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보호자석

토요일 오전, 그녀는 지호와 온라인카지노 약속이 있었다. 메뉴를 고르고 사진을 찍는 사이, 핸드폰이 울렸다. 오빠였다. 평소라면 나중에 확인했을 텐데, 그날따라 이유 없이 먼저 열어보았다.

“할머니 쓰러지셔서 지금 구급차 안이야. OO병원으로 가는 중.”

그녀는 그 문장을 두 번 다시 읽었다. “뭐? 지금 바로 갈게.” 답장을 보내고 나서야, 그녀는 지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괜찮아, 얼른 가봐.” 지호는 그렇게 말하며 카드로 온라인카지노 값을 계산했다. 그녀는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못 한 채 가게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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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안에서, 그녀는 통화 목록을 열어보았다. 마지막 통화가 언제였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지난달, 삼 분짜리 통화 한 번. 그 이전 기록은 몇 달을 거슬러 올라가야 나왔다. 그녀는 핸드폰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창밖으로 익숙한 동네 풍경이 지나갔다. 명절에나 오가던 길이었다. 그녀는 문득, 할머니가 전화할 때마다 무음으로 돌려두었던 날들을 세어보려다 그만두었다. 셀 수 있는 숫자가 아닌 것 같았다.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표지판을 따라 뛰어가면서, 그녀는 며칠 전 통화에서 할머니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됐다, 뭘. 바쁜데 신경 쓰지 마라.” 그 말을 들었을 때 안도했던 것 같기도 했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처럼 들렸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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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괜찮으신 거야?” 그녀는 도착하자마자 그렇게 물었다. 아무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오빠도, 부모님도 모두 지쳐 보였다. 그제야 그녀는 자신이 얼마나 늦게 도착했는지를 실감했다.

정적이 길어지자,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근데 언제부터 그렇게 안 좋으셨대?” 어머니가 머뭇거리며 답했다. “며칠 전부터 기운이 좀 없어 보이시긴 했는데...” “근데 왜 병원엘 안 데려갔어.” 그녀의 말끝이 자기도 모르게 뾰족해졌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 속에서, 그 말은 정작 누구에게 더 어울리는 말이었을까. 매일 같이 살지도 않으면서 전화 한 통 제대로 받지 않은 건 자신이었다. 그녀는 그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의 셔츠 자락이 반쯤 삐져나와 있었고, 신발에는 마른 흙이 묻어 있었다. 평소 옷차림에 까다로운 아버지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그녀는 그 흐트러진 모습에서, 평소라면 몰랐을 아버지의 다급함을 짐작해 보았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그녀는 어머니가 얇은 앞치마 차림으로 서 있는 것과 아버지가 그 어깨에 점퍼를 걸쳐주는 걸 보았다. 평소라면 눈여겨보지 않았을 장면인데, 그날은 이상하게 그 모습이 오래 눈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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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설명을 듣는 내내, 그녀는 지호에게서 온 문자를 힐끗거렸다. “많이 놀랐지. 괜찮아지시길 바랄게.” 다정한 문자였지만, 그녀는 답장할 여유가 없었다. 그 문자를 읽씹 한 채로 핸드폰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면회 순서를 기다리는데, 핸드폰 화면에 알림이 떴다. 팀 캘린더에 걸어둔 월요일 킥오프 미팅 리마인더였다. 그녀는 화면을 흘끗 보고는 그대로 꺼버렸다. 핸드폰을 가방 깊숙이 밀어 넣었다.

지호에게서 다시 문자가 왔다.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혹시 병원 옮겨야 하면 얘기하고. 엄마가 아시는 분 있다더라." 그녀는 그 문자를 몇 번 읽었다. 걱정에서 나온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딘가 자신의 상황이 지호네 기준으로 재단되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여기도 괜찮아, 고마워”라고만 짧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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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에 들어가 할머니 얼굴을 마주했을 때, 그녀는 예상보다 담담했다.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정작 나온 건 없었다. 산소마스크를 쓴 채 눈을 감고 있는 할머니의 얼굴이, 그녀가 알던 할머니와 조금 다른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졌을 뿐이었다.

침대 옆에 서서, 그녀는 할머니의 손을 잠깐 잡아보았다. 마지막으로 이 손을 잡아본 게 언제였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손이 생각보다 작고 가벼웠다. 그녀는 그 사실에 괜히 놀라며 손을 놓았다.

병실을 나와 복도 자판기 앞에서 오빠와 마주쳤다. 그녀는 말없이 커피 두 잔을 뽑아한 잔을 건넸다. 뭔가 말을 붙이고 싶었지만,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어릴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언제부터 오빠에게 할 말을 고르게 됐는지 그녀는 잠깐 생각해 보다가 그만두었다.

그사이 단체 채팅방에는 지난주 모임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친구 하나가 “다음 주에 또 언제 보냐”며 말을 걸었다. 그녀는 한참 후에야 “요즘 좀 바빠서, 다음에 보자” 하고 짧게 답을 남겼다. 무슨 일이냐고 되묻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 역시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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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그녀는 회사에 메일을 보냈다. “가족 일로 며칠 자리를 비우게 되었습니다. 킥오프는 대리님께 부탁드립니다.” 전송 버튼을 누르기까지, 그녀는 평소보다 오래 망설였다. 이 프로젝트를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게 불과 며칠 전이었다.

메일을 보내고 나서, 그녀는 SNS 앱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오늘 하루를 사진으로 남길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

보호자 대기실 간이 의자에 앉아, 그녀는 핸드폰 사진첩을 열었다. 며칠 전 앨범 맨 위로 옮겨둔, 어린 시절 할머니와 찍은 사진이 나왔다. 마당에서 겁도 없이 활짝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 그녀는 그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화면을 끄고 눈을 감았다.

잠이 오지 않았다. 문득 지중해 어디쯤이라던 그 바닷가 사진들이 떠올랐다. 언젠가는, 하고 미뤄둔 채 몇 년째 열어보기만 하던 폴더였다. 그곳이 오늘따라 유난히 멀게 느껴지면서도, 또 그만큼 간절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그 마음을 굳이 정리하려 하지 않고, 의자에 몸을 더 기댔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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