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짝꿍이 된게 울 일인가..?

묵은지가 되고 싶었던 겉절이

by김상욱

초등학교 3학년쯤 되었을 때 이야기이다.
반에서 한 달 동안 같이 앉을 짝꿍을 정하는 날이었다.
그땐 남녀 한쌍으로 짝을 정했는데, 짝을 정하는 방식은 랜덤 하게 뽑기였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이 짝이 되고, 내 차례가 되어 두근 거리며 짝을 뽑았다.
밖이 안 보이는 검은 통 안에, 이름이 적힌 종이를 뽑고, 선생님께서 뽑힌 이름을 불러주셨다.
그렇게 호명된. 한 여학생의 이름.
호명하고 한 5초쯤 있었을까. 그 여학생이 폭포수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내 기억에는 선생님께서도 당황하셨었다.
앞에 나와서 그 여학생의 얼굴을 보던 나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다.
안 그래도 내성적이고 쑥스러움을 많이 탔던 나에게는 너무 큰 충격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나도 속으로 울었다. 아마 그 친구보다 더 울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안해했다. 미안한 일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미안해졌다. 내가 짝이 돼서 미안하다고. 그렇게 사과를 했다.
그때 스스로의 남자로서의 자존감이 많이 깨졌었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보면 그냥 너무나도 귀여운 꼬맹이일 뿐이지만, 그때 나는 스스로를 구렁텅이 끝까지 밀어 넣었다. "나는 못생겼구나, 피해가 되는 사람이구나" 하는 마음이 시작되었다.

그것만이 나를 위축시킨 것은 아니었다.
하루는 전역하신 군인이셨던 어머니께서 초등학교 친구와 싸우다가 두들겨 맞고는 눈이 시퍼렇게 멍든 나를 보시고는, 너무 가슴이 아프셨는지 그 친구를 때리라고 하셨다. 어떻게 때리는지 시범까지 보여주시면서. 나는 그걸 또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다음 날 나는 연습까지 했던 그 싸움을 하지 못했다. 아니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그 당시에 나는 너무나도 여렸고 착했기 때문이다. 물론, 혹자가 용기가 없어라고 말한다면 그 말도 맞다.
이유가 어쨌든 복합적인 이유로 남을 때리지 못했고 고등학교까지 싸움을 해본 적이 없다.
그 당시에 초등학교에서는 일기를 써서 선생님께 검사를 받았었는데, 그때의 싸움을, 아니 폭력을 당했던 것을 적어놓았던 일기를 보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그 어린 4-5학년에 아이가 적어놓은 글을 보면 지금의 내가 봐도 너무나도 가슴이 아프다. (차마 내 손으로 저 일기의 내용을 적을 수 없을 정도로) 싸우고 싶지만 싸울 수 없으니, 용기가 없으니, 그렇게 일기장에라도 분풀이를 했던 것이다. 이걸 검사하셨던 선생님은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셨을까? 어떤 감정이셨을까? 궁금하다.(물론 선생님들은 다들 너무나도 좋은 분이셨다)

몇 개를 좀 더 나열해 보자면, 나를 정말 많이 괴롭혔던 A라는 친구. 내가 그 친구 때문에 매일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신 우리 할머니께서는 그 친구를 정말 때려죽일 만큼 싫어하셨다. 하지만, 내가 그 친구에게 맞고 쪽팔림을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속으로는 피눈물을 흘리시면서도 고운 말로 타이르셨다. 몇 번씩이나 그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서 있는 음식 없는 음식을 먹이면서. 사이좋게 지내라고.
하지만 그 친구는 그렇게 얻어먹고도, 바로 다음 날부터 나를 다시 괴롭혔다. 맞거나 놀림당하는 모습을 친구나 같은 반 여자애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너무나도 수치스러웠기에, 매일매일이 너무 힘들었다. 또한 부모님께 그런 사실을 알리는 것도 부끄러워한 나머지, 부모님께 잘 알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얼굴이나 몸에 멍까지는 숨길 수 없었기에 그렇게 폭력이 있었다는 걸 아셨다. 그때 그 어린아이들에게 왜 그랬을까 한번 물어보고 싶다. 남을 괴롭히는 게 뭐가 그리 재미있냐고. 아니, 가능만 하다면 지금이라도 내가 느꼈던 그 기분을 성인이 된 지금 그대로 느껴지게 해주고 싶다는 망상이 가끔 들기도 한다.


중학교로 올라와서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는 배재중학교에 입학했다. 남중이라 그런지 애들도 많이 거칠었다. 중학생 때를 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친한 친구는 없었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 당시에는 친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지금에 와서야 돌이켜보면 친하다고 할만한 사람들이 없었다.)
그래서 친구들을 만들기 위해, 친구들의 관심을 사기 위해 바보처럼 행동하기도 하고, 알지만 모른 척하기도 했다. 가끔은 만화바카라을 들고 가서 나눠보기도 했었다.
단지 친구들끼리만 돌려보진 않았다.
(당시 우리 반에서 축구부 아이들과 일진들에게 많이 괴롭힘을 당했지만, 나는 그 아이들과도 잘 지내고 싶어 만화바카라을 나눠 보았다)

중학교 때의 폭력을 몇 가지 기억해 보자면,
무에타이와 태권도를 배운 한 일진학생이 나를 세워놓고 대놓고 미들킥을 차면서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그 친구들의 이름과 얼굴을 모든 것이 기억이 난다. 그 순간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맞는 나의 모습이 비참 해지지 않기 위해, 그렇게 맞으면서도 웃음으로 무마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중학교 때도 좋은 아이였고 선생님도 물론 좋은 분으로 만났지만, 단 한 명의 중학교 친구들도 지금없없는 것을 보면 나의 중학교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중학교 때 학교 밖에서 일상을 조금 더 끄적여보자면, 학교에서 많이 친한 친구가 없던 나는 친구에 대한 갈증을 학원에서 풀려고 했다. 아니했던 것 같다. 그렇게 잘하지도 열심히 하지도 않았으면서, 당시 유행이었던 외고반의 전학 진학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써가며 학원에 붙어 있으려 했다. 아니,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열심히 하는 척까지는 했다. 당시 부모님 두 분 다 공무원에 계셨는데, 나의 학원 때문에 등골이 휘셨다. 얼마나 힘드셨는지 학원을 그만두면 안 되겠냐고 물어보셨지만, 이기적인 나는 지금은 아무 이름도 기억이 안나는 그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겉으로는 공부를 핑계로 울고 불고 난리를 펴서 학원을 다녔다.
우리 집에 밥을 굶을 정도로 가난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얼마나 힘드셨으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자식에게 모든 것을 해주고 싶은 것이 부모님의 마음이라는데 참 못된 자식이었다. 물론 학원에도 학교에도 좋은 사람, 친구들은 많았다.

하지만, 나에겐 그들이 필요했지만, 그들은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존재였던 것
쩌리라는 단어를 아는가?
한때 무한도전에서 겉절이라는 단어가 화제일 때가 있었다. 그 말의 기원인 '겉절이'라는 단어처럼 , 나는 무리 속에 깊이 스며들지 못하고 존재감 없는, 겉만 스며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일진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양아치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평범하게 무리 속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무던히도 노력했다. 학교에 만화바카라도 빌려가서 돌려보고, 놀림받아서 기분이 나빠도 무리에서 떨어져 나갈까 봐 화도 못 냈었다. 원래 화를 잘 내는 성격도 아니었지만 그런 사유로 더 바보같이 착해졌던 것도 있었다. 그렇게 어떻게든 쩌리가 아닌 속까지 익은 묵은 김치가 되고 싶었지만, 나는 결국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결코 묵은 김치가 될 수 없었다. 내가 애써서. 그들에게 힘들게 조금이라도 다가가면 그들은 나를 끼워주었지만, 내가 다가가지 않으면 절대로 먼저 나를 찾지 않았다. 학원도 학교도 모두 같았다. 모두들 내가 다가갈수록 멀어졌다.
다행히도 나의 초중 담임선생님은 모두 너무나도 좋은 선생님이셨지만, 항상 밝은 나의 얼굴 속에 그런 고민이 있었던 것은 모르셨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외롭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좋은 추억 하나 없는 중학생 시절을 기억하기 싫어서 졸업 앨범을 팔았던 기억이 있다.

얼마나 좋은 기억이 없었으면 졸업앨범 팔아버렸을까? 물론 굳이 찾아보면, 기억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닐 테지만, 그 모든 기억을 덮을 정도로 중학생 때는 좋은 기억이 없다.

한때는 나를 괴롭히는 일들이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교 폭력이란 것이 과연 사라질 수 있을까?
없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과연 그들에게 무엇을 달라지게 할 수 있을까. 평범한 일반인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벌어졌던 일들을 경험 삼아 내가 바뀌는 것이다. 헬렌켈러가 할 말이다.

When one door of happiness closes, another one opens; but often we look so long at the closed door that we do not see the one which has opened for us.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힌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

학창 시절 힘들었던 일 때문에 행복했던 기억의 문이 닫힌 것과 동시에 나에겐 다른 문 강함이라는 문이 생겼다. 그리고 다행히도 나는 문이 닫혔다고 슬퍼하지 않고 다른 열린 문인 강함을 찾는 문으로 들어간 것이다.

정말 힘든 기억이고 아팠던 기억이다. 학창 시절, 괴롭힘으로 생긴 강함에 대한 결핍이 없었다면 나는 절대 지금의 내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았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면에서 결핍은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학폭을 옹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예방하고 교육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역사가 말해주듯이 항상 강자는 약자를 괴롭힌다.
'뿌리 깊은 나무'라는 드라마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천 년 전에도 천 년 후에도, 약자는 강자한테 빼앗긴다. 세상에 유일한 진리다. 강자는 약자를 병탄하고 인탄 한다”
너무나도 안타깝지만 맞는 말이다.
학교나 일반슬롯에서는 선생님이나 경찰이 어느 정도 막아주지만, 내가 보기에는 약한 방패막이 일뿐. 그뿐이다. 이것도 국제적으로 간다면 약한 것이 거의 죄와 동일시될 만큼 빼앗기고 수탈당한다.
그렇다면 괴롭힘, 폭력을 당할 때 학교에서 배우는 "멈춰"를 하면 멈추는가?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는가? 아니다. 그들은 더 괴롭힐 것이다. '멈춰'라는 헛소리가 통하는 경우는 어떤 힘이던 힘이 있는 경우이다. (무력이 아니라도)

학교에서 학교폭력에 대한 예방교육을 실시해서 그것이 어느 정도 줄어들 수는 있어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단지 법만을 믿고 있어야 하는가? 아니다.
우리가 할 것은 스스로의 힘을 키우는 것이다.
그 방법은 너무나도 많다. 단지 내가 격투기 선수라고 운동 얘기만 하지는 않겠다. 공부를 잘해도 되고, 똑 부러지게 말할 수 있게 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내 기준 제일 쉬운 방법이 운동을 하는 것이다. 격투기가 아니더라도 성장한 육체에서 나오는 자신감이 있다. 그래서 설사 약자라 하더라도, 강자에게 맞아서 기절하더라도 미친 사람처럼 달려들면 그들은 절대 다시 쉽게 보지 못할 것이다.
(물론 다른 방법도 많으니, 무엇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다)

당연히 겪지 않는 게 좋지만, 어쩔 수 없이 불행을 겪는다면, 단지 그 불행에 매여 있지만 말고, 극복해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다. 만약 이미 겪은 지 한참이 됐다면, 그들에 대한 복수는, 내가 그들이 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한다.


월, 화, 수, 목,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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