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궁금하다. 이 많은 벽지를 정말 하나하나 비교해서 고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대부분은 인테리어 업체가 몇 가지를 추천해주거나, 인터넷에서 요즘 많이 쓴다는 제품을 찾아보고 그중 하나를 고를 것이다. 나에게 처음부터 이 수많은 벽지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해도 자신 없다.
벽지는 생각보다 고르기 어렵다. 그런데 생각보다 중요하다. 왜냐하면 벽지는 집이라는 그림의 캔버스이기 때문이다.
벽지는 집에서 차지하는 면적이 굉장히 크다. 바닥과도 어울려야 하고, 창호와 방문, 주방가구와도 맞아야 한다. 나중에는 소파와 침대, 커튼, 그림까지 그 앞에 놓인다. 집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것의 배경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그 배경의 자기주장이 너무 강하면 어떻게 될까? 물론 잘하면 멋있다. 벽지의 색과 질감까지 계산해서 바닥과 가구, 조명, 패브릭을 완벽하게 맞출 자신이 있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하지만 쉽지 않다.
그림을 보는데 그림보다 캔버스의 질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고 생각해보자. 뭔가 조금 이상하다. 집도 마찬가지다. 소파를 봐야 하는데 벽지가 먼저 보이고, 주방가구를 봐야 하는데 뒤쪽 벽의 질감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면 다른 것들과 균형을 맞추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나는 벽지가 너무 열심히 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좋은 배경이면 충분하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 벽지나 고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무난한 벽지를 고르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 화이트만 해도 다 같은 화이트가 아니다. 노란끼가 도는 화이트가 있고, 회색이 섞인 화이트가 있고, 조금 붉게 느껴지는 화이트도 있다.
샘플북에서는 별 차이가 없어 보여도 넓은 벽에 시공하면 느낌이 달라진다. 조명의 색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햇빛을 받으면 또 달라진다. 문제는 우리가 손바닥만 한 벽지 조각을 보고 그 벽지가 집 전체에 발렸을 때의 모습을 상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래서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나는 각 회사에서 많이 선택되는 무난한 제품부터 보라고 권하고 싶다. 많이 팔린다고 무조건 좋은 벽지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많은 집에서 선택됐다는 것은 그만큼 여러 마감재와 무난하게 어울릴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조금 더 멋진 선택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낮은 선택을 좋아한다. 벽지는 특히 그렇다.
벽지를 보다 보면 이런 설명도 자주 듣는다. “이 제품은 엠보가 깊어서 실제 도장면처럼 보여요.” 가까이에서 보면 정말 근사한 제품도 있다. 표면의 질감이 섬세하고 빛을 받았을 때의 느낌도 확실히 다르다.
그런데 나는 벽지 자체가 얼마나 고급스러운지를 보기 전에 우리 집의 다른 것들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부터 봤으면 한다. 벽지는 깊은 엠보와 미묘한 색감을 가진 고급 제품인데 방문과 바닥, 가구는 전혀 다른 분위기라면 어떨까? 벽 하나만 놓고 보면 근사한데 집 전체로 보면 어딘가 어색할 수도 있다.
하나하나 놓고 보면 모두 좋은 제품인데, 모아놓으면 이상한 집이 있다. 각자 너무 열심히 자기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제품을 고르는 것과 좋은 집을 만드는 것은 조금 다른 문제다.
벽지를 제대로 골라보고 싶다면 작은 샘플을 오래 들여다보는 것보다 큰 샘플을 다른 마감재 옆에 놓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바닥재 옆에도 놓아보고, 방문과도 비교해보고, 주방 도어에도 대보자. 집에 들어올 가구가 정해져 있다면 그 가구와 함께 봐도 좋다.
그러다 벽지가 바뀔 수도 있고, 반대로 벽지는 그대로 두고 바닥이나 가구의 색을 바꾸게 될 수도 있다. 그게 이상한 게 아니다. 인테리어의 마감재는 하나씩 따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결국 한 공간 안에서 동시에 보이기 때문이다.
“어느 벽지 브랜드가 좋아요?”
이런 질문도 종종 받는다. 물론 브랜드와 제품군에 따라 차이는 있다. 고급 제품으로 갈수록 표면의 질감이나 표현 방식, 기능 등에서 차이가 날 수 있다. 하지만 비슷한 가격대의 일반적인 벽지를 놓고 본다면 나는 브랜드 이름 자체에 너무 매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로고를 가리고 비슷한 벽지 몇 개를 벽에 붙여놓은 다음 어느 회사 제품인지 맞혀보라고 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정확하게 맞힐 수 있을까?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시공이 잘된 벽과 그렇지 않은 벽의 차이는 생각보다 쉽게 보인다.
벽지가 아무리 좋아도 바탕면이 고르지 않으면 티가 날 수 있다. 이음매가 지저분하거나 코너와 주변부 마감이 깔끔하지 않으면 비싼 벽지를 고른 의미도 줄어든다. 그래서 나라면 벽지의 등급을 한 단계 올리는 것보다 시공을 제대로 하는 데 조금 더 신경 쓰겠다.
벽지를 붙이기 전에 바탕면을 어떻게 정리하는지, 이음매와 코너는 어떻게 마감하는지. 실제 집에서는 이런 차이가 훨씬 크게 느껴질 수 있다. 샘플을 코앞에 놓고 들여다봐야 겨우 보이는 미세한 엠보의 차이보다 말이다.
벽지는 중요하다. 하지만 벽지가 중요하다는 것과 벽지가 눈에 띄어야 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좋은 캔버스는 그림을 방해하지 않는다.
집도 마찬가지다.
벽지는 주인공이 아니라, 다른 것들이 잘 보이게 해주는 배경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