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위원회에서는 결국 주행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강제 귀국과 함께 지금까지 응원해 주신 후원인 분들에게 긴급 귀국 공지를 띄우기로 하였다.
사실, 걱정하는 가족들과 응원해 주시는 모든 분들의 걱정을 덜기 위해 괜찮다고, 아무 이상이 없다고 큰소리쳤지만 머리가 흔들리는 듯한 증상은 나아지는 듯하며 멈추지 않았다. 전날에도 무리하지 않으려고 조심했지만, 40km 정도를 달리고 나니 머리가 다시 울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더 이상은 무리다. 지금은 멈추는 것이 맞다.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은 컸지만, 몸이 보내는 신호를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
그때,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사고 이후 걱정이 더 커진 모양이었다.
나는 웬만해서는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머리가 울리는 것 같다고 했더니 아내의 목소리가 촉촉해진다. 귀국하면 곧바로 병원에 가서 머리 CT 검사를 받고 어깨 상태도 점검해야 되겠다며 멈추지 않는 걱정이 이어진다.
귀국하기로 마음을 정하자 해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항공권을 예약하고, 자전거를 포장하고, 짐도 정리해야 했다.
곧바로 자전거점으로 향했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영업하던 가게가 주말이라 그런지 문을 닫아 버렸다. 헛걸음을 하고 돌아오면서 스스로에게 말했다.
‘서두르지 말자.’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을 여행은 끊임없이 가르쳐 주고 있었다.
인교 형도 한동안 연락이 안 되어 걱정이 되었는지 주영이에게 연락이 왔다고 한다. 주영이에게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는 “정말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이 딱 맞는 말이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그 한마디를 들으니 가족들이 이번 사고로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별난 동생 하나 때문에 마음고생을 시킨 것 같아 미안했다.
오전 내내 내리던 비가 그치자 모처럼 아무런 일정 없이 헬싱키 시내를 천천히 걸어 보기로 했다. 도로에는 자동차보다 전차가 더 자주 다녔다. 자전거 전용도로는 도시 곳곳으로 이어져 있었고, 주말을 맞은 시민들은 여유롭게 자전거를 타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어디선가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곳에서는 어린 축구선수들이 훈련과 경기를 하고 있었다. 마침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시기여서인지 아이들의 표정은 무척 진지했다. 학부모들은 힘찬 박수와 응원으로 아이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보니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용평에서 근무하던 시절, 어느 날 렌털숍 앞을 지나다가 아직 탈 만한 스키들을 폐기 처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 스키를 지역 아이들에게 타게 하면 어떨까?’
내가 어렸을 때는 동네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들이며, 밭이며 눈이 쌓인 곳을 찾아다니며 스키를 탔다. 그 시절의 풍경을 다시 만들고 싶었다. 용평 측에 부탁드렸더니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학교에서도 적극적으로 협조해 주었다. 그렇게 스키 200대를 학교에 기증하는 전달식이 열렸다.
그 겨울, 아이들은 학교에서 스키를 빌려 친구들과 함께 뒷동산으로 향했다. 방과 후 눈 덮인 언덕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참 뿌듯했다. 스키는 한 번만 제대로 배워도 평생 그 매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운동이다. 아이들이 스키를 통해 느끼는 즐거움을 더 많은 아이와 나누고 싶었다.
도암중학교에서는 강찬용 선생님이 전교생 일일 스키학교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횡계초등학교 학생들을 조사해 보니, 의외로 스키를 한 번도 타 보지 못한 아이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스키장 바로 옆에서 살면서도 스키를 접하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당시 나는 횡계초등학교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었기에 운영위의 동의를 얻어 용평과 협의해 전교생 일일 스키학교를 열었다. 그날은 우리 레이싱팀 선수들이 하루 동안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겁을 먹던 아이들도 어느새 웃으며 슬로프를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 아이들 가운데는 훗날 스키강사가 된 친구도 있었고, 패트롤로 일하게 된 친구도 있었다. 스키 장비와 관련된 일을 하는 친구도 생겼다. 작은 시작이었지만, 지역에 스키 문화가 일상으로 자리 잡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오후에는 아들 주형이에게 전화가 왔다.
주형이는 주영이가 그동안 내 여행 때문에 너무 많은 일을 혼자 감당하고 있으니, 자신이 항공권 예약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자전거 포장 규격까지 하나하나 확인하며 필요한 내용을 알려 주었다.
가능한 한 빨리 비행기부터 예약하고, 귀국과 동시에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병원 예약도 잡아 놓겠다고 했다. 참 든든한 아들이었다.
주영이도 아빠 걱정에 마음을 많이 쓰고 있었다. 내 컨디션이 말이 아니라며 계속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니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사고 이후 머리가 울리는 증상이 계속되니 가족들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날 아이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7월 7일 오후 5시 30분 항공편을 예약했다는 내용이었다.
너무나 아쉽고 안타까웠다. 계획을 중단하고 돌아간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인천공항에는 남승희 회장님께서 직접 마중을 나와 대관령까지 데려다주시겠다고 하셨다. 내가 큰소리쳐 놓고 돌아가게 되어 죄송하다고 말씀드리자, 회장님께서는 누구에게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길 수 있다고 하셨다. 교통사고까지 겪은 상황에서 계속 여행을 이어가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다시는 죄송하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그 따뜻한 위로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식사를 마치기 전, 남아 있던 어게인평창 기념 배지 50여 개를 호텔에 머무는 사람들에게 선물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환한 미소로 고맙다고 인사하며 관심을 보여 주었다.
여행을 시작할 때부터 자전거에 새겨 온 ‘Again PyeongChang’이라는 문구에는 나름의 바람이 담겨 있었다. 평창이 다시 세계인의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언젠가 또 한 번 세계를 향해 나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계획했던 길을 끝까지 달리지는 못하게 되었지만, 배지를 받아 든 사람들의 미소를 보며 그 마음만큼은 국경을 넘어 전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내일이면 핀에어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마음 한편에는 아쉬움이 크게 남아 있다. 계획했던 여정을 끝까지 이어 가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한 가지는 분명히 깨달았다. 욕심보다 중요한 것은 건강이고, 목표보다 소중한 것은 다시 출발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이라는 사실이다.
처음 출발할 때는 끝까지 달려가는 것만이 성공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때로는 멈추는 것도 용기이며, 돌아가는 것도 다음 길을 위한 준비일 수 있다.
이번 귀국은 끝이 아니라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몸을 잘 회복하고 다시 출발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때는 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유럽의 길 위에 서고 싶다.
지금은 잠시 멈춘다. 그러나 내 마음속의 ‘Again PyeongChang’은 멈추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길 위에 설 그날을 조용히 준비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