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소나기

100개의 여의주 2

by슈팅스타

[주의: 미자 금지 지수 1️⃣5️⃣]


5월의 어느 밤, ‘Let’s Go Party’ 동호회의 무룡산 와인딩이 끝난 후, 자연스럽게 막내 한결이의 군 입대 축하 모임인 ‘군주’ 파티로 이어졌다.


그날 유주는 유독 술을 많이 마셨다. 체코 출장을 떠나 한 달째 비어 있는 태오의 빈자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무선 이어폰의 반쪽 같은 한결이가 군입대를 앞두었기 때문일까. 만취한 유주가 급기야 자신의 닌자 바이크를 타고 음주 폭주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자, 주점 안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동호회 팀원들은 유주를 말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공유주, 제발 진정해. 이러면 큰일 나!"


진우는 유주가 바이크에 오르지 못하도록 그녀의 헬멧을 빼앗아 숨기기 바빴고, 한결은 유주의 가방과 닌자 바이크의 키를 통째로 뺏어 들었다. 하지만 유주의 막무가내인 고집은 꺾이지 않았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한결이 결국 유주의 손목을 낚아채듯 꽉 쥐고 술집 밖으로 거칠게 나왔다.


가게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거짓말처럼 갑작스러운 5월의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주점 앞 도로변으로 일렬로 길게 주차되어 있는 여러 대의 투박하고 거대한 바이크들이 쏟아지는 빗줄기를 맞아 그 아우라가 더욱 강렬하고 서늘하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누나, 진짜 왜 이래요? 그 고운 손으로 자꾸 어딜 만져요?"

술집 앞 가로등 불빛 아래, 한결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빗소리에 섞여 들었다. 만취한 유주가 한결이의 바지 주머니 속에 숨겨진 바이크 키를 빼앗으려 거침없이 손을 밀어 넣고 헤집어 댄 탓에, 한결이는 거의 울기 직전의 얼굴로 유주의 어깨를 붙잡았다.


"진짜 짜증 난다…… 누나 차 어디 있어요? 차 키는 가방에 있어요?"

술에 잔뜩 취한 유주는 평소의 도도한 가면을 완전히 벗어던진 채, 볼그스레해진 얼굴로 키득거리며 웃었다.

"누나 차……? 아 참~! 내 포르셰가 있었지, 히히. ㅋㅋㅋ 강변에……."

"강변요?"

"엉, 강변 주차장……."


한결이는 빗속에서 비틀거리는 유주의 허리를 단단히 붙들어 문옆에 기대어 세웠다.


"잠깐 여기 서서 기다려요. 누나 가방 가져올 테니까. 아니, 누나! 좀 똑바로 서라고요!"


한결이 애가 타서 소리를 지르며 다시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유주의 가방을 챙겨 나온 한결이는 빗속에 젖어가는 유주를 거의 둘러업다시피 데리고 강변 주차장에 세워진 유주의 포르셰로 향했다.


5월의 서늘한 밤 소나기가 거세게 쏟아지며, 주차장을 걸어가는 두 사람의 몸에 소나기가 쏟아졌다. 유주의 얇은 블라우스가 살결에 들러붙고, 한결이의 셔츠 역시 투명하게 젖어들었다.


간신히 포르셰 도어를 열고 조수석에 유주를 밀어 넣은 한결이 운전석으로 타 문을 닫자, 밖의 거친 빗소리가 차단되며 차 안에는 지독하게 밀폐된 정적이 찾아왔다. 유주는 시트에 기대어 쌕쌕거리며 얕은 숨을 내쉬고 있었다.


한결이는 빗물에 젖어 엉망이 된 유주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젖은 셔츠 벗었다. 그러고는 셔츠의 마른 안쪽 면으로 유주의 물기 어린 얼굴과 빗물에 젖은 고운 손을 조심스럽게 닦아주었다.

“괜찮아요?”

셔츠로 유주의 물기를 닦아내던 한결이 얕은 숨을 내쉬며 물었다. 유주는 조수석 시트에 깊숙이 기댄 채, 새근거리며 숨을 쉬다가 작은 목소리가 겨우 나왔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차창을 때리는 5월의 소나기 소리가 가득한 밀폐된 차 안, 유주가 천천히 눈을 감으며 아무렇지 않게 던졌다.


“한결아, 나 다음 달 6월에 결혼할 거야. 태오 오빠랑.”

그는 물기 어린 유주의 감은 눈을 빤히 바라보며, 억눌린 목소리로 물었다.

“누나는 태오 형 어디가 좋아요? 어디가 좋아서 결혼하는 건데?”

유주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고요하게 숨을 쉬며 말했다.


“태오는…… 태오 오빠는 말이 없어. 말없이, 말로 표현하는 게 아니라 그냥 말없이 나를 지켜줘.”

그 말을 들은 한결이 참지 못하고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를 낮춰 내뱉었다.


“무슨 말이에요, 그게. 태오 형은 지금도 누나 혼자 여기 한국에 두고 체코에 가 있잖아요. 오히려 말없이 누나 옆에서 지켜주는 사람은 나라고요. 지금도 지구 반대편에 가 있구먼, 그 형은.”

한결의 서운함 가득한 외침에 유주가 가만히 눈을 떠 그를 쳐다보았다. 붉어진 유주의 표정은 장난기가 사라진 채 지독하리만치 진지했다.


“키스해 줘.”

“안 해.”

한결이 고개를 돌리며 거절했다.

“왜?”

“키스 다음이…….”

“키스 다음이?”

유주가 한결이의 얼굴을 붙잡을 듯 다가오며 묻자, 한결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냉정하게 대답했다.

“감당할 수 있겠어?”


그 순간 유주는 망설이지 않았다. 운전석에 웃옷을 입지 않고 앉아 있는 한결이의 단단한 가슴팍으로 다가가, 그의 입술을 거침없이 집어삼켰다. 한결은 잠시 경직되는가 싶더니, 유주의 가녀린 몸을 거세게 밀어냈다.


“겨우 참고 있는데…….”

한결이 유주의 입술을 떼어낸 뒤,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그의 잘생긴 얼굴 위로 눈물이 툭, 하고 떨어져 한결이의 뺨에 번졌다. 유주는 놀란 듯 한결의 눈가를 만지며 물었다.


“울어? 너 울어? 왜 울어?”

“미워서…….”

한결은 가슴으로 울고 있었다.

“누나를 그냥.... 태오형과 결혼하게 놓아주는 게 맞는가 싶어서…….”

유주는 한결의 눈물을 손가락으로 닦아내며, 스스로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씩 풀어내려 옷을 벗었다.


그 순간, 차 지붕을 내리치는 빗소리가 점점 더 거대하고 요란하게 커졌다. 세상의 모든 소음을 집어삼킬 듯한 소나기 소리 속에서, 한결이는 유주의 젖은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갈라진 목소리로 낮게 물었다.

"누나…… 내일 술 깨고 나서 후회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유주는 대답 대신 한결의 목소리를 지워버리듯 그의 목을 더 바짝 끌어안았다. 붉어진 얼굴로 한결의 턱밑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후회 안 해."

확신에 찬 그녀의 뜨거운 숨결이 한결의 가슴에 와닿았다.

그 찰나, 한결의 내면에 남아있던 마지막 빗장이 완전히 부서져 내렸다. 좁은 포르셰의 시트 위에서 두 사람의 가쁜 숨결이 어지럽게 얽혀 들었다. 잔뜩 흥분한 한결의 아이스바는 유주의 매끄러운 살결 위 어딘가에서 갈 곳을 잃은 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계속 바둥거리기만 했다. 한결의 손이 유주의 허리를 거칠게 움켜쥐었고, 닿을 듯 말 듯 한 아찔한 접촉이 이어질수록 차창을 덮은 불투명한 유리창 너머 포르셰 안의 열기는 터질 것처럼 더해져 갔다.


그리고 마침내, 거칠게 방황하던 한결의 아이스바가 유주가 만들어 둔 비밀스럽고 깊은 세계 속으로 서서히 밀려 들어갔다. 폭발하듯 터져 나온 한결의 모든 에너지가 유주의 깊은 몸속을 향해 맹렬하고 깊숙하게 침투해 들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