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옳았다는 말을 지키는 동안, 누가 바닥을 닦는가
남자는 물건을 고르는 데 자신이 있었다. 특히 오래 쓰는 물건일수록 좋은 것을 사야 한다고 믿었다.
가구를 살 때는 나무의 종류를 따졌고,
그릇을 살 때는 흙의 질감과 유약의 색을 살폈다.
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제대로 만든 물건을 사는 것이 결국 돈을 아끼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야기를 자주 했다.
"물건은 보는 눈이 있어야 해.
싸다고 아무거나 사면 결국 두 번 사게 돼."
아내는 그 말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남편이 물건을 고르는 데 시간을 들이는 것이야
나쁠 이유가 없었다.
가끔 필요하지 않은 것까지 사 오는 일이 문제였지만, 그렇다고 매번 다툴 일도 아니었다.
그들의 집 찬장에는 이미 그릇이 많았다.
결혼할 때 마련한 그릇도 있었고,
여행지에서 사 온 찻잔도 있었다.
선물 받은 접시 가운데는 포장을 뜯지 않은 것도 있었다.
아내는 새 그릇이 들어올 때마다
찬장 안쪽의 물건을 꺼내 자리를 만들었다.
남편은 그 일을 잘 몰랐다.
자신이 고른 물건이 식탁에 놓이는 것까지는 관심이 있었지만, 그 물건이 들어가기 위해 무엇을 치워야 하는지까지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느 토요일이었다.
남자는 근교의 작은 도자기 공방에 다녀왔다.
집으로 돌아온 그의 손에는 종이 상자가 하나 들려 있었다.
"이것 좀 봐."
그는 식탁 위에 상자를 올려놓고 포장을 풀었다.
청록색 도자기 물병 하나와 잔 두 개가 나왔다.
물병은 손으로 빚은 듯 표면이 조금 고르지 않았다.
유약은 아래쪽으로 흐른 자국이 있었고, 빛이 닿는 곳마다 푸른빛과 회색빛이 다르게 보였다.
아내도 예쁘다고 생각했다.
"색이 좋네요."
그 한마디에 남자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지? 내가 한참 보고 골랐어."
그는 물병을 들어 바닥을 보여주었다.
"이런 건 공장에서 찍어낸 것하고 달라. 흙도 좋고, 굽는 온도도 중요하거든."
"얼마 줬어요?"
남자는 가격을 말했다.
아내는 조금 놀랐다.
생각보다 비쌌다.
"물병이 그렇게 비싸요?"
"이 정도면 괜찮은 가격이야. 오래 쓸 거니까."
아내는 더 묻지 않았다.
남자는 물병을 식탁 한가운데 놓았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찬물을 꺼내 담았다.
투명한 유리병에 담겨 있을 때와 달리 물이 특별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는 잔에 물을 따라 마셨다.
"물맛도 괜찮네."
아내가 웃었다.
"물은 아까 그 물인데요."
"그릇이 다르면 마시는 기분도 다르지."
남자는 만족스러워했다.
그날 저녁 식탁에는 새 물병이 놓여 있었다.
문제는 사흘 뒤에 생겼다.
아내는 아침 식탁을 정리하다가 물병 아래가 젖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물을 따르다가 흘린 줄 알았다. 물병을 들어 옆으로 옮기고 행주로 식탁을 닦았다.
그리고 물병을 다시 놓았다. 점심때가 지나 식탁을 보니 같은 자리에 물기가 번져 있었다.
아내는 물병의 겉면을 마른 수건으로 닦았다. 이번에는 안에 들어 있던 물도 절반쯤 비웠다.
한 시간 뒤에도 바닥은 젖어 있었다.
퇴근한 남편에게 말했다.
"그 물병, 물이 새는 것 같아요."
남자는 가방을 내려놓다 말고 물병을 바라보았다.
"무슨 소리야?"
"밑에 자꾸 물이 고여요."
그는 물병을 들어 살폈다.
겉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어 보였다.
"물을 따르다가 흘렸겠지."
"아니에요. 닦아놓고 다시 봤어요."
"찬물을 넣으면 바깥에 물기가 맺힐 수도 있어."
아내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냉장고에서 꺼낸 찬물이 아니라 실온에 두었던 물을 담아놓았을 때도 같은 일이 생겼다.
"그런데 계속 그래요."
남자는 물병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도자기는 원래 조금씩 다를 수 있어. 손으로 만든 거잖아."
아내는 잠시 남편을 바라보았다.
다르다는 말과 물이 샌다는 말은 같은 뜻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말을 굳이 다시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는 서랍에서 마른 천을 꺼냈다.
두 겹으로 접어 물병 아래에 깔았다.
"일단 이렇게 놓을게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친구 부부가 집에 놀러 왔다.
저녁을 먹고 식탁을 정리한 뒤 차를 마시는 자리였다.
남자는 새로 산 도자기 물병을 가져왔다.
"이거 한번 봐."
친구가 물병을 들어보았다.
"예쁘네. 어디서 샀어?"
남자는 공방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연히 찾아간 곳인데 생각보다 작품이 좋았고,
주인이 직접 가마를 운영하고 있었으며, 같은 색을 다시 내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는 이야기였다.
친구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싸 보이긴 하네."
"이런 건 오래 두고 쓰는 거야."
남자는 물병을 다시 식탁 가운데 놓았다.
아내는 손님들에게 차를 내오다가 물병 아래의 천을 보았다. 천 가장자리가 짙게 젖어 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물병을 들어 다른 곳에 놓고 젖은 천을 치웠다.
친구의 아내가 물었다.
"뭐 묻었어요?"
"아니에요. 물이 조금 흘러서요."
아내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서 새 천을 가져왔다.
남자는 친구에게 공방에서 물병을 고를 때 무엇을 살펴야 하는지 설명하고 있었다.
그는 아내가 식탁을 닦는 모습을 잠깐 보았다.
무슨 일인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친구 앞에서 물병의 결함을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조금 전까지 얼마나 좋은 물건인지 설명했기 때문이다.
"수제품은 같은 게 하나도 없다는 게 매력이야."
그는 말을 이어갔다.
아내는 새 천을 물병 아래에 깔았다.
친구들은 차를 마셨다.
저녁은 평소처럼 지나갔다.
남자가 자랑한 물병도 여전히 식탁 가운데 있었다.
다만 그 물병 아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손님들이 돌아간 뒤였다.
아내는 식탁을 정리하며 말했다.
"공방에 연락 한번 해보면 안 될까요?"
남자는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무슨 연락?"
"물병이요. 물이 샌다고요."
"그 정도 가지고 뭘."
"그 정도가 아니에요. 매일 천을 갈아야 하잖아요."
남자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럼 물을 조금만 담으면 되지."
"물을 조금 담아도 새요."
"다른 용도로 쓰면 되잖아."
아내는 손에 들고 있던 천을 내려놓았다.
"무슨 용도로요?"
남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꽃병으로 쓰면 되겠다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하지만 꽃을 꽂아두어도 물은 샐 것이었다.
마른 꽃을 꽂아두면 괜찮겠지만, 그것은 처음 그 물병을 샀던 이유와는 달랐다.
"그냥 장식용으로 둬도 괜찮잖아."
그가 말했다.
아내는 물병을 바라보았다.
"그럼 처음부터 장식품을 산 거네요."
그 말이 남자를 불편하게 했다.
자신이 비싼 돈을 주고 쓸모없는 물건을 사 왔다는 뜻처럼 들렸다.
"왜 그렇게 말을 해?"
"뭐가요?"
"꼭 내가 잘못 샀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잖아."
아내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천을 집어 들었다.
"물병이 새니까 확인해 보자는 거예요."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
남자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아내는 천을 들고 세탁실로 갔다.
남자는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그러나 화면에 뜬 글이 잘 읽히지 않았다.
그는 아내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떠올렸다.
물병이 새니까 확인해 보자는 거예요.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빴다.
사람은 물건을 사면서 돈만 지불하지 않는다.
때로는 그 물건에 자신의 안목도 함께 걸어놓는다.
좋은 물건을 고르면 자신이 현명한 사람이 된 것 같고, 남들이 칭찬하면 자신의 판단이 인정받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잘못 산 물건을 인정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 물건 하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그것을 고른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남자에게 물병은 단순한 물병이 아니었다.
공방을 찾아간 시간과 물건을 알아보는 안목,
비싼 값을 치르면서도 좋은 것을 골랐다는 자부심이 그 안에 함께 담겨 있었다.
그는 물병이 샌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그 모든 것이 부정당할 것처럼 느꼈다. 그러나 물병에 금이 갔다고 해서 그가 평생 해온 모든 판단이 잘못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릇 하나를 잘못 골랐을 뿐이었다.
남자는 그것을 구분하지 못했다.
우리는 종종 그렇게 살아간다.
한 번 내린 결정을 바꾸면 자신의 신념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낀다. 누군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면 그 사람이 나를 공격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실을 살피기 전에 자신을 방어한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어."
"원래 그런 거야."
"그 정도는 누구나 감수해."
때로는 모두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유가 있다고 해서 문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자신의 판단을 지키는 동안
그 문제를 다른 사람이 감당하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남자는 좋은 물병을 샀다고 말하는 것으로 자기 역할을 끝냈다. 물이 새는 것을 발견한 사람은 아내였다.
식탁을 닦은 사람도 아내였다.
젖은 천을 갈고 빨아야 했던 사람도 아내였다.
남자는 물병의 가치를 설명했고, 아내는 물병의 결함을 처리했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지키고 있었다.
아내는 그 선택 때문에 생긴 일을 하고 있었다.
남자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동안 물은 계속 새었다. 그리고 누군가는 계속 닦아야 했다.
다음 주 수요일이었다.
아내는 오전에 병원 예약이 있어 일찍 집을 나섰다.
남자는 재택근무를 하는 날이었다.
점심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았다가 물병 아래에 깔린 천을 보았다. 천은 젖어 있었다.
그는 물병을 들고 천을 치웠다.
식탁 위에는 손바닥만 한 물자국이 남아 있었다.
남자는 행주를 가져와 닦았다. 그리고 물병을 다시 놓았다.
한참 뒤 커피를 마시러 부엌에 갔다가 식탁을 보았다. 물자국이 다시 생겨 있었다.
그는 물병을 들어보았다.
바닥에 작은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이번에는 물병 안의 물을 모두 비웠다.
겉면을 깨끗이 닦고 물병을 뒤집어 살폈다.
바닥 가까이에 가느다란 선 하나가 있었다.
손톱으로 문질러보니 미세하게 걸리는 느낌이 났다. 금이었다.
그는 한동안 그 자리를 들여다보았다.
이상할 것은 없었다.
물병에 금이 있으니 물이 샜던 것이다.
아내가 처음 말했을 때부터 알 수 있었던 일이었다.
그런데 그 간단한 사실을 확인하는 데 열흘이 넘게 걸렸다. 남자는 식탁 위의 물기를 다시 닦았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했다.
아내는 이 일을 매일 했겠구나.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손님이 온 날에는 손님들 몰래 한 번 더.
그는 식탁 아래쪽까지 살폈다.
물기가 흘러내린 자리에 희미한 얼룩이 남아 있었다.
손톱으로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았다.
남자는 아내가 쓰던 천을 가져왔다.
수도꼭지를 틀고 천을 헹궜다.
물을 짜보니 생각보다 많이 나왔다.
한 번 더 헹궜다.
천의 접힌 부분에는 희미한 냄새가 남아 있었다.
그는 세제를 조금 묻혀 다시 빨았다. 그동안 아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처음으로 알 것 같았다.
거창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 쉽게 지나쳤던 일이다.
매일 조금씩 반복해야 하는 일.
남자가 괜찮다고 말하는 동안
누군가는 괜찮지 않은 것을 계속 처리하고 있었다.
그는 공방에 전화를 걸었다.
직원이 전화를 받았다.
"얼마 전에 물병을 하나 구입했는데요."
"네, 어떤 문제가 있으신가요?"
남자는 잠시 머뭇거렸다.
"물이 샙니다."
말하고 나니 별일이 아니었다.
직원은 구입한 날짜를 물었다.
그리고 물병 바닥의 사진을 보내달라고 했다.
"사진을 확인한 다음에 교환이나 수리가 가능한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남자는 사진을 찍어 보냈다.
잠시 뒤 답장이 왔다.
바닥에 금이 간 것으로 보이며, 공방으로 가져오면 상태를 확인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물병을 씻어 말렸다.
처음 사 왔을 때 들어 있던 상자를 찬장에서 꺼냈다.
완충재가 남아 있었다.
물병을 조심스럽게 감쌌다.
그러다가 잠시 웃었다.
물이 새는 물병을 포장하면서도 깨질까 봐 조심하고 있는 자신이 우스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이유였다.
잘못된 물건이라고 해서 함부로 다룰 필요는 없었다.
그는 상자를 닫았다.
저녁에 아내가 돌아왔다.
식탁 위에는 물병이 없었다.
아내는 잠시 빈자리를 바라보았다.
"물병은요?"
"공방에 가져가려고."
"연락했어요?"
"응. 바닥에 금이 있더라고."
아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요."
남자는 조금 더 말을 하고 싶었다.
사실은 자신이 얼마나 꼼꼼하게 살폈는지,
공방에서는 뭐라고 했는지, 교환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말을 모두 하고 나면 또다시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설명처럼 들릴 것 같았다.
그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말했다.
"그동안 불편했지?"
아내는 외투를 벗어 걸었다.
"좀 그랬죠."
"미안해."
아내는 그를 바라보았다.
"물이 새는 건 별일 아닌데, 자꾸 아니라고 하니까 그게 더 답답했어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변명할 말이 떠올랐지만 하지 않았다.
아내는 부엌으로 들어가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그도 따라 들어갔다.
"내가 밥 할까?"
"밥은 해놨어요. 반찬만 꺼내면 돼요."
남자는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냈다.
아내는 평소처럼 그릇을 놓았다.
그날 저녁 식탁에는 청록색 물병 대신 오래 쓰던 유리병이 놓였다.
아내가 물을 따랐다.
식탁은 젖지 않았다.
두 사람은 밥을 먹었다.
대단한 화해도, 긴 대화도 없었다.
남자가 물병의 금을 인정했다고 해서
아내가 그동안 느꼈던 답답함까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더 이상 젖은 천을 갈아야 할 이유는 없어졌다. 설거지를 마친 남자는 세탁실로 갔다.
물병 아래에 깔아 두었던 천이 세탁 바구니에 들어 있었다.
그는 천을 꺼내 세면대에 펼쳤다.
물을 틀었다.
천을 적시고, 접힌 자리를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한 번 헹군 뒤 다시 물을 받았다.
오래 젖어 있던 부분에는 여전히 희미한 얼룩이 남아 있었다. 그는 조금 더 문질렀다.
그러다 손을 멈추었다.
어떤 얼룩은 한 번 씻는다고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천을 다시 헹궜다.
그리고 물기를 꼭 짜서 빨랫줄에 널었다.
거실로 돌아오니 식탁은 말라 있었다.
남자는 잠시 그 자리를 바라보았다.
처음 물병을 사 왔던 날, 자신은 그릇의 아름다운 빛깔만 보고 있었다. 물이 새기 시작한 뒤에도 그릇을 바라보았다.
아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보지 않았다.
그제야 그는 알았다.
자신이 지키려고 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동안 누가 그것을 대신 지탱하고 있었는지.
오늘의 우리에게
우리는 틀린 선택보다 그 선택을 했던 자신을 버리기 어려워한다.
그래서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이유를 찾고,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설명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내가 옳았다는 말을 지키는 동안에도 물은 계속 샌다.
그리고 내가 지키려 했던 자존심의 무게를,
곁에 있는 사람이 대신 닦아내고 있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