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싸움과 첫사랑
중학생 때처럼 맞고만 살기 싫었던 나는 그런 나약한 모습을 감추고 싶어 했기에, 고등학생 입학한 지 3일 만에 싸움을 하게 되었다. 중학교때와 다른 모습, 다른 이미지로 학교를 다니기위해 내린 선택이었다. 물론, 아무 근거도 없는 싸움이 아니었다. 중학교 졸업 이후, 겨울방학 2-3개월 정도 복싱을 배워서 자신감에 차 있는 상태였다.
싸움이 날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일부러 별것도 아닌 일로 싸움을 걸었다. 당사자는 싸우지 말자고 했지만, 내가 의자까지 집어던지며 싸움을 부추겼다.
오전 쉬는 시간에 났던 싸움이었지만, 바로 싸우지 않고 방과 후 공터에 싸우기로 했다.
겉으로 티 내지는 않았지만, 격투기 경기만큼이나 심장이 뛰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고등학교 1 학년 첫 싸움. 학교 내에서 그 짧은 시간에 소문이 일파만파 퍼졌고 공터에서는 소문을 들은 일진 무리들이 때거지처럼 모여들었다.
구경꾼이 몰려들고, 드디어 시작된 싸움.
하지만, 평생을 뻗어보지 못한 주먹인데, 복싱 몇 번 했다고 나갈 일이 없었다. 전교생이 몰린 그곳에서 싸움이 시작되고, 나는 복싱장에 가면 처음배우는 콩콩이 스텝을 뛰었다. 그렇게 5초 정도 뛰었을까.
뭐하냐는 눈으로 쳐다본 내 상대는 바로 나를 넘어트려서 때렸다.
온 전교생이 보는 그 앞에서 개 잡듯이 맞았다.
러프하게 표현하자면, 개같이 두들겨 맞았다.
그리 오래 걸리진 않고 10초 정도 맞았었다(그리고 이후 알았지만, 나와 싸웠던 놈은 전학교 짱이었다. 어쩌면 운이 없어도 그렇게 없을까)
그렇게 입학한 지 3일 만에,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두들겨 맞았다. 얼굴에 시퍼렇게 든 멍을 숨기려고 얼굴을 가리면서 집에 들어갔지만, 결국에는 들켰고, 집안은 난리가 났다.
선생님에게 찾아가려던 부모님은 내가 어떻게든 말렸다(남자답게 정정당당히 싸운 거라 뭐라고 할 말도 없었고, 부모님께 이르기나 하는 그런 찌질한 사람이 되길 원치 않았다) 나는 침대가 푹 젖도록 울면서 잤다.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꿈이길 바라면서.
하지만, 꿈이 아니었다. 그리고 다음 등교날, 눈가에 시퍼렁게 멍이 든 나를 모든 사람이 나를 쳐다보고 것 같았고, 동시에 흉보는 것 같았다. 부끄러워서 죽고 싶었다.
그렇게 시퍼렇게 멍든 눈으로는 어디 다니지도 못했다. 어떻게 친구를 만들어 급식을 먹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렇게 시퍼렇게 멍든 눈을 가지고 친구를 만든다는 것이.
밥 먹으러 가고 누군가에게 친한 척 새로운 친구로서 다가간다는 것이 쪽팔리기도 했기에.
(하지만 이후에, 우연히 학교외부 독서실 옆자리에 앉게되어 서로의 도시락을 까먹고 나서 친해졌다.
참 신기할 따름이다.)
어찌어찌 시간은 흘러,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어 시간이 흘렀고 이후. 많은 일이 일어났다.
연이은 폭력
초중에 이어지던 폭력은 고등학교때도 어김없이 이어졌다.
실명을 언급할 수 없는 한 친구에게 집중적으로 괴롭힘 당하기도 했고, 또 다른 아이에게는 반 모든 친구들이 다보는 앞에서 수차례 따귀도 맞아봤다. 이유는 별것도 아니었다. 바카라상 옆에 걸려있던 그 친구의 가방을 잠시 바닥에 내려놓은 것. 내 것이 아닌 가방을 이동 수업시간에 잠시 바닥에 내려놓은 것이 따귀의 이유였다.
아프기도 아팠지만, 그 양아치에게 남들 앞에서 몇 대를 휘청거리며 맞고도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런 행동도, 소심한 반항도 없었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 자신의 마음. 그것보다 더 아팠던 것은 수십 명이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는 수치심이었다.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지만 집에 가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때리라고 배워도 마치 호랑이를 앞에 둔 토끼처럼, 개장수 앞에 강아지처럼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없었다.
학교 축제 기간에 자기 대신 동아리를 돌면서 도장을 받아오라고 협박하고 때렸던 일진. 정말 많이 나를 괴롭혔다(학교축제 때 동아리를 돌면서 도장을 받아야 출석이 인정되었기에 나를 시킨 것이다.) 또, 급식실에서 전교생이 다 보는데 뒤통수 때리고 자기가 아니라고 말하던 그 일진. 모든 순간과 이름까지 기억난다.
지금 보면 나의 제자들이나 고등학생이 2- 3학년 정도인데, 너무 어리다. 너무 귀엽고. 그 어린아이들이 도대체 뭐가 그리 나를 괴롭힐 게 있었을까? 하나하나의 사건이 그 당시 나에게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고 힘든 일이었지만
그 친구들에게 그것은 그냥 놀이었을 것이다. 기억을 못 할 것이다. 참 씁쓸하다.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건 이런 걸 얘기하는 거 아닐까. 폭력은 누군가의 기억에 오랫동안 오래도록, 아니 평생 기억에 남는다.
이 글을 보는 사람들은 장난으로라도 누군가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첫사랑
그렇게 힘든 시간 속에서도, 첫사랑이 찾아왔다. 착하고 여리기도 했지만, 열등감과 자기혐오에 가득 차 있던, 나는 결코 누군가를 좋아해도 좋아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전 글에 적었던 것처럼,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당사자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농담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다.
얼마나 자존감이 떨어져 있었으면 이런 생각을 할까? 지금도 그 꼬맹이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너는 참 좋은 아이라고 다독여주고 같이 끌어안아주고 펑펑 울어주고 싶다.
어쨌든 행복했다. 선배였던 누나를 보고 싶어도 참고 참다가, 그 마음을 못이겨 어떻게든 한번 보려고 그 누나 반의 복도의 창문으로 눈만 내밀어 몰래 훔쳐본적도 있다(정작 보지는 못하고, 몰래 훔쳐보던 나의 모습을 등 뒤에서 걸렸다) 독서실에서1층과 2층으로 나눠진 학교 독서실에서 어떻게든 우연을 핑계로 인사를 하려고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수백 번 계단을 오르내렸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내가 고2였던 당시, 고3이었던 누나는 결국 수능 이후 볼 수가 없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그래서 나는 수능 응원을 핑계 삼아서 마지막 누나의 얼굴을 보려고 수능시험장에 갔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오셔도 한번 타드린 적 없던 따뜻한 꿀물을 타고 초콜릿도 준비하고 뭐 이것저것 준비를 많이 했다. 2011년 11월 수능날 아침은 무척이나 추웠다.
제일 빠른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나는 시험장으로 갔고 거의 새벽 6시부터 학교 앞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누나가 일찍 올지 늦게 올지 모르니까. 하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건 정말 이런 아침에는 차량이 고사장에 들어올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눈을 크게 뜨고 차 안을 보아도 성별조차 확인할 수조차 없었다. 1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수업생들이 물밀듯이 들어왔다. 또 응원하는 사람들이 나 말고도 너무나도 많았다.
물밀듯이 들어오는 수험생을 혼자서 일일이 누나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었다. 결국 시간이 되어 8시 반쯤 되었을까. 철문이 닫히고 당연히 그때까지 누나를 보지 못했다. 아쉽기도 하고, 자바카라도 하고 있던 나는 그래도 기다렸다.
경찰차나 오토바이를 탄 수험생들이 늦게나마 도착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기는 뭐해서 기도를 하면서 서 있었다. 제발 내가 못 본 거라고 나를 알아보고도 그냥 간 거든지 못 알아보고 간 거든지. 별 상관없으니까 지금 고사장에 있게만 해달라고.
정문 앞에서 한 30분 정도 기도하는데 앞에 수위아저씨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냐고 물었다. 지금까지 안 오면 안 온 거니까 그냥 가라고 하는 얘기를 했다. 나는 씹고 그냥 계속 기도했다. 한 15분쯤 더 지났을까?
갑자기 뒤에서 차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다급히 뛰어내렸다. 저 불쌍한 영생이 누굴까 보단 나는 깜짝 놀랐다. 누나였다.
늦어서 바카라들은 가방이 무거워서 허둥지둥 대던 누나를 도와 가방을 잡고 학교 정문을 넘어 학교 출입구까지 뛰었다. 인사할 겨를도 없었다. 하지만 행복했다.
민폐만 끼치다가 너무나 마지막에 그래도 도움을 줬구나 해서. 너무 추워서 벌벌 떨었지만, 동시에 너무 행복했다. 그러나 다음 날 그러다 다음날 누나에게 시험 잘 봤냐고 연락했고 그 누나는 고맙다며 예의상 하는 말인 "다음엔 밥 한번 먹자"라고 얘기를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너무 행복한 나머지 그날 이후로 밥을 굶었다.
이유는 내가 밥을 맛있게 먹어주면 그 누나가 좋아할 것 같아서. 참 웃기지 않는가?
(사랑을 하면 다들 광대가 되고 바보가 된다는데, 그 말에 너무나도 공감한다)
그리고 3일동안 굶었다. 그리고 3일이 지나서, 그 누나가 예의상 한말이라는 걸 알고 슬퍼했다.
그리고 전화를 했다. 전화에서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왜 밥 안 사주냐고, 약속을 안 지키냐고, 3일을 굶었다고 얘기했다.
당시 누나는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을까. 뭐 그렇게 끝은 흐지부지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이처럼 세상 모든 사람에게 구구절절한 스토리가 있듯이 나도 또한 있다. 그 모든 것이 지나고 보니 모두 너무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비록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이 글을 빌어 학창 시절에 나에게 의도치 않게 이런 좋은 기억과 추억을 만들어준 그 누나에게 감사하다.
성인들의 사랑도 물론 아름답지만, 학창 시절의 사랑은 그것과는 다른 또 다른 의미, 그때 만이 가질 수 있는 풋풋함과 아름다움이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