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디가드

by아띠다소


그해 큰아이는 대학교에 진학해 도회지로 가야 했고, 작은아이는 고등학교 기숙사로 들어가야 했다. 아이들이 떠날 날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여자는 아이들의 짐을 챙겨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은 산으로 가고 있었다. 머리가 터질 듯 아팠다. 무엇보다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배낭을 꺼냈다. 딱히 챙길 것도 없으면서 늘 하던 대로 물 한 병과 강아지에게 줄 간식을 챙겼다. 하지만 선뜻 나서지 못했다. 그걸 눈치챘는지 텔레비전을 보던 큰아이가 벌떡 일어났다.


"엄마, 혼자 가면 안 돼. 나도 갈 거야."


평소에는 같이 가자고 해도 따라나서지 않던 아이가 점퍼를 걸치며 나왔다.


"웬일이야? 자진해서 따라나서고."


"아이, 나도 가보고 싶어서 그러지."


"좋아, 보디가드 해줘."


큰아이는 여자의 배낭을 뺏듯이 둘러메고 먼저 나갔다.


여자는 작은아이 방문을 열었다.


"너도 갈래?"


"싫어."


작은아이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마당에 내려서니 강아지가 풀쩍풀쩍 뛰었다. 아이가 목줄을 풀어주자 녀석은 저만치 먼저 내달렸다.


여자는 아이와 뒷산으로 들어섰다. 아이는 걷는 내내 여자를 살피는 눈치였다. 늘 강아지와 둘이 걷던 길이었다. 강아지는 여자의 좌우를 뛰어다니다가도, 안 보인다 싶으면 어느새 곁에 와 있었다.


산등성이에 오르자 거북바위가 보였다. 거북을 닮아 여자가 붙인 이름이었다. 사람 하나 걸터앉기 좋은 바위였다. 아이가 거기 앉았다.


언젠가 남편과 이 산에 올랐을 때, 남편도 저 바위에 저렇게 앉아 있었다. 딱 저 뒷모습이었다.


"앞에 풍경 좋지? 올라올 때는 힘들어도 올라와서 보면 이렇게 좋아."


"아, 엄마가 그래서 산에 오는구나."


여자는 그 곁의 넓적한 바위에 앉았다. 강아지는 제 세상인 듯 뛰어다녔다. 아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여자 옆으로 와 앉았다. 여자가 배낭에서 물을 꺼내 건네자 아이는 한 모금 마시고 말을 꺼냈다.


"엄마, 이제 우리 다 가고 나면 엄마 혼자 있어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엄마야 혼자 있으면 좋지. 매일 일찍 아침밥 안 해도 되고, 반찬도 안 해도 되고. 학교에 데리러 가지 않아도 되고, 좋은 일 많네 뭐."


"에헤이, 이래서 내가 갈 수 있겠나. 엄마 굶을까 봐."


"걱정 마. 엄마 자유부인이야."


여자는 그 말을 해 놓고 놀랐다. 남편이 타지로 일하러 떠날 때면 여자는 늘 "나 오늘부터 자유부인이야" 하고 웃곤 했다.


산을 내려오니 강아지가 창고 안 남편의 트럭 주위를 맴돌았다.


아이는 고3 방학 때 면허를 땄다. 아빠 옆자리에서 연수를 받았고, 여자가 늦는 날이면 마중 나온 아빠를 옆에 태우고 학교에서 집까지 트럭을 몰고 왔다. 아빠는 그런 아이를 대견해했다.


그날 이후로 아이는 그 운전대를 잡지 않았다.


아이는 강아지를 묶고 무심한 듯 창고 앞을 지나 집으로 들어갔다.


트럭을 팔아야 했다.


며칠에 걸쳐 아이들의 짐을 꾸렸다. 셋은 무엇을 챙길지 말고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거실 한쪽에 가방이 하나둘 늘어갔다.


남편이 간 뒤로 여자는 방에 들어가 자지 못했다. 밤이면 아이들을 거실로 불러내 함께 누웠다. 아이들도 별말 없이 엄마 곁에 누웠다. 아이들이 크고 나서 셋이 나란히 누워 잔 게 언제였는지, 여자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즈음 여자에게 버릇이 생겼다. 아이들이 잠들면 여자는 아이들이 덮은 이불을 살폈다. 이불이 오르내리면 안심했고,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으면 이불 밑으로 손을 넣어 보기도 하고 아이들 코에 손을 갖다 대기도 했다.


"엄마, 왜 그래?"


아이가 잠결에 낌새를 채고 물으면 여자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말했다.


"아니야, 그냥 자."


아이들이 다시 잠들자 여자는 이불을 빠져나와 부엌으로 갔다. 찬장에서 와인 한 병을 꺼냈다. 전날 위로차 들렀던 이웃이 여자의 얼굴을 보더니 자기 집에 다녀와 건네준 것이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한 잔씩 마시면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와인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여자는 잠들려고 한 잔을 따라 마셨다. 떫었다. 술이 약한 여자는 금방 취기가 올랐다.


여자의 눈이 장식장에 머물렀다. 남편과 같이 담근 담금주들이 들어 있었다. 장식장 문을 열려고 손을 뻗다가 멈췄다.


여자는 부엌문을 소리 나지 않게 닫고 아이들 옆에 누웠다. 눈을 감았다. 다시 온갖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여자의 오후 네 시 1.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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