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새벽, 그는 여느 때처럼 어두운 강가에 자리를 잡았다. 안개가 채 걷히지 않은 물 위로 찌 하나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그 흔들림을 눈으로 좇으며,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을 하나씩 흘려보냈다.
회사에서 후배에게 밀려나고 있는 자신의 자리, 언제부턴가 남처럼 느껴지는 아내의 뒷모습, 그리고 마트 계산대에서 나누던 몇 마디의 온기 같은 것들. 그는 그 생각들을 어디에도 꺼내놓을 수 없었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그는 늘 별일 없는 사람이어야 했다. 그저 흘러가는 강물을 보고 있자면, 그 생각들을 붙잡지 않은 채 함께 흘려보낼 수 있었다.
그는 담뱃갑을 꺼내 한 대를 물었다. 라이터 불이 붙는 순간, 계산대 너머로 담배를 건네주던 여자의 손짓이 잠깐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연기를 길게 내뱉으며, 그는 그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워내진 않았다. 그저 담배 한 대가 다 타들어가는 동안만, 그 생각을 가만히 두었다.
몇 해 전만 해도 그는 자신의 앞날을 어렴풋이나마 그려볼 수 있었다. 요즘은 그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후배들은 저만치 앞서가고, 집에서는 자신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하루가 지나갔다. 그 사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자신이란 존재는 조금씩 지워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는 찌가 떠 있는 물 위를 한참 바라보았다. 입질이 없어도 상관없었다. 물살에 흔들리는 찌를 따라 숨을 고르고 있으면, 굳었던 어깨가 조금씩 내려갔다. 요즘 그가 마음의 끈을 편히 놓을 수 있는 건, 이 새벽의 강가뿐이었다.
물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없던 강가였다. 한참 만에 시간을 보려고 핸드폰을 꺼냈을 때, 화면에는 부재중 전화 한 통과 문자 하나가 떠 있었다. 강가라 신호가 잘 잡히지 않는 탓에 벨 소리조차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아들이었다. 주말 아침에 아들이 먼저 연락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문자를 열기도 전에, 그는 가슴 한쪽이 먼저 내려앉았다. “아버지, 할머니 쓰러지셔서 지금 구급차로 병원 가는 중이에요.” 그는 낚싯대를 강물에 드리운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
차를 몰면서, 그는 신호가 걸릴 때마다 핸드폰을 다시 확인했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다는 걸, 그는 세 번째 신호에서야 알아챘다. 지금 자신이 무슨 꼴로 앉아 있는지, 무슨 생각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는지, 그런 걸 돌아볼 틈이 없었다. 그저 한시라도 빨리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병원 주차장에 차를 대고 뛰어 들어가다가, 그는 문득 걸음을 늦췄다. 낚싯대를 강가에 그대로 두고 왔다. 물살에 쓸려갔을지도 몰랐다. 아깝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그가 응급실 앞에 도착했을 때, 아내가 먼저 와 있었다. 문화센터에서 입던 앞치마를 그대로 두른 채였다. 대기 의자에는 아들이 앉아 있었다. 맨발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숨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고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는 아들 옆에 가 앉았다.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아들의 어깨에 잠깐 손을 얹었다가 내렸다.
*
아들에게 상황을 전해 듣는 동안, 그는 몇 번이고 같은 질문을 속으로 되풀이했다. 왜 몰랐을까. 매일 아침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그는 어머니의 낯빛을 마지막으로 언제 제대로 들여다봤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요 몇 달, 그는 자기 생각에만 빠져 있었다. 회사에서는 후배들에게 조금씩 밀려나고 있었고, 집에서는 아내와 나누는 말이 점점 줄어들었다. 퇴근길에는 마트에 들러 계산대의 그 여자를 떠올리곤 했다. 그러는 동안 같은 집에 사는 어머니가 늙어가고 있다는 건 보지 못했다. 그는 병원 복도 바닥만 내려다보았다.
딸은 가장 늦게 도착했다. “할머니는? 괜찮으신 거야?”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묻는 딸에게,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정적이 길어지자 딸이 다시 아내에게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그렇게 안 좋으셨대?” 아내가 머뭇거리며 답했다. “며칠 전부터 기운이 좀 없어 보이시긴 했는데...” “근데 왜 병원엘 안 데려갔어.” 딸의 말끝이 뾰족했다. 아내도, 그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그 말이 자신을 향한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가장 먼저 그 화살을 자신의 몫으로 가져다 놓았다. 며칠 전부터 기운이 없어 보였다는 걸, 정작 그는 알아채지도 못했다.
*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아내는 얇은 앞치마 차림으로 복도에 서 있었다. 병원 안은 냉방이 세서 그런지 아내가 팔짱을 낀 채 몸을 살짝 웅크리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는 별생각 없이 자신의 점퍼를 벗어 아내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아내가 잠깐 그를 올려다보았다. 별다른 말이 담긴 눈빛은 아니었는데도, 그는 이상하게 그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피곤한 기색이 얼굴 곳곳에 내려앉아 있었다. 언제부터 저렇게 지쳐 있었던 걸까.
문득 마트 계산대의 그 여자가 떠올랐다. 담배를 건네받으며 몇 마디 나누던 일, 그 뒤로 괜히 발걸음이 가벼워지던 퇴근길. 그땐 그게 작은 위안이었다. 그런데 점퍼를 걸친 채 옆에 서 있는 아내를 보고 있자니, 그 일들이 어쩐지 먼 남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 여자의 얼굴이 잠깐 흐릿해졌다. 그런데도 계산대 너머에서 건네던 "오늘도 늦으셨네요" 하는 목소리만은, 이상하게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의사가 나와 상태를 설명하는 동안, 가족들은 나란히 서서 그 말을 들었다. 뇌경색 초기 증상, 지금은 안정을 취하고 있다는 말, 며칠 더 지켜봐야 한다는 말. 그는 그 단어들을 하나하나 새겨들으려 애썼지만, 좀처럼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면회가 허락되어 병실에 들어섰을 때, 산소호흡기를 낀 어머니는 평소보다 작아 보였다. 그 모습 하나만이 오래 남았다.
복도 저편, 자판기 앞에 아들과 딸이 서 있었다. 둘은 한 걸음쯤 떨어진 채 각자 종이컵을 들고 있었다. 무슨 말을 주고받는 것 같지는 않았다. 둘이 저렇게 한자리에 서 있는 걸 본 게 언제였는지, 그는 기억나지 않았다. 어색해 보였지만, 그래도 둘 다 먼저 자리를 뜨지는 않았다. 그는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
면회가 끝나고, 가족들은 교대로 병실을 지키기로 했다. 그는 아내와 나란히 복도 의자에 앉아 순서를 기다렸다. 오랜만에 나란히 앉아본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는 굳이 그 말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당신도 좀 쉬어.” 그가 먼저 말을 건넸다. 아내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나 좀 자.” 짧은 대화였지만, 며칠 만에 처음으로 아내가 자신에게 건넨 진짜 말 같았다.
잠시 후 아내가 물었다. “당신 요즘도 낚시 가?”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어, 뭐.” 그는 짧게 답했다. 아내는 더 캐묻지 않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무심한 끄덕임이 이상하게 편안했다.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이, 그 순간만큼은 나쁘지 않았다.
*
그날 밤늦게, 그는 혼자 먼저 집에 돌아왔다. 현관에 들어서자 불 꺼진 집 안이 유난히 조용했다. 신발을 벗다 말고 그는 잠깐 벽에 손을 짚었다. 부엌 식탁 위에는 어머니가 아침에 해둔 반찬 그릇이 랩을 씌운 채 그대로 놓여 있었다. 그는 소파에 몸을 내려놓았다. 셔츠 단추 하나를 풀다 말고, 한동안 그대로 앉아 있었다. 한참 뒤에야 그는 몸을 일으켜 씻으러 들어갔다.
씻고 나와 옷걸이를 보니, 늘 걸려 있던 점퍼 자리가 비어 있었다. 점퍼는 아직 병원에서 아내의 어깨에 걸려 있을 것이었다. 그는 빈 옷걸이를 잠깐 바라보다가 안방으로 들어갔다. 침대 한쪽이 비어 있었다. 그는 아내가 눕던 쪽으로 몸을 돌리고 불을 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