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전, 그는 늦잠을 잘 생각으로 알람을 꺼두었다. 눈을 뜬 건 열한 시가 다 되어서였다. 거실로 나가니 집 안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평소라면 부엌에서 도마 소리 정도는 들려올 시간이었다.
물을 마시러 부엌으로 향하던 그는, 화장실 문이 반쯤 열려 있는 걸 보았다. 안쪽에서 인기척이 없었다. 그는 별생각 없이 문을 마저 열었다.
할머니가 타일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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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로 몇 분 동안 그가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 나중에도 그는 순서대로 기억해내지 못했다. “할머니, 할머니” 하고 부르며 어깨를 흔들었던 것 같고, 핸드폰을 찾아 이리저리 헤맸던 것 같고, 119를 누르면서 손이 떨려 숫자를 두 번 잘못 눌렀던 것 같았다.
“환자분 지금 의식 있으세요?”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침착하게 물었다. “아니요, 없어요. 저희 할머니가...” 그는 거기서 말을 잇지 못했다. 상담원은 몇 가지를 더 물었고, 그는 자신이 무슨 대답을 했는지도 뒤늦게야 떠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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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대원들이 도착했을 때, 그는 현관문을 열어둔 채 그들을 맞았다. 두 사람이 들것을 들고 들어와 익숙한 손놀림으로 할머니의 상태를 살폈다. 그는 그 옆에 서서 그저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보호자분, 같이 타시겠어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한 채, 그는 슬리퍼를 구겨 신고 구급차에 올랐다. 사이렌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고 나서야, 그는 이 모든 상황이 아직 실감 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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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차 안에서, 그는 핸드폰을 꺼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졌다. 아버지는 토요일마다 새벽같이 낚시터에 나가곤 했는데, 강가라 그런지 신호가 잘 안 터지는 듯했다. 그는 짧은 문자를 남기고, 이번엔 어머니에게 걸었다.
“어, 왜.” 어머니의 목소리는 평온했다. 주말 오전 문화센터 수업 중이었을 것이다. “엄마, 할머니가... 지금 구급차예요.” 그는 그렇게만 겨우 말했다. 잠깐의 침묵 뒤, 어머니의 목소리 톤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어느 병원이야. 지금 갈게.”
전화를 끊고 그는 여동생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할머니 쓰러지셔서 지금 구급차 안이야. OO병원으로 가는 중.” 짧게 답장이 왔다. “뭐? 지금 바로 갈게.”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은 그는, 산소마스크 너머 할머니의 가슴이 오르내리는 걸 몇 번이고 확인했다. 구급대원이 혈압을 재는 동안, 그는 할머니의 다른 손을 가만히 붙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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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앞 대기 의자에 앉아,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아직 어제 입었던 옷 그대로라는 걸 알아챘다. 슬리퍼 밑으로 드러난 맨발이 시렸다. 그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그만두었다.
문득 다가올 월요일이 떠올랐다. 그는 팀 단체 채팅방에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가족 일로 며칠 연차 쓰겠습니다.” 평소라면 사유를 어떻게 둘러댈지, 팀장이 뭐라고 할지부터 걱정했을 텐데, 이번엔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메시지를 보내고 그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어머니가 가장 먼저 도착했다. 수업 중에 연락을 받고 놀란 강사가 직접 차로 데려다준 모양이었다. 문화센터에서 입던 앞치마를 그대로 두른 채, 어머니는 조수석에서 내리자마자 그를 향해 뛰어왔다. “어떻게 된 거야, 자세히 말해봐.” 그는 자신이 발견했을 때의 상황을 더듬더듬 설명했다. 설명하는 내내, 자신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그로부터 사십 분쯤 뒤에 도착했다. 낚시터에서 그대로 달려온 듯, 셔츠 자락이 반쯤 삐져나와 있었고 운동화에는 마른 흙이 튀어 있었다. 평소라면 옷매무새부터 살폈을 사람인데,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오랜만에, 어쩌면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여동생은 가장 늦게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그녀는 “할머니는? 괜찮으신 거야?” 하고 다급히 물었다.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는 문화센터에서 입고 온 얇은 앞치마 차림 그대로 팔짱을 낀 채 복도에 서 있었다. 아버지가 그 모습을 보더니, 별말 없이 자신의 점퍼를 벗어 어머니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어머니는 잠깐 멈칫하더니, 말없이 그것을 그대로 걸치고 있었다. 그는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며, 두 사람이 저렇게 서로에게 뭔가를 해주는 모습을 본 게 언제였는지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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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나와 상태를 설명하는 동안, 가족들은 나란히 서서 그 말을 들었다. 뇌경색 초기 증상이라는 말, 지금은 안정을 취하고 있다는 말, 며칠 더 지켜봐야 한다는 말. 그는 그 단어들을 하나씩 머릿속에 눌러 담았지만, 정작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면회가 허락되자, 가족들은 차례로 병실에 들어갔다. 할머니는 산소호흡기를 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침대 옆에 서서 그 얼굴을 오래 내려다보았다. 평소보다 작아 보였다.
복도 의자에 다시 나와 앉았을 때, 그는 문득 어릴 적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그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조잘 늘어놓으면, 할머니는 늘 “그래서, 그래서?” 하고 다음 말을 재촉하곤 했다. 그 말을 들은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그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할 말이 있어도 굳이 꺼내지 않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병실을 나서며, 그는 자신의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아침에 정신없이 구겨 신은 슬리퍼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며칠 전 마트에서 한참을 망설이다 골라, 할머니께 사드렸던 슬리퍼였다. 발이 조금 작다 싶었지만 못 신을 정도는 아니었다. 치수도 제대로 여쭤보지 않고 그냥 자기 발 크기로 대충 골랐던 모양이었다. 할머니가 그 슬리퍼를 신고 걷는 모습을, 그는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 생각이 스치자, 그는 그 자리에 가만히 멈춰 섰다.
복도 자판기 앞에서 그는 여동생과 마주쳤다. 그녀는 말없이 커피 두 잔을 뽑아한 잔을 그에게 건넸다. 둘은 별다른 대화 없이 그 자리에 서서 커피를 마셨다. 뭔가를 물어야 할 것 같기도 했지만, 딱히 물을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도, 그녀도, 그냥 그렇게 서 있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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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가족들은 교대로 병실을 지키기로 했다. 첫 번째 순번은 그였다. 보호자 의자에 앉아 그는 할머니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밤을 보냈다. 딱히 잠이 오지 않았지만, 딱히 뭘 해야 할지도 몰랐다.
새벽 무렵, 여동생에게서 문자가 왔다. “오빠, 괜찮아? 교대할까?” 그는 “아니야, 있을 만해” 하고 짧게 답장했다. 평소 같으면 하지 않았을 대답이었다. 문자를 보내고 나서, 그는 핸드폰 화면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창밖이 서서히 밝아오는 걸 보며, 그는 어제 이 시간까지만 해도 자신이 늦잠 잘 생각만 하고 있었다는 걸 떠올렸다. 하루 사이 뭔가 달라진 것 같았지만, 정확히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그 자신도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