느님께 깊이 감사드렸다. 처음부터 끝까지 응원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모든 분께도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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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 도착해 자전거를 찾고 입국 절차를 마쳤다. 러시아에서 구입한 휴대전화 때문인지 통화가 제대로 되지 않아 공항에서 임시로 사용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출구로 나오니 남승희 회장님께서 반갑게 맞아 주셨다.


“한국 음식 가운데 가장 먹고 싶은 것이 뭐냐?”


처음에는 김치찌개가 생각났지만, 눈앞에 보이는 부대찌개집으로 들어갔다. 뜨끈한 국물에 밥 한 그릇을 먹으니 비로소 고향에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낯선 나라의 길 위에서 먹던 음식과는 다른, 익숙하고 편안한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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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박사님의 소개로 원자력병원 신경외과를 찾아 검진도 받았다. 검사 결과 크게 심각한 상태는 아닌 듯하니 당분간 경과를 지켜보자는 소견을 들었다. 무엇보다 큰 이상이 없다는 말에 안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후 6시경, 마침내 65일 만에 대관령 집에 도착했다.


역시 고향이 가장 편안하다.

집 앞에 들어서자 아내가 환한 얼굴로 나를 맞아 주었다. 집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과 편안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긴 여행을 마치고 마침내 내 자리에 돌아왔다는 느낌이었다.


아내는 그사이 반가운 소식도 준비해 두고 있었다. 내가 이번 신사임당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것이었다.

선정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고 한다. 제정자님과 김선영 님께서 많은 애를 쓰셨고, 고성 후보와 세 차례의 투표를 거쳐 어렵게 결정되었다고 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소식이라 더욱 기쁘고 감사했다. 먼 타국에서 겪었던 고생과 마음고생을 보상받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돌이켜 보면 지금까지 이루고 싶었던 많은 꿈을 하나씩 이루며 살아왔다. 이제는 그 꿈들을 대부분 이루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우여곡절이 많았다. 하지만 어려운 순간마다 많은 분이 손을 내밀어 주셨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처음 계획했던 15개월 5만 km, 이번 여행은 계획했던 일정대로 끝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러나 포기보다 더 큰 배움을 안겨 준 시간이었다.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의 친절과 배려, 어려움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순간들,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의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65일 동안의 여정은 여기서 멈췄지만, 그 시간이 내게 남긴 의미까지 멈춘 것은 아니다.

여행은 끝났지만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언제 또다시 길 위에 설 수 있을까.


아직은 알 수 없다. 먼저 몸을 회복하고, 이번 여행을 천천히 돌아보며 다음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언젠가 다시 두 바퀴에 몸을 싣고 길을 나서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조금 더 지혜롭게, 조금 더 여유롭게 세상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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