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처방전, 제철 식탁

자연의 생명력으로 다시 차오르는 회복의 시간

by진정


약해진 몸을 달래준 자연의 처방전


몸이 아프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내 몸을 살리는 힘은 매일 마주하는 밥상에 있다는 것을요. 병을 겪으며 소진된 몸에는 화려하고 자극적인 음식 대신 하늘과 땅과 바람과 빛이 키워낸 자연의 음식들이 필요했습니다.


거칠어진 속을 달래 편안하게 해 주고 충분한 에너지를 섭취하려면 쉽게 먹을 수 있는 간편한 음식보다는 자연이 내어주는 식재료를 이용해서 정성스럽게 마련한 밥상이 필요했어요.


이미 병원에서 주는 치료식에 익숙해져 있던 터였지만 그 안에서는 자연의 숨결을 느끼기는 어려웠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별로 생각나는 재료들로 건강하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 먹고 싶은 생각이 켜졌습니다.


계절이 건네는 다정한 위로


식탁에서 가공된 것들을 덜어내고 그 자리에 제철 채소가 가진 맑은 기운을 채웠습니다. 그러자 까슬하고 묵직했던 속이 편안해지고, 피로감도 점차 사라져 몸에 힘이 조금씩 생기는 것을 느꼈습니다. 먹는 일이 곧 나를 회복시키는 과정임을, 내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몸은 정직하게 달라져간다는 것을 매일의 식탁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생명력이 움트는 봄이면 언 땅을 뚫고 나온 냉이와 달래, 쌉싸름한 머위가 생각납니다. 겨울을 이겨낸 식물의 강인한 생명력은 정말 대단해서 추위에 웅크리고 있던 내 몸의 원기를 돋우고, 허약해진 오장육부를 다정하게 어루만져 줍니다.



태양을 품은 여름이 오면 짙은 초록의 잎채소들과 싱그러운 풋사과, 자두 같은 과실들이 몸의 열기를 식혀주고 에너지를 채워줍니다.



만물이 영양을 가득 머금고 여무는 가을에는 에너지가 가득 찬 갖가지 과일과 열매들, 향이 깊어진 더덕과 도라지가 다가올 긴 겨울을 거뜬히 날 수 있도록 몸속 깊은 곳까지 단단한 기운을 채워줍니다.



매서운 추위를 견디며 단맛을 품어낸 겨울 무와 시금치는 찬 바람이 불면 어김없이 생각나는 위로의 맛입니다.


그래서 재래시장에 가는 것을 좋아해요. 시장에 가면 제철 식재료를 눈으로 직접 보고 느껴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내 손으로 직접 고른 제철 식재료에서 느껴지는 흙내음과 진한 향, 그리고 맛까지. 맛있는 요리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기게 합니다.


특히 입맛이 없고 기력이 바닥났을 때, 제철 음식은 잃어버린 감각을 부드럽게 깨우고 빈자리에 꼭 필요한 영양을 채워줍니다. 계절 따라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내 몸 깊은 곳에 지워지지 않는 무늬처럼 새겨져, 때가 되면 자연스레 그 맑은 기운을 찾게 됩니다.


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차려낸 회복의 식탁


우리가 식재료로 사용하는 채소는 생명 그 자체입니다. 봄에는 여린 새순을, 여름에는 잎과 줄기를, 가을에는 영양분 가득한 뿌리와 열매를 아낌없이 내어주며 내가 다시 내일을 살아갈 힘을 보태어 주니까요.


느릿하게 끓여낸 소박한 나물죽 한 그릇, 들기름에 담백하게 구워낸 버섯구이와 새콤하게 무쳐낸 두릅엄나무순 초무침. 특별한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식재료가 가진 온전한 맛과 향, 그리고 에너지를 오롯이 느낄 수 있습니다.


속이 좋지 않을 때 향이 좋은 쑥 등을 이용해 죽을 끓이면 은은하고 깊은 향으로 내 속을 채워줘 아픔도 가시고 속도 편안해집니다. 그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위로받는 느낌이랄까요.


내 몸의 상태를 가만히 살피고, 필요한 자연의 에너지를 헤아려 밥상을 차리는 일. 허기를 채우기 위해 아무거나 삼키는 대신 나의 주방에서 정성껏 시간을 들이는 이 과정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하나의 방식일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식탁에는 어떤 계절이 올라와 있나요


당신의 오늘 식탁에는 어떤 계절이 놓여 있나요. 혹시 바쁘고 고단하다는 이유로, 아무런 온기 없는 차가운 가공식품으로 무심히 허기만 채우고 있지는 않은지요.


오늘만큼은 치열하게 하루를 버텨낸 당신을 위해, 지친 속을 다정하게 달래줄 제철 반찬 하나를 식탁에 올려보는건 어떨까요.


화려하지 않아도, 순하고 무해한 자연의 한 입이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안아줄 테니까요.


그 순간만큼은 세상의 소란을 잠시 닫아두고, 오롯이 당신만을 위한 온전한 계절을 누려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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