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식탁에도 온기가 필요해
언제부터였을까요. 마주 앉아 밥을 먹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더는 어색하지 않게 된 것은. 혼자 밥을 먹는 일은 이제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습니다. 누군가와 수저를 부딪치며 시시콜콜한 말을 얹어 먹는 소란스러움과 따뜻함이 이따금 그립지만, 이내 혼자만의 식탁이 주는 자유로 돌아옵니다.
다만, 혼자만의 식탁에도 온기가 필요해요.
누군가를 집으로 초대할 때면 시장을 돌며 신선한 식재료를 고르고, 낯선 이를 위해 기꺼이 식탁의 가장 좋은 자리를 내어줍니다. 그런데 텅 빈 집, 오롯이 혼자 남겨진 식탁 앞에서 그 넉넉한 환대는 찾아보기 어려워져요.
어느 늦은 저녁, 유난히 지친 몸으로 주방에 들어선 날.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는 것조차 버거워 냄비째로 남은 찬 국물에 대충 밥을 말아 선 채로 먹었습니다. 꾸역꾸역 밥알을 넘기는데, 불현듯 발밑에서부터 차가운 서러움이 밀려왔던 기억이 납니다.
나는 지금 나에게 다정하게 대하고 있는가?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게 가혹합니다. 타인에게는 기꺼이 따뜻한 차 한 잔을 정성스레 내어주면서도, 정작 허기진 내 영혼에는 그러기가 쉽지 않습니다. 대충 허기만 면하는 식사는 결국, 나 자신을 방치하는 서늘한 무관심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선명히 알고 있습니다.
요즘의 나는 스스로를 제대로 대접하곤 합니다. 주말이면 마르쉐 같은 채소 시장으로 향하기도 하고, 음식박람회를 찾아 새로운 재료나 요리를 접하며 취향과 안목을 넓혀갑니다.
가판대 위에서 가장 빛깔이 선명하고 모양이 예쁜 제철 채소를 살피고, 흙내음이 짙게 밴 싱싱한 식재료를 신중하게 고릅니다. 오직 내가 먹을 것이기에, 재료를 고르는 과정부터 온전한 즐거움이 됩니다.
묵직해진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에게도 이렇게 좋은 것을 먹일 자격이 있다'는 그 당연하고도 낯선 깨달음이 발걸음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나 홀로 식탁이 주는 기분 좋은 편안함은 오롯이 내 입맛에만 집중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을 때는 늘 타인의 식성을 신경 쓰게 되지요.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 짜고 맵게 먹는 사람의 입맛에 나를 맞추고 양보하던 시간들. 하지만 혼자만의 주방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은 어떤 요리를 할까.
도마 앞에 서면 가장 먼저 스스로에게 안부를 묻게 됩니다. 냉장고 문을 열고 식재료를 살피며 내 마음의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봅니다. 슴슴하고 따뜻한 국물로 지친 속을 달래고 싶은지, 찌개에 청양고추를 썰어 넣어 맵칼하게 끓여낼지 고민하고, 유독 오늘 먹고싶은 채소들을 골라 꺼냅니다.
나의 건강을 위해 고기와 밀가루, 정제 설탕을 덜어내고 오직 내 몸이 편안해하는 건강한 재료들로만 도마 위를 채웁니다.
요리를 하며 저의 호불호를 묻고 답하는 이 사소한 과정들은,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길과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이렇게 매일매일 나 자신에 깊이 다가가는 일이 아닐까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나의 건강과 취향을 다정하게 돌볼 수 있는 식탁. 나 홀로 식탁은 이토록 내밀하고 홀가분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앞치마를 두르고 냄비에 물을 올립니다. 냄비에 둥근 무와 다시마, 표고버섯을 넉넉히 넣고 맑은 채수(菜水)를 은은하게 끓여냅니다. 보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뭉근하고 구수한 냄새가 집안을 채우면, 비로소 주방의 공기가 다정하게 채워지는 기분이 듭니다.
투박하게 흙 묻은 무와 제철 채소들을 흐르는 물에 조심스레 씻어낼 때에는, 차가운 물줄기 아래서 흙먼지가 씻겨 내려가고 뽀얀 속살과 짙은 초록 본연의 색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 내 마음까지 맑게 씻기는 것 같습니다.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지요. 내 입맛이 어떤 맛을 사랑하는지 직접 주방에 서면 잘 알 수 있듯, 나 자신에 대해서도 직접 겪어내고 움직이면 더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매일 끓어오르는 냄비 앞에서 내 취향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다정하게 먹이는 과정은 단순히 뱃속의 허기를 채우는 것을 넘어, 얼어붙은 오늘의 나를 깨우고 내일의 나를 빚어내는 작지만 확실한 창조의 시간입니다.
혼자만의 식탁을 누릴 때면 잔잔한 음악을 낮게 틀어두거나, 좋아하는 시나 글귀를 차분히 읽어주는 오디오북을 곁에 두기도 합니다. 마음에 드는 예쁜 그릇에 음식을 소담하게 담아내고, 그 앞에 가만히 마주 앉습니다. 젓가락을 들기 전, 식탁 위를 가득 채운 온기를 가만히 눈에 담는 짧은 멈춤의 시간이 참 좋습니다.
그렇게 나만의 식탁에서 자연이 내어준 계절의 맛을 천천히 꼭꼭 씹어 몸에 들이며, 조용히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기분 좋은 포만감을 안고 일어난 뒤에는 텅 빈 그릇들을 다독일 차례입니다. 식사를 마친 후의 설거지는 귀찮은 노동이라기보다, 나 스스로를 대접한 흔적을 조용히 갈무리하며 다음을 기약하는 과정입니다.
따뜻한 물로 그릇을 깨끗하게 닦아내다 보면, 오늘 하루 묻어온 내 마음속의 찌꺼기와 피로도 뽀득거리며 함께 씻겨 내려가는 듯합니다. 깨끗하게 비워진 그릇을 다시 넣어둘 때면, 마음 속에도 다시 내일의 온기를 담을 수 있는 맑고 오목한 여백이 생겨납니다.
오늘 하루,
나는 나에게 어떻게 너그러워질 수 있을까.
나를 위한 근사하고 다정한 식탁을 차리는 것으로 그 질문에 답해봅니다. 정성껏 만든 요리의 온기가, 홀로 식탁을 차리는 모든 이들의 등 위에 무사히 내려앉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