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과 밀가루 없이 맛있는 떡볶이 만들기
어릴 적 저에게 떡볶이는 학창 시절 친구들과 나누어 먹던 왁자지껄한 추억의 음식이었고, 어른이 되어서는 맵고 짠맛으로 하루의 고단함과 묵은 스트레스를 씻어내주던 다정한 친구 같은 존재였습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어느 바카라의 제목이 수많은 이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듯, 말랑하고 매콤 달콤한 떡볶이는 제게도 지친 영혼을 다독여주는 소울푸드였지요.
하지만 몸이 아프기 시작하고 식탁 위에 금지선이 그어지면서, 정제된 밀가루 떡과 설탕, 자극적인 조미료가 들어간 시중의 떡볶이는 금기의 음식이 되었습니다.
환자로서 식단을 제한해야 했을 때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건, 그저 그것을 먹지 못한다는 단순한 아쉬움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평범한 식탁에서 나 홀로 툭 떨어져 나온 듯한 소외감과 서러움이었습니다.
떡볶이를 먹지 못한다는 건 단순히 하나의 음식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그 음식을 삼키며 지난 추억을 떠올리는 시간, 혀끝이 얼얼해질 정도로 매운맛에 기대어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내던 후련함마저 빼앗겨버렸다는 상실감이 들었습니다.
단지 건강하기 위해 무해한 것을 먹는 것을 넘어, 음식으로부터 즐거움을 누리고 싶은 열망. 그 마음이 다시 도마를 꺼내고 프라이팬을 쥐게 했습니다.
내 몸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혀끝의 기쁨을 포기하지 않을 방법을 찾기로 했어요. 하지만 건강한 식재료만으로 떡볶이의 위로를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짭조름한 간장 베이스로 졸여보기도 하고, 쌀떡을 바삭하게 구워내 고추기름을 슬쩍 입혀보기도 하며 주방에서 서성였습니다. 심심한 소스를 따로 만들어 떡을 조심스레 찍어 먹어보는 타협안도 시도해 보았지만, 영혼을 채워주던 그 '진짜 떡볶이'의 맛 앞에서는 늘 부족함이 남았습니다.
기분 좋은 소란이 끓어오르는 주방
그러던 어느 날, 주방 한편에서 짙은 단내를 풍기던 바나나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설탕의 뾰족하고 인위적인 단맛을 덜어내고, 그 자리에 바나나를 으깨어 넣기로 했습니다
포크로 부드럽게 으깬 바나나가 고운 고춧가루와 섞이며 프라이팬 위에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끓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고요한 주방에, 오랜만에 붉은 활기가 퍼져나갔습니다. 매콤하면서도 달큼한 냄새가 코 끝을 스치자, 오래도록 굳어있던 입맛이 마법처럼 부드럽게 풀리는 듯했습니다.
바나나 특유의 향은 매콤한 양념과 겉돌지 않고 맛을 둥글고 다정하게 감싸 안습니다. 눅진해진 소스 사이로 밀가루의 빈자리를 채운 찰진 쌀떡을 굴려 내자, 윤기가 흘렀습니다.
'몸에 나쁜데, 내가 이걸 먹어도 될까?'
음식을 앞에 두고 늘 그림자처럼 뒤따르던 죄바카라감을 마침내 벗어던진 날이었습니다. 이렇게 나는 아픔이라는 핑계 안에 스스로를 가두며 움츠러들지 않고, 기꺼이 행복해지기로 결심했습니다. 내게도 떡볶이 한 그릇의 매콤 달콤한 위로를 삼키며 미소 지을 수 있는 하루를 누릴 자격이 있으니까요.
혀끝에 닿는 기분 좋은 매콤 달콤함, 오물오물 씹어 넘기는 쫀득한 쌀떡의 찰진 식감. 매운맛을 중화시키려 애쓰지 않아도 바나나가 품고 있던 천연의 단맛이 속을 편안하게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떡을 씹을 때마다 잊고 지냈던 분식집 앞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친구들과 나누던 온기가 다시 피어오르는 듯했습니다.
그 붉고 따뜻한 한 그릇을 비워내며, 평범한 일상의 궤도로 돌아왔다는 해방감을 함께 맛보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이 모든 시간은 단순히 입맛에 맞는 대체 레시피 하나를 찾아낸 것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제 나는 평생 이런 음식을 못 먹겠지'하며 주저앉는 대신, 내 몸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혀끝의 즐거움을 누릴 방법을 스스로 연구하고 타협점을 찾아가는 과정. 그것은 상처받은 제 몸과 마음을 향한 '사랑'의 방식이었습니다.
할 수 없다는 절망을 지우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쥐고 부엌을 서성이는 동안 일상의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내일은 또 어떤 건강하고 맛있는 요리로 나를 위로할까, 기분 좋은 희망마저 품게 되었으니까요.
이 바나나 떡볶이는 기꺼이 스스로에게 허락한, 달콤하고도 무해한 음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