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수건에 적힌 엄마 이름
오늘 하루의 시작은 손수건 다림질이었다.
땀이 많은 남편은 늘 손수건을 들고 다닌다. 일주일 동안 쓸 손수건을 한꺼번에 다리다가 내 것도 몇 장 꺼내 같이 다렸다.
그런데 내 손수건 사이에 엄마 손수건이 하나 끼어 있었다.
손수건 뒷면 한쪽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엄옥란.
아마 요양원에서 다른 사람 물건과 섞이지 않게 써놓았을 것이다. 언제부터 이 손수건이 내게 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림질을 하다 말고 한동안 그 이름을 바라보았다.
어렸을 때 나는 엄마가 엄마라서 엄 씨인 줄 알았다. 세상의 엄마는 다 엄 씨인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그때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강원도가 고향이다. 말투가 참 순했다.
딸 다섯, 아들 하나. 여섯 아이를 키우셨다.
그렇다고 내가 어릴 때 엄마를 보며 ‘우리 엄마는 참 부지런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집이 늘 반짝반짝 깨끗했던 것도 아니고, 엄마가 밥하고 음식을 만드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도 몰랐다.
그냥 엄마가 해주는 것을 먹고 자랐다.
지금 생각하면 참 많은 음식을 손수 만들어 주셨다. 내가 좋아했던 것은 엄마가 직접 밀어서 만들어 준 콩칼국수와 김치만두였다. 엄마가 나이가 들어 강원도 정선에서 잠시 살 때는 찾아갈 때마다 곤드레밥이며 더덕무침, 메밀전병과 이런저런 나물을 만들어 주셨다.
그때는 그것이 그냥 엄마가 해주는 밥인 줄 알았다.
내가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워보니 이제야 안다. 한 끼 밥상을 차리는 것도, 누군가가 좋아하는 음식을 기억해 만들어 주는 것도 저절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엄마와 둘이 월악산에 갔던 기억도 있다.
내가 아직 처녀였을 때였다. 둘이서 수박 하나 달랑 메고 산을 올랐다. 그때는 엄마가 나보다 산을 훨씬 잘 탔다. 정상에서 잘라먹었던 수박은 지금까지도 기억이 난다. 산 정상이라 그랬는지, 엄마와 둘이 먹어서 그랬는지 정말 꿀맛이었다.
엄마는 집 앞을 꽃밭으로 만들고 싶다는 말도 하셨다.
그런 엄마가 지금은 걷지 못한다.
여러 번의 수술과 넘어짐을 겪고 지금은 요양병원 침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가벼운 치매도 있다. 그런데 오히려 더 순해지고, 더 아기 같아졌다. 가끔 엄마를 보고 있으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손수건에 적힌 이름을 다시 바라보았다.
엄옥란.
평생 내게는 그냥 엄마였는데, 엄마에게도 자기 이름이 있었다.
우리 여섯 남매의 엄마가 되기 전에도, 누군가의 아내가 되기 전에도 엄옥란이라는 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산을 잘 타던 사람.
꽃밭을 만들고 싶었던 사람.
강원도 말씨로 조용조용 이야기하던 사람.
자식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던 사람.
나는 엄마를 참 오래 알고 살았는데, 생각해 보면 엄마라는 이름 뒤에 있던 한 사람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도 참 많다.
엄마는 뭘 가장 좋아했을까.
젊었을 때는 어떤 꿈이 있었을까.
무엇이 가장 힘들었을까.
이제 와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다림질을 마치고 손수건을 접었다.
엄마가 이 손수건을 다시 사용할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래도 버리지는 못하겠다.
그냥 내 손수건들 사이에 다시 넣어두었다.
언젠가 또 우연히 이 손수건을 꺼내게 되면 오늘처럼 엄마를 생각할 것 같다.
콩칼국수도 생각나고,
월악산 정상에서 먹었던 수박도 생각나고,
엄마가 만들고 싶어 했던 꽃밭도 생각날 것이다.
그리고 손수건 한쪽에 삐뚤게 적힌 세 글자를 또 한참 바라보겠지.
엄옥란.
오늘은 ‘엄마’보다
엄마의 이름을 조금 오래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