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사흘

나흘째 되던 날 오후, 할머니의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다. 처음 막혔던 혈관 근처가 다시 막혔다고 했다. 할머니는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그 뒤로 눈을 뜨지 못했다. 의사는 가족들을 불러 마음의 준비를 해두시라고 했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아버지만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면회는 하루 두 번, 삼십 분씩만 허락되었다. 밤에는 그가 남겠다고 했다. 중환자실 앞 대기실 의자에서 쪽잠을 자다 깨면, 그는 문 위의 시계부터 올려다보았다.

엿새째 되는 날 새벽, 간호사가 대기실 문을 열고 그를 불렀다. 그가 들어갔을 때, 모니터의 숫자들이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그는 침대 곁에 서서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손은 아직 따뜻했다. 가족들에게 연락하셔야 한다는 간호사의 말에, 그는 한 손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다른 손은 놓지 않았다.

가족들이 도착하기 전에, 할머니는 숨을 거두었다.

얼마 뒤 식구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아무도 크게 울지 않았다. 아버지는 문 앞에 한참 서 있다가 들어왔고, 어머니는 들어오자마자 할머니의 이불깃부터 여몄다. 여동생은 침대 발치에 서서 두 손을 모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그제야 할머니의 손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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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 사진이 필요하다고 장례지도사가 말했을 때, 가족들은 서로를 쳐다보았다. 동생이 먼저 핸드폰을 꺼냈다. 화면 위로 사진들이 빠르게 넘어갔다. 카페, 바다, 남자친구와 찍은 사진들. 동생의 손가락이 점점 느려지더니, 한 장에서 멈췄다. 마당에서 할머니 손을 잡고 활짝 웃고 있는 어린 동생. 영정으로 쓰기에는 너무 오래된 사진이었다. 그도 자기 핸드폰을 꺼내 사진첩을 열었다. 회사 서류, 영수증, 모니터를 찍은 사진들뿐이었다. 할머니는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아버지가 할머니 방 서랍에서 오래된 증명사진 한 장을 찾아왔다. 몇 해 전 주민등록증을 새로 만들며 찍은 사진이었다. 표정 없이 정면을 보는 얼굴이 액자에 담겼다. 동생은 화면이 꺼진 핸드폰을 쥔 채, 그 사진을 오래 올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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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아침, 입관이 있었다. 하얀 수의를 입은 할머니는 중환자실에서보다 더 작아 보였다. 장례지도사가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시라고 하자, 가족들이 한 사람씩 다가갔다.

아버지가 가장 오래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았다. 아버지는 할머니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한참 뒤 손을 뻗어 할머니의 손등을 한 번 쓸었고, 그 위에 자기 손을 잠깐 얹어두었다. 장례지도사가 다가오자 아버지는 손을 천천히 거두었다. 아버지가 그렇게 오래 누군가를 들여다보는 걸, 그는 처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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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는 생각보다 조용했다. 동네 경로당에서 왔다는 노인 몇 분이 향을 피우고, 오래 영정 앞에 앉아 있다 갔다. 신발을 신으며 그들이 주고받는 말이 들렸다. “그 양반, 맨날 손주 반찬 걱정만 하더니.” 신발을 건네드리던 그의 손이 잠깐 멈췄다.

그는 빈소 입구에 서서 문상객들의 신발을 정리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다. 사람이 드나들 때마다 흐트러진 신발을 하나씩 가지런히 돌려놓았다. 손을 움직이고 있는 동안에는 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됐다.

동생은 사흘 내내 화장을 하지 않았다. 검은 상복 차림으로 접객실과 빈소를 오가며 상을 치우고 음료를 날랐다. 그가 아는 동생은 집 앞 편의점에 갈 때도 거울을 몇 번씩 들여다보던 사람이었다.

둘째 날 오후, 동생의 남자친구가 부모님과 함께 왔다.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동생의 손을 잡고 무언가 말했고, 동생은 고개를 숙였다. 부은 눈을 가리지도 않았다. 손님들이 돌아가자 동생은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돌아온 동생의 얼굴에는 물기가 남아 있었고, 앞머리끝이 젖어 있었다. 동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쟁반을 들었다.

둘째 날 저녁, 회사 사람들이 왔다. 팀장은 봉투를 건네며 위로의 말을 몇 마디 했고, 옆자리 대리는 그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렸다. 맨 뒤에 서 있던 신입 사원은 절할 방향을 몰라 잠깐 머뭇거렸다. 그는 손짓으로 조용히 방향을 알려주었다. 절을 마친 신입이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처음이라서요.” “괜찮아요. 저도 처음이에요.” 그 말을 하고 나서야, 그는 그게 사실이라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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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사흘 동안 접객실 부엌을 거의 떠나지 않았다. 장례식장에서 내준 앞치마를 받아 든 어머니는 끈을 뒤로 돌려 묶느라 한참을 더듬거렸다. 그는 다가가려다 걸음을 멈췄다. 어머니는 결국 혼자 끈을 묶었다. 그러고는 육개장을 나르고 빈 그릇을 치웠다. 친척들이 좀 쉬라고 해도 어머니는 고개만 저었다.

그날 저녁, 잠깐 집에 다녀온 어머니의 손에 김치통이 들려 있었다. 할머니가 쓰러지기 며칠 전에 담가둔 김치였다. 접객실 상마다 김치가 조금씩 올라갔다. 그도 한 점 집어 먹었다. 매일 저녁 식탁에 올라오던, 너무 익숙해서 맛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맛이었다. 옆자리 친척이 말했다. “어머님 김치네. 맛이 그대로야.” 그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밤늦게 물을 가지러 부엌에 들렀을 때, 어머니가 혼자 서 있었다. 김치통 바닥에 남은 김치를 한 점 집어 입에 넣고, 어머니는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부엌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가, 소리 내지 않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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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상주 완장을 찬 채 문상객을 맞았다. 그날 밤늦게, 아버지 회사의 젊은 직원 하나가 혼자 찾아왔다. 절을 마친 직원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선배님,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직원은 무슨 말을 더 하려다 아버지의 손을 한 번 잡고 일어났다. 아버지는 그 직원이 나간 문 쪽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문상객이 끊기자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장례식장 뒤편 주차장으로 나가보았다. 아버지가 가로등 아래 서서 담뱃갑을 쥐고 있었다. 한참을 그대로 들고만 있다가, 아버지는 한 대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는 다가가지 않고 출입문 앞에 서 있었다. 담배가 절반쯤 탔을 때, 아버지는 그것을 바닥에 비벼 끄고 돌아섰다. 눈이 마주쳤다. “들어가자.” 아버지가 먼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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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빈소에는 그와 동생만 남았다. 향이 꺼지지 않게 지켜야 한다고 해서, 둘은 영정 앞에 조금 떨어져 앉았다. 향이 반쯤 타들어갈 때마다 그가 일어나 새 향에 불을 붙였다.

새벽 두 시쯤, 동생이 말했다. “오빠 좀 자.” “너나 자.” 그 뒤로 한참 말이 없었다. 동생이 영정을 올려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할머니 사진, 어릴 때 그거 하나밖에 없더라.” 그는 향을 바꿔 꽂으며 짧게 답했다. “나는 그것도 없어.”

둘은 그 뒤로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창밖이 희뿌옇게 밝아올 때까지, 향은 한 번도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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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인하는 날 아침, 하늘은 맑았다. 운구차 뒤를 따르는 승합차에 네 식구가 탔다. 그의 무릎 위에는 영정 액자가 놓여 있었다. 동생은 그 옆에 앉았다. 차가 커브를 돌 때마다 두 사람의 어깨가 잠깐씩 닿았다가 떨어졌다. 둘 다 자리를 고쳐 앉지는 않았다. 앞자리의 아버지는 창밖만 보았고, 어머니는 무릎 위에 모은 손을 풀지 않았다.

모든 절차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건 해가 질 무렵이었다. 현관문을 열자 사흘 동안 비어 있던 집의 냄새가 났다.

현관 한쪽에 할머니의 슬리퍼가 놓여 있었다. 그가 사다 놓았던 그 슬리퍼였다. 식구들은 차례로 신발을 벗고 그 옆을 지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맨 마지막에 들어온 그는 허리를 숙여, 조금 비뚤어져 있던 슬리퍼를 가지런히 돌려놓았다.

그날 밤, 아무도 그 슬리퍼를 치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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