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inmal ist Keinmal.

Altus Solum_Achive

byAltusSolum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독일어& 프랑스어 표지

내가 살면서 가장 감명깊게 읽은 소설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1929-2023)의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국내에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번역출간되어있는데 오역이다.

체코어 원제로는Nesnesitelná lehkost bytí이고,

프랑스어 번역본의 표제는 L'Insoutenable Légèreté de l'être(1984),

영어로는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이다.

문법적 구조를 보면, '참을 수 없는(Insoutenable)'이라는 형용사는 명확하게 '존재'가 아니라

'가벼움(Légèreté)'을 수식하고 있다.

즉, 참을수 없는 존재가 가볍다는 뜻이 아니라,

존재가 참을 수 없이 가볍다는 뜻이다.

이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던 수십년 전에 출판사에 전화걸어서 문의했는데,

이미 오래전에 그렇게 오역되어서 '어쩔 수 없다'고 했다.


그때가 시작이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보통 사람들이 '어쩔 수 없다'고 말할때는 사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는 애초에 서로 말로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말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상호 의사가 다른것을 전제로 하거나, 나의 입장을 전달할때 필요한 수단이다.

생각이 서로 같을때는 보통 말이 필요 없다.

장폴 사르트르가 '자기기만(Mauvaise foi)'이라 칭했던 이 태도는,

스스로 선택한 결과에 대한 끔찍한 무게와 죄바카라감을 감당할 용기가 없어

상황과 운명 탓으로 바카라임을 전가하는 비겁함의 극치다.


이 소설은 내가 한 번 펼친 후 손을 떼지 못한 채 밤새워 읽은 첫 바카라이었다. 그래서 잊을 수 가 없다. 그렇게 쿤데라의 글을 좋아하게 되었고, "Einmal ist Keinmal."은 내 삶의 모토가 되었다. '한 번은 없는 것과 같다.' 우리 인생은 리허설 없어, 바로 1초전으로도 돌아갈 수 없다. 그러니 후회하며 연연하기 보다(그럼에도 하게 되지만..) 앞으로 나아가자! 단 한번 뿐이기에, 그리고 두 번 다시 이 상황을 반복(다음 생에서든, 미련으로든)하지 않기 위해, 지금 이순간의 고통을 남김없이 연소시키겠다는 생각이다.

삶이 단 한 번뿐이라는 일회성의 공포는 인간의 삶을 너무나 불확실하고 가볍게, 그리고 고통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어떤 선택이 옳은지 미리 살아보고 결정할 수 없으니, 모든 상황을 오직 단 한 번만 겪어내야 한다. 비교 대상도, 수정할 기회도 없기에 한 번뿐인 것은 수학적으로 '0'에 수렴한다. 어차피 단 한 번뿐이라 0으로 수렴하는 생이라면, 연연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니까, 후회가 남더라도, 그것이 회피해서 생긴 후회가 아니라 온전히 맞부딪혀서 산화된 결과물이라면,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한 번(Einmal)'을 '영원'의 무게로 살아낸 것이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니체와 밀란 쿤데라는 이 '일회성'을 두고 정반대의 철학적 사유를 전개했다.

니체가 '영원회귀(Ewige Wiederkehr)'라는 개념으로 삶에 무한한 무거움을 부여한다면,

쿤데라는 "Einmal ist Keinmal"을 통해 '단 한 번뿐인 삶의 견딜 수 없는 가벼움'을 이야기한 것이다.

니체는 <즐거운 학문(Die fröhliche Wissenschaft, 1882)> 341절에서 이 개념을 '가장 무거운 짐(Das größte Schwergewicht)'이라는 제목으로 제시한다.


"Wie, wenn dir eines Tages oder Nachts ein Dämon in deine einsamste Einsamkeit nachschliche und dir sagte: Dieses Leben, wie du es jetzt lebst und gelebt hast, wirst du noch einmal und noch unzählige Male leben müssen; (...) und jeder Schmerz und jede Lust und jeder Gedanke und Seufzer und alles unsäglich Kleine und Große deines Lebens muss dir wiederkommen..."

"어느 날 낮, 혹은 어느 날 밤에 악령이 너의 가장 고독한 고독 속으로 몰래 기어들어와 네게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 네가 지금 살고 있고, 또 지금까지 살아왔던 이 삶을 너는 다시 한번, 나아가 셀 수 없이 여러 번 살아야만 할 것이다. (...) 그리고 너의 삶의 모든 고통과 기쁨, 모든 생각과 탄식, 이루 말할 수 없이 작고 거대한 모든 것들이 네게 다시 찾아올 것이다..."

영원회귀는 삶을 평가하는 가장 가혹한 저울이다. 사후 세계를 부정하고, 내 삶의 가장 끔찍한 고통조차 영원히 반복된다는 사실을 긍정(Amor Fati)할 때 매 순간은 절대적인 무게를 지닌다는 것이다.

반면 쿤데라는 니체와 대척점에 서서 '단 한 번뿐인 삶의 견딜 수 없는 가벼움'을 이야기한다.

"Man kann nie wissen, was man wollen soll, weil man nur ein Leben hat, das man weder mit früheren Leben vergleichen noch in späteren korrigieren kann. (...) Einmal ist keinmal, sagt ein deutsches Sprichwort. Was nur einmal geschieht, ist so, als ob es nie geschehen wäre."

"사람은 무엇을 원해야만 하는지 결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에게 허락된 삶은 단 한 번뿐이며, 우리는 이 삶을 이전의 삶들과 비교할 수도, 이후의 삶에서 교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한 번은 없는 것과 같다(Einmal ist keinmal)', 독일 격언은 이렇게 말한다. 오직 단 한 번만 일어나는 일은, 마치 결코 일어나지 않은 것과 같다."


그렇게 이 문장이 내 중심에 들어오고 몇년 후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2008년 10월, 전 세계 문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이른바 '밀란 쿤데라 밀고 사건'이다.

당시 독일의 권위 있는 신문들(FAZ, SZ)의 문화면(Feuilleton)은 연일 이 사건을 대서특필하며, 작가의 문학적 성취와 실존적 오점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 치열한 윤리적 논쟁을 벌였다.


체코의 역사 잡지 <레스펙트(Respekt)>가 폭로한 1950년 공산 경찰 조서에는 21세 대학생 '밀란 쿤데라'의 이름이 명확히 기록되어 있었다. 비극은 무심하고 가벼운 발화의 연쇄에서 시작되었다. 여대생 이바(Iva Militká)는 서방 정보원으로 잠입한 옛 친구 드보르자체크(Miroslav Dvořáček)에게 가방을 맡게 된다. 이바는 남자친구인 들라스크(Miroslav Dlask)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고, 들라스크는 기숙사 친구인 쿤데라에게 지나가는 말로 이바가 수상한 사람의 가방을 맡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경찰을 찾아가 이 사실을 밀고한 사람이 바로 쿤데라였다. 밀고 직후 체포된 드보르자체크는 사형을 가까스로 면하고 우라늄 광산 수용소에서 14년을 복역하며 인생이 철저히 파괴되었다. 드보르자체크는 자신을 배신한 이가 이바라고 평생 믿고 증오했다. 이바 역시 진범을 모른 채 평생 극심한 죄바카라감과 우울에 시달리다 훗날 자신에게 사실을 전해 들었던 들라스크와 결혼했다. 그녀는 남편이 죽고 난 2008년에야, 남편의 친구였던 쿤데라가 밀고자였다는 경찰 기록을 마주하게 된다.


은둔의 작가였던 쿤데라는 이례적으로 언론에 나서서 "나는 그를 절대 모른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적으로 과도한 부정은 억압된 긍정의 발현이다. 진정 무관한 일이라면 무미건조하게 반응했을 그가 "절대(absolutně)"라는 극단적인 수사를 동원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이름이 불러올 실존적 파장의 끔찍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절대적 자백'처럼 들린다. 누군가 이름을 도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되었으나, 역사가들은 당시 젊은 공산주의자였던 쿤데라의 선제적 신고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그는 2023년 94세의 나이로 타계할 때까지 과거에 대해 철저히 입을 닫았다.



이 사건이 서구 지식인 슬롯에 거대한 충격을 준 이유는 단 하나다. 밀란 쿤데라 평생의 문학적 주제가 바로 '가벼운 배신과 전체주의가 개인의 삶을 어떻게 짓밟는가'였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은 시대의 맹목적인 폭력이나 누군가의 가벼운 농담 한마디에 송두리째 파멸한다. 그런데 정작 작가 본인이 21세 시절, 한 인간을 14년의 지옥으로 밀어 넣은 폭력의 주체였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소름 돋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inmal ist Keinmal." 한 번은 없는 것과 같다는 이 문장이, 이 끔찍한 사건 앞에서는 얼마나 서늘하고 잔인하게 다가오는지.. 청년 쿤데라가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단 한 번'의 가벼운 밀고는 결코 0으로 수렴하지 않았다. 그것은 드보르자체크의 삶을 영원히 파괴하는 무거운 형벌이 되었고, 이바에게는 평생의 원죄가 된 것이다. 이 사건은 한 인간의 선택이나 순간의 행동이 타인의 우주를 어떻게 붕괴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참혹한 실존적 사례다. 쿤데라는 자신이 쓴 글의 위대함 뒤편에서, 어쩌면 평생 동안 자신의 그 '단 한 번'의 행동이 남긴 끔찍한 무거움과 비밀스럽게 싸우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날 문학계는 쿤데라의 이러한 실존적 오점에도 불구하고, 그를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소설가 중 한 명으로 평가한다. 철저하게 작가의 '삶'과 '작품'을 분리하여, 텍스트가 지닌 문학적 성취에 집중하는 것이다. 하지만 난 여전히 판단을 유보한다. 그의 작품을 통해 받았던 지적 충격과 기쁨, 그 사건으로 혹은 그 이후의 대응으로 본 인간적 면모가 제대로 소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실은 쉽사리 드러나지 않지만, 오역된 제목이 굳혀지는 것처럼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편집될테니까.. 좀 더 살아봐야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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