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바카라으로 배운 남자

프롤로그

by김상욱

2015년, 추운 겨울 12월 초, 전역이 한 달쯤 남았던 시절.
전역하기 한 달쯤 전 나는 동기들과 일을 만들었다. 나 혼자서 스스로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동기들의 힘을 빌렸다.
정확히는 그들 앞에서 약속했다.

무조건 그'일'을 성공시키겠다고.
약간 덧붙여 부연 설명을 하자면,
그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여자친구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여자인 사람 친구조차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러듯이 대학 가면 생긴다고 하고 취직하면 생긴다고 했지만, 나는 어느 순간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왜냐면 나는 대체로 여자들과 제대로 말도 못 했기 때문이다. 정말 웃기지만 사실이다.

이렇게 살다 간 연애도 못해보고 선봐서 결혼하겠구나. 싶어서 바카라부터 사서 공부했다.
연애를 바카라으로 배운 사람이 있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그게 바로 나다.

사실 그전에 친한 군대 동기들 몇 명이 여자친구들을 소개해준다고 했지만, 나는 감사한 마음으로 거절했다.

너무 웃기지만, 오롯이 나의 힘으로 이 문제를 헤쳐나가고 싶었다.
만약, 스스로의 노력이 아닌, 친구들이 소개해준 덕에 쉽게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나는 본능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느꼈었기에.

어쨌거나 마음을 정하고 가장 큰 교보문고에 가서 연애에 관한 바카라을 몇 시간씩 읽고, 사서 왔다.
바카라에는 여자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서 쓰여 있었다.


카톡을 하는 방법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여자를 대하는 법
등 지금 보면 참 재미있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 그것이 정답이었기에 그런가 보다 하고 바카라의 밑줄을 쳐가며 수십 번 읽었고 심지어 공바카라에 적어 필사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방법이지만 돌이켜본다면 대단한 일이다.


나에겐 사실 특출난 방법이 필요한 게 아니었다. 그냥 자신감이 필요했을 뿐이다.
스스로 나 자신에 대한 확신.
내가 할 수 있겠다는 확신.
나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오직 그것만이 필요했고, 나는 바카라을 통해 막무가내로 될 것이다라는 자신감을 얻었던 것이다.(UDT라는 인생의 큰 자신감을 얻게 되어서 그런 것 또한 있다) 그렇게 바카라을 읽고 휴가를 나온 나는 친구들에게 번호를 받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못 받아오면 뭐 밥을 산다던지 고기를 산다던지, 그 당시 군인신분으로 할 수 있는 최대의 것을 동기들에게 해주겠다고 했던 거 같다. 이걸 못하면 나는 진짜 물에 빠져 죽는다는, 그만큼 각오는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여자에게 번호를 물어볼 시나리오를 썼다. 내가 얼굴이 그렇게 잘생긴 것도 아니고 그냥 가서 물어보면 안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몇 시간의 고민 끝에 만들어진 시나리오는 이랬다.
아름다운 여성분을 발견한다면
김상욱 : 저기... 너무 아름다우셔서 그런데 혹시 번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여자 : (거절하는 투로) 죄송합니다. 제가 일이 있어서요
김상욱 : 아... 네
사실 제가 친구하고 근처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가, 유리창에 비친 당신의 모습이 너무 예뻐서 왔어요
사실 당신에게 말걸 때 입냄새 날까 봐, (주머니에서 리스테린을 꺼내주며) 리스테린까지 하고 왔는데.
번호 주세요ㅎㅎ

여자 : (웃으면서 번호줌)

내가 짜놓은 시나리오는 이거였다. 이렇게 하면 번호를 줄 거라고 생각했다.

무슨 아이디어로 이런 시나리오를 만들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하나는 기억난다.

"우선 100번은 실패한다는 각오로 한다"
저 웃긴 시나리오를 짜고 나서 며칠 이후, 나는 한겨울 12월, 휴가를 나갔다.

그리고 나름 군인티를 안 내고 멋있게 보이기 위해 휴가를 나오자마자 한 달 남은 군대 적금을 깨고, 그 돈으로 핸드폰, 구두를 사고 머리도 잘랐다.

그러고 나서 당시 집 앞에 대형 유니클로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옷을 50만 원어치 정도 샀다.

유니클로에서 50 이라니. 당시 병장 월급이 10만 원 좀 넘었던 거 같은데,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한 달 남았던 적금까지 깼던 기억이 선명하다.

과연 이 시나리오는 성공했을까?

아니, 처음에는 시작조차 못했다. 나는 나 자신의 치명적인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내가 여자에게 말을 걸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 추운 12월에 겨울,
번호를 물어보려고 오후 5시부터 덜덜 떨면서 영화관 앞을 서성거렸음에도 9시까지 단 한 번을 물어보지 못했다.

무서웠다.
거절당하면 어떡하지?
쪽팔린데?

도저히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때 당시 상영했던 내부자들을 혼자 보러 혼자 가며 소주 한 병을 샀다. 영화가 끝나고 그 빨간 뚜껑의 소주를 화장실에서 안주도 없이 원샷했다.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마시려고 했지만, 헛구역질 끝에 그 쓴 소주의 2/3 정도밖에 마시지 못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지금의 상황에서 되든 안 되든 도전하고 싶었다.
실패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지는 않았지만, 도전하지 못하는 나 자신은 너무 부끄러웠다.

실패하더라도 도전하고 싶었다.
그렇게 나는 취하지 않았음에도, 취했다고 생각하고 번호를 물어보자는 마음을 다시 먹었다.

그때쯤 되니, 긴장이 슬쩍 풀렸다. 이 모든 것이 게임처럼 느껴졌다. 술을 마셔서 그런 것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사실 그것이 큰 이유는 되지 못한다.
술을 한잔 마시니, 이것이 살짝 게임처럼 느껴졌다.
실패하던 성공하던, 이것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될 것이다.
아무 일도 없이, 그냥 휴가 나와서 친구들 만나서 술 먹고 놀고 집에서 자는 것보다, 나는 스스로에게 더 많은 추억과 경험을 선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영화가 끝나고, 밤 12시가 다 되었던 그때, 영화관 앞을 나오자마자 나는 첫 시도를 되었다.
하지만,
막상 앞에 말을 걸려고 다가가니, 심장 박동이 치솟았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내가 내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저기... 너무 아름다우셔서 그런데 혹시 번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짧으면 1초 만에 할 수 있는 말.
그 순간,
나는 태어난 1993년 10월 17일, 그 순간부터 2015년 12월의 추운 밤.
1초 만에 모든 추억이 느릿하게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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