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천재의 완벽한 우승

100개의 여의주

by슈팅스타

"우리가 갈 대학은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이란 거 잊지 마. 아무나 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된다?"

유주가 한결이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며 나직하게 물었다. 한결이가 멍하니 고개를 젓자, 유주는 장난기가 가득하면서도 냉소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무나 하는 노력을 따라 하면 안 돼."

"노력을 따라 하지 말라니요……?"

"남들 눈에 우리가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 그 각본을 짜라는 소리야. 손선풍기 딱 들고, 한 손엔 맥북 들고, 전공 서적 가득 든 큰 가방 메고, 안경 하나 잘 받쳐 쓰고. 누가 봐도 '아, 쟤는 밤낮없이 공부만 하는 미친 천재구나' 싶게 세팅하란 말이지."

유주는 자신의 양손을 펼쳐 한결이의 눈앞에 흔들어 보였다. 가로등 불빛을 받아 유주의 손가락이 비현실적일 만큼 매끄럽게 빛났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거. 바이크 타고난 뒤에는 손 관리 잘하고. 굳은살 박히지 않게 팩도 좀 하고, 늘 컴퓨터 키보드만 만지는 섬세한 손으로 유지하는 거야. 알았지? 그게 우리가 가져가야 할 진짜 본질이다, 응? 우리 한결이 귀요미."

유주가 한결이의 턱 끝을 살짝 간지럽히듯 톡 건드렸다.

그 순간 한결이는 멍하니 유주의 손 끝으로 시선을 옮겼다. 한여름 밤의 열기 속에서도 유주의 손가락은 서늘해 보였고, 정갈하게 다듬어진 손톱은 티 없이 희고 고왔다. 거친 바이크의 스로틀을 쥐고 시속 100km가 넘는 속도로 도로를 찢고 달리던 사람의 손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만큼.

"……그래서 누나 손톱이 그렇게 희고 고왔구나."

한결이가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있던 말을 입 밖으로 중얼거렸다. 그 순진하고도 악의없는 시선에 유주는 만족스럽다는 듯 크하하, 하고 맑은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정답. 역시 넌 똑똑해, 한결아. 내 대본을 단번에 이해하잖아?"

"여기서 잠시 기다려. 나는 올라가서 화장실 들렀다 올 테니까"


가온 테크 2층 사무실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등진 채, 두 사람은 다시 바이크에 올라탔다. 새벽 2시의 바람은 여전히 시원했고, 세상이 짜놓은 평범한 규칙 따위는 가볍게 우회하는 공유주의 세계. 그리고 한결이는 그 세계가 제안하는 '아무나 가 되지 않는 법'을 아주 빠르게 관찰해 나가고 있었다.


라이딩을 마치고 조용히 돌아온 유주가 적막한 강의실의 문이 닫히자 작은 USB 하나를 꺼내 한결이 앞에 툭 내밀었다. 가온 테크 연구실의 핵심 인력인 권 대리가 밤을 새워 구축해 놓은, 고등부 수준을 초월한 마스터피스 소스 코드가 담긴 치트키였다.

"이게 내 제안의 본론이야."

"그냥 이거 그대로 밀어 넣어, 한결아. 세상은 원래 이렇게 쉽게 쉽게 얻는 거야. 완벽한 궤도에 무임승차하는 것도 능력이야."

유주는 아무런 꺼림칙함 없이 미소 지었지만, 한결은 그 코드를 내려다보며 모욕감을 느꼈다. 컴퓨터와 코딩은 유주에게 세상의 권력을 쥐기 위한 부품일지 몰라도, 천재 코더인 한결에게는 자신의 유일한 자존심이자 순수한 세계였다.

"……나 이렇게 입상하고 싶지 않아요, 누나."

"부정을 저지르면서 까지 내 실력을 모독하고 싶지 않아요. 난 내 힘으로, 내 코드로 누나랑 같이 대학 갈 겁니다."

한결은 유주의 독기 어린 눈동자를 똑바로 마주 보며, 낮고 일정한 톤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무선 이어폰 왼쪽 오른쪽 중 하나가 배터리가 다 되어서 안 들린다고 해도, 남들이 보기엔 양쪽 다 정상적으로 들리는 것처럼 보여요."

"……."

"내 눈엔 지금 누나, 완벽하게 고장 난 상태예요. 세상을 쉽게 이기겠다고 가온 테크 조작 코드나 들고 와서 판을 짜는 거, 그거 전혀 정상 아니야."


유주의 입술이 굳어졌다. 자신의 세련된 위장을 '고장 났다'라고 단정 지은 인간은 태어나서 도한결이 처음이었다. 한결은 유주의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며, 소름 끼치도록 명쾌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 내가 누나를 정상으로 돌려놓을게요. 이 딴 USB 조작질 없이 내 진짜 코드로, 내 순수한 실력으로 이 해커톤 판을 뒤집어엎어서 누나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겠다고."

유주의 매끄러운 이마가 살짝 좁아졌다. 자신의 제어 곡선을 거부한 최초의 이방인이었다. 하지만 유주는 몰랐다. 그 순간 한결이 내뿜은 자존심이, 늘 지루한 승리만 거두어오던 유주의 세계에 얼마나 기묘한 자극을 주었는지.


전국 고등부 SW 해커톤 대회장.

제한 시간 24시간 동안 밤을 새워 프로그램을 빌드해야 하는 극한의 레이스였기에 유주는 한결이 결국 압박감을 이기지 못하고 권 대리의 코드를 쓸 거라 예상했다. 메인 서버에 코드를 업로드하기 직전까지도 유주는 여유로웠다.

하지만 한결의 고운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날아다니기 시작한 순간, 대회장의 공기가 바뀌었다.

한결은 유주가 건네 코드를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 대신, 고작 고등학생의 머리에서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의 아키텍처를 그 자리에서 실시간으로 설계해 내려갔다. 유주가 준 코드가 기성품처럼 매끄러운 정답이었다면, 한결이 써 내려가는 코드는 기존의 통념을 완전히 박살 내는 천재적인 혁명이었다.

"도한결…… 너 지금 무슨 짓을……."

유주가 경악하여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한결은 붉어진 눈으로 모니터만 응시한 채, 미친 듯한 속도로 타건을 이어갔다.

System.out.println("My own Orbit");

권 대리의 코드가 가진 정형화된 논리 구조를 역으로 추적해 파괴하고, 그 위에 자신만의 독창적인 보안 알고리즘을 덧씌우는 한결의 역코딩 작업이 시작되었다. 심사위원석에 앉은 교수들이 모니터링 화면을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감히 손을 댈 수조차 없는 완벽한 '마스터피스'가 한결의 손끝에서 탄생하고 있었다.


딩동—.

제한 시간 종료를 알리는 부저가 울렸다.

결과는 압도적인 대상(大賞).

가온 테크 회장의 은밀한 뒷공작을 비웃듯, 도한결이라는 천재의 이름이 대회장 전체를 지배한 순간이었다.

환호성이 쏟아지는 무대 뒤편, 서늘한 비상계단으로 나온 유주는 벽에 기댄 채 자신의 손을 보았다.

굳은살 하나 없이 희고 매끄럽게 관리된 손. 남들에게 완벽한 천재로 보이기 위해 다듬어진 위장의 껍데기.

하지만 그 손바닥 안에서 유주는 처음으로 자신이 쥐고 있던 통제권이 산산조각 나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설계 궤도를 이탈해 날뛰는 이 천재. 기성품 같은 정답을 쓰레기통에 넣어버리고 오직 자신의 실력으로 판을 엎어버린 소년.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완벽하게 길들이고 소유하고 싶다는 지독한 집착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거 봐요. 치트키 같은 거 없어도 된다고 했잖아요"

유주에게 다가온 한결이는 USB를 툭 건네며 말했다.

" 왜 그랬어? 도한결?"

유주의 얼굴에 푸른 독기가 번졌다.

"네 그 잘난 순수함으로, 내가 짜놓은 안전장치를 쓰레기통에 처박아 버리니까 속이 후련해?"

"그건 안전장치가 아니라 목줄이었으니까요."

"뭐?"

"이 코드, 누나가 짠 거 아니잖아요. 가온 테크, 정확히는 누나네 아버지가 사람 사서 찍어낸 가짜 정답이잖아."

한결이 플라스틱 USB를 난간 너머로 가볍게 던졌다.

" 남의 실력으로 정상에 오르면, 누나가 말한 그 '완벽한 궤도'가 정말 누나 것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건 그냥 그 사람들이 짜놓은 가짜 판에서 춤춘 것뿐이지."

유주는 자신의 가장 은밀하고도 추악한 콤플렉스가 도한결 눈동자라는 렌즈에 낱낱이 드러나고 있었다.

유주는 한결에게 바짝 다가섰다.

"..... 내가 세상에서 제일 죽여버리고 싶은 사람이 누군지 아니?"

유주의 얼굴에는 가식적인 웃음과 조롱은 없었다.

“우리 아빠.”

세상 모든 것을 돈과 권력으로 조작하는 아버지를 완벽하게 이기고 뛰어넘는 것.

유주의 독기 어린 눈동자를 마주하며, 한결은 피식 웃으며 가볍게 속삭였다.

“누나, 체스 게임에서 가장 잔인한 룰이 뭔 줄 알아요?”

유주가 입술을 다문 채 그를 쳐다보자, 한결이 낮게 읊조렸다.

“매 순간 상처 입히고, 종국에는 왕을 죽인다.”

아버지를 이기기 위해 매 순간 세상을 물어뜯고 종국에는 파멸시키려는 유주의 그 지독한 집착을,

한결은 이미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유주는 제 제어 곡선 궤도 밖에서 날뛰는 이 영악하고 천재적인 소년에게 완전히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한결이는 유주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환상과 현실의 심각한 불일치를 경험하고도 천신만고 끝에 살아 돌아온 돈키호테도 있지만, 자기 안의 환상을 끝까지 밀어붙이다 자살하는 보바리 부인도 있어요. 누나는 어느 쪽이 되고 싶어요?”

“…….”

“미리 말해두는데, 난 보바리 부인 옆에서 같이 죽어줄 생각은 없어요. 난 내 코드로, 내 실력으로 완벽하게 살아남을 거니까.”

그 대담한 도발이 가득했던 해커톤의 밤은 두 사람의 지독한 결속의 시작이었다.


“누나, 무선 이어폰 둘 중 하나가 배터리가 다 되었다고 안 들리는 건 아니야. 남들이 보기엔 여전히 귀에 꽂혀 있으니 정상 작동 중인 걸로 보이겠죠. 하나라도 제대로 소리가 나온다면 그 이어폰의 성능은 아직 살아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처럼 말이에요.” 한결이의 말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