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납장인데, 수납공간이 줄어든다

by수박공장장

요즘 주방 매장에 가서 가구 문을 열어보면 뭔가가 ‘휙’ 하고 따라 나오는 기능성 수납장을 자주 만난다.


문을 당기면 안쪽 선반이 함께 나오고, 깊숙한 곳에 있던 물건까지 한눈에 보인다. 예전에는 고가 주방이나 수입 주방에서 주로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다양한 가격대의 주방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전시장에서는 꽤 근사하다. 문을 열었는데 커다란 수납장이 부드럽게 따라 나오면 일단 뭔가 비싸 보인다. 그 안에 예쁜 병과 식재료까지 가지런히 놓여 있으면 굉장히 편리할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이런 걸 볼 때마다 한 가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여기에 뭘 넣지?”


해외 주방 사진에서 이런 팬트리장을 보면 시리얼이나 파스타, 통조림, 향신료 같은 저장식품이 근사하게 정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걸 우리 집에 대입해보자. 키큰장 한 칸을 통째로 사용하면서까지 넣어야 할 물건이 얼마나 있을까?

그릇을 넣을 수도 있다. 하지만 무거운 그릇을 잔뜩 넣고 매번 커다란 장 전체를 움직이는 게 꼭 편할지는 모르겠다. 그렇다면 라면이나 과자, 각종 소스와 식재료 정도가 떠오른다.


물론 넣으면 편하다.


그런데 라면을 조금 편하게 꺼내기 위해 이 정도 비용을 써야 할까?


기능성 팬트리에는 일반 선반장에는 필요하지 않은 레일과 프레임, 바스켓 같은 여러 하드웨어가 들어간다. 구조가 복잡한 만큼 가격도 올라간다. 고급 제품으로 갈수록 가구장보다 그 안에 들어가는 장치가 더 비싸게 느껴질 정도다.


말 그대로 수납장 안에 들어가는 비싼 장치다.


그런데 내가 더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은 돈보다 공간이다.


일반적인 선반장은 구조가 단순하다. 가구장 안에 선반 몇 장을 놓고 물건을 차곡차곡 넣으면 된다. 장 내부의 공간을 비교적 온전히 수납에 사용할 수 있다.


움직이는 팬트리는 다르다. 일단 움직여야 한다. 그러려면 레일과 프레임이 필요하고, 그 구조물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도 남겨둬야 한다.


쉽게 말하면 장 안에 또 하나의 장을 넣는 셈이다.


그래서 겉으로는 똑같은 크기의 수납장이어도 실제 물건을 넣을 수 있는 공간은 일반 선반장보다 줄어든다.

나는 이게 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주방 수납을 고민하는 이유는 대부분 물건을 넣을 공간이 부족해서다. 그런데 물건을 조금 편하게 꺼내겠다고 비싼 돈을 들여 오히려 수납공간을 줄인다?


뭔가 앞뒤가 바뀐 느낌이다.


물론 주방이 크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납공간이 충분해서 장을 빽빽하게 채울 필요가 없다면 당연히 편한 쪽이 좋다. 문을 열면 안쪽 물건까지 앞으로 따라 나오니 깊숙이 손을 넣을 필요도 없다.


돈과 공간에 여유가 있다면 충분히 좋은 선택이다.


문제는 보통 크기의 아파트다. 냄비와 그릇, 식재료와 소형가전까지 넣으면서 수납공간을 하나라도 더 확보해야 하는 집이라면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그런 집이라면 비싼 기능성 팬트리 하나보다 평범한 선반과 서랍을 하나라도 더 만드는 편을 택하겠다.

편한 수납도 좋지만, 수납공간이 부족한 집에서는 잘 꺼내는 것보다 많이 넣는 것이 먼저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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