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렉티오(Dilectio)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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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렉티오(Dilectio)의 연대 - 백지 한장 차이


최근 정부의 한 젊은 사무관이 조직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죽음의 원인을 뻔히 알면서도 일주일간 기사 한 줄 내지 않던 거대한 침묵

그 와중에 그 조직의 수장이 낸 추모의 메시지는 남겨진 이들에게 짙은 환멸을 안겼다.

"저부터 무겁게 되돌아보겠습니다. 혹시 업무 방식이나 조직 문화 가운데 동료를 지치거나 힘들게 만든 부분은 없었는지 살피겠습니다. 오늘의 아픔이 헛되지 않도록, 서로의 마음을 더 살피고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우주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소중한 존재들끼리 서로 슬픔을 위로하고 함께 이겨나가길 바랍니다.'

조직의 인사 시스템과 일하는 문화에 잘못된 부분은 없었는지 뼈아프게 자성하고,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경청하여 철저히 고쳐나가겠습니다.

<출처 나무위키>

'이겨나가길 바랍니다.'???

이겨나가길 바란다니..

적어도 조직의 수장이라면 말이라도 '이겨나갑시다'라고 써야하는거 아닌가?

적어도 글이라도 짐을 나누어 지겠다는 태도로 정성껏 써야 하는 것 아닌가?

철저한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쓰인 저 메시지를 읽으며

나는 '뼈아프게 자성하고'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뼈아프게

자성하고

이 말의 뜻은 무엇일까?

당사자의 고통을 곁에서 앓아본 적 없는 자들이 내뱉는 자성이란 얼마나 공허한가?

이 참혹한 촌극은 현대의 조직이 한 인간을 어떻게 부품으로 취급하고 폐기하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동시에 세상이 던지는 맹목적인 위로나 강요된 희생은 결코 개인을 보호하는 방패가 될 수 없음을 증명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의 부조리를 직시하고 나 자신을 지켜낼 단단하고 서늘한 지성이다.

□ 무능한 자들의 지배(Kakistocracy)와 그레셤 법칙

내가 과거에 겪었던 갑질 상사의 괴롭힘이나, 그 젊은 사무관을 죽음으로 몰고 간 조직의 끔찍한 실상은 우연한 불운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능한 관료주의가 도달하는 가장 파괴적인 종착지, 즉 '카키스토크라시(Kakistocracy: 가장 무능하고 부도덕한 자들의 통치)'의 결과물이다.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이자면, 나는 관료주의라는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대한민국의 눈부신 압축성장은 소신을 품은 유능한 관료들의 뼈를 깎는 헌신과 바카라임감을 토대로 성공적으로 이뤄졌음을 굳게 믿는다. 하지만 과거 사명감을 가졌던 진짜 관료들과, 얄팍한 처세술로 무장한 채 '바람보다 먼저 누워버리는' 현대의 일부 무능한 정치 관료들은 그 본질부터가 다르다.

부처가 통합되고 권력의 지형도가 바뀌는 과정에서 나름의 고민과 부침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준 폭력성은 솔직히 하루이틀 곪은 것이 아니었다. 주도권을 쥔 자들의 콤플렉스와 불안은, 주머니를 뚫고 나오는 송곳(낭중지추) 같은 인재들을 향한 억압으로 표출되곤 했다.

경제학의 '그레셤 법칙(Gresham's Law)'이 조직 내에 그대로 적용된 것이다. 악화(나쁜 돈)가 양화(좋은 돈)를 몰아내듯, 사내 정치질과 아부로 무장한 무능한 자들이 카르텔을 형성한다. 그리고 슬롯성은 조금 투박할지언정 자신의 몫을 탁월하게 해내는 유능한 자들을 '특이한 이상한 애'로 매도하며 철저히 조직 밖으로 밀어낸다.

진정으로 실력 있는 리더는 권위를 앞세우지 않는다. 계급장을 떼고 치열하게 난장 토론을 벌여도 자신의 실력과 논리로 상대를 충분히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온라인 게임 생활 동안 권위적이지 않으면서도 압도적인 실력을 갖춘 사람을 딱 한 명 보았을 뿐이다. 그만큼 실력과 비권위주의를 동시에 갖추기란 경이로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반면 카키스토크라시의 주류들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들은 유능함으로 조직을 이끌 자신이 없기에, 논리와 토론 대신 부하 직원들의 무조건적인 찬양과 감정적 아부인 '아모르(Amor)'를 요구했다. 또한, 자신들의 무능이 빚어낸 시스템의 균열을 메우기 위해, 유한한 개인에게 감히 신의 영역인 무조건적 희생 '카리타스(Caritas)'를 윽박질렀다. "죽을 때까지 일해라", "코피 터지는 건 당연하다", "우리 때는 더 심했다." 헌신을 빙자한 이 폭언들과 뒤틀린 아모르, 카리타스의 야만 속에서 인간의 합리적인 지성과 존엄은 철저히 짓밟혔다.

이 비극이 단순한 일회성의 사건으로 치부되어서는 안되는 가장 큰 이유는 조직의 DNA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데 있다. 수십 개의 정부 부처 중 상대적으로 약체에 속하는 그들이 오히려 자신의 직원들은 더 함부로 대한다는 사실은 몹시 열설적이다. 진정으로 성과를 내는 전투력 있는 조직은 적어도 내부 구성원들을 챙기며 끈끈한 소속감을 보장한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조직의 이익을 지탱해 온 사람들을, 단지 자신들보다 유능하고 통제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아웃사이더 취급하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

여전히 온 힘을 다해 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산 자들을 보호해야 한다. 모든 구성원이 최대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완벽한 생태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심리적 붕괴 없이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은 마련되어야 한다.

□ 위대한 노동으로서의 선택, 딜렉티오(Dilectio)

부품으로 전락했던 위기 속에서, 극단의 벼랑 끝으로 내몰렸던 나를 끝내 무너지지 않게 지탱해 준 것은

기만적인 아모르도, 강요된 카리타스도 아니었다. 그것은 '딜렉티오(Dilectio)'였다.

딜렉티오의 어원인 라틴어 '딜리게레(Diligere)'는 수많은 것들 중에서 대상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따로 골라내는(식별하는)' 행위를 뜻한다. 즉, 딜렉티오는 맹목적인 감정이 아니다. 상대가 처한 불완전한 상황과 상처를 모두 이성적으로 꿰뚫어 본 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사람을 귀하게 여기겠다"고 의지적으로 결단하는 인간 최고의 지성적 실천이다.

과장이 나를 미워하고 구박하면서 고립시킬 때, 주변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그 낙인을 따라가거나 방관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던 그 지옥 같은 참호 속에서도, 내 곁에는 다행히 좋은 동료들이 있었다. 그들은 과장의 프레임에 휘둘리지 않고 나의 고유함을 정확히 식별(Diligere)해 주었다. 거대한 폭력이 나를 폐기하려 할 때, 그들은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고 내 곁에서 함께 앓아내기를 '선택'했다. 무능한 자들이 지배하는 야만 속에서 타인을 유일한 존재로 대우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안전거리를 포기했던 수고로움. 그것은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보호하며 살피는 부당한 시스템에 맞서는 단단한 지성이자 딜렉티오의 연대였다.

□ 백지 한 장의 차이

그래서 나는 이 젊은 사무관의 비보가 사무치게 안타깝고 두렵다. 나 역시 충분히 그럴 수 있었던 캄캄한 시기를 지나왔기 때문이다. 우리 중 누구라도 그 벼랑 끝에 설 수 있기에, 이것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그러니 함부로 극단적인 선택에 대해 쉽게 말하지 말라. 생과 사를 가른 것은 개인의 의지가 아니라 백지 한 장 차이의 운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숨 막히는 찰나의 순간에, 내 존엄을 증명해 줄 '딜렉티오'를 실천하는 동료가 곁에 있었는지, 혹은 철저히 홀로 내버려졌는지의 뼈아픈 차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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