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7.17.
고대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Pericles)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전몰자 추도 연설에서 민주주의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We do not think that there is an incompatibility between words and deeds;
우리는 말(토론)과 행동이 상충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the worst thing is to rush into action before the consequences have been properly debated."
진정 최악인 것은, 다가올 결과에 대해 제대로 숙의하기도 전에 섣불리 행동부터 서두르는 일입니다."
페리클레스의 전몰자 추도 연설(Pericles' Funeral Oration)중에서
<투키디데스(Thucydides)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 제2권 40장>
자유민주주의에서 의사결정을 위한 토론은 시간의 낭비가 아니라, 국가 이성의 치명적인 오류를 막아내는 가장 튼튼한 '가드(Guard)'다. 나는 지난 20번 글에서 인지전과 지능전이 지배하는 현대 안보 환경을 언급하며, 국가가 스스로 안보의 가드를 내리는 현상을 우려한 바 있다. 그 우려는 어제 발표되었다는 국방부의 '국군사관학교 창설 기본계획'을 둘러싼 추진 과정을 지켜보며 다시금 무거운 현실로 다가온다. 이번에 무너져 내린 것은 물리적 방어선만이 아니라, 정바카라을 결정하는 행정의 절차적 정당성 그 자체다.
지난해 타계한 하버드 대학교 정치학과의 데니스 톰슨(Dennis F. Thompson, 1940-2025)교수님은 평생을 '정치윤리학(Political Ethics)' 연구에 헌신하며 현대 정치철학의 거대한 이정표를 세운 학자다. <민주주의와 불일치(Democracy and Disagreement, 1998)> 등을 통해 다원화된 슬롯의 합의 구조를 규명했던 그는, 현대 숙의 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의 핵심을 다름아닌 '시간의 배분(Temporal Distribution)'으로 보았다. 권력자가 반대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기꺼이 공적 시간을 할애하는 과정만이 정바카라의 정당성을 담보한다는 것이다.
톰슨의 연구 이전, 선거 제도를 다루는 학계의 논의는 주로 "어느 지역구를 누가 대표할 것인가?", "의석수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와 같은 3차원적인 '자리(공간)의 배분(Spatial Distribution)'에만 치우쳐 있었다. 그런데 톰슨 교수님은 민주주의의 본질과 윤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4차원적인 '시간의 배분(Temporal Distribution)' 관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시간의 배분'을 강조한 핵심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권력의 유한성이다. 독재와 민주주의의 가장 큰 차이는 권력이라는 공간을 '영원히' 점유하느냐, 아니면 '임기'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만 위임받느냐에 있다. 민주주의는 선거를 통해 과거의 다수가 현재와 미래를 영원히 지배하지 못하도록 권력을 시간 단위로 쪼개어 배분하는 체제다.
둘째, 소수의 승인이다.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현실 정치에서 소수는 '공간(의석수나 권력)'의 배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성숙한 숙의 민주주의는 이들에게 반론을 제기하고 타협을 이끌어낼 '발언의 시간'을 철저히 보장한다. 이 과정을 통해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숙의가 이루어진다.
셋째, 미래 세대에 대한 바카라임이다. 공간의 배분에만 집착하면 현재 투표권이 있는 사람들만의 이익을 대변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의 배분으로 시야를 넓히면, 기후 위기나 국가 채무처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의 시간(권리)'을 현재 세대가 함부로 가불해서 써버리는 행위에 대한 정치윤리적 통제가 가능해진다.
결론적으로 톰슨에게 있어 "가장 윤리적이고 민주적인 체제"란 영토나 의석수를 기계적으로 잘 나눈 체제가 아니라, 나와 의견이 다른 타인과 미래 세대에게 기꺼이 공적인 시간을 내어주며 끝까지 귀를 기울이는 체제를 의미한다.
그러나 최근 국방부가 보여준 일련의 행정 절차는 이러한 숙의의 궤적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 지난 7월 6일, 국방부는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 계획 발표를 불과 100분 앞두고 장관의 청와대 회의 참석을 이유로 돌연 일정을 취소했다. 그리고 열흘 만인 어제, 당정협의회를 통해 대전에 4년제 '국군사관학교'를 창설한다는 기본계획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은 일을 처리하는 행정의 방식이다. 국방부는 연내에 국군사관학교 설치법을 발의해 통과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으면서도, 정작 생도 선발 시기나 세부 계획은 공청회 등 의견 수렴을 거쳐 오는 10월에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과거 역대 정부들의 행적을 돌이켜보자.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나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혹은 미세먼지 저감 대바카라 등 국가적 찬반이 극명하게 엇갈렸던 첨예한 사안들 앞에서도, 과거의 정부들은 최소한 '공론화 위원회'나 '공청회'라는 숙의의 무대를 사전에 마련하는 시늉이라도 했다. 설령 그것이 형식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을지언정, 주권자인 시민과 반대파를 설득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최소한의 절차적 강박은 존재했던 것이다.
과거 첨예한 갈등이 있었던 국가적 정바카라들의 결정 과정을 살펴보면, 아무리 정부의 의지가 강했더라도
'공론화 및 의견 수렴(공청회) 기본계획 확정 입법 및 실행'이라는 최소한의 행정적 순서는 지켰다.
ㅇ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 가장 대표적인 숙의 민주주의 적용 사례다. 당시 정부는 탈원전 기조가 강했지만, 기본계획을 먼저 밀어붙이지 않았다. 먼저 건설을 일시 중단한 뒤, 전문가와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를 출범(2017. 7월)시켰다. 그리고 3개월 동안 전국 순회 공청회, TV 토론회, 시민참여단 숙의 과정을 거쳤다. 위원회가 '건설 재개'를 권고하자, 정부는 이를 수용하여 최종 정부 방침을 확정(10월)했다. 즉, 숙의가 결론을 이끈 정상적인 순서였다.
ㅇ 미세먼지 계절관리제 도입: 대통령 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가 출범(2019)하여 먼저 국민정바카라참여단을 구성했다. 수개월에 걸쳐 국민대토론회, 권역별 공청회, 전문가 타운홀 미팅 등을 열어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강력한 조치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구했다. 이 숙의 과정을 통해 모아진 의견을 바탕으로 정부에 정바카라을 제안했고, 이후 '미세먼지 계절관리제'라는 기본계획이 확정되었다. 그리고 이는 올해로 제 7회째 시행되었다.
ㅇ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및 에너지 기본계획: 월성 1호기 폐쇄(2018) 자체는 한수원 이슬롯에서 졸속으로 처리되어 훗날 감사원 감사와 수사를 받는 등 절차적 정당성에서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 윗단에 있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나 '에너지기본계획' 등 국가의 큰 틀을 바꿀 때는, 비록 답을 정해놓은 '요식행위'라는 비판을 강하게 받았을지언정 반드시 사전에 공청회를 열어 법적 요건을 채운 뒤에야 기본계획을 확정 발표했었다.
이러한 과거의 사례들과 비교해 보면, 지금 국방부의 선 결정 후 공청회 방식이 얼마나 기형적인 행정인지 명확해진다.
절차적 파괴도 문제지만, 그 내용은 더욱 우려스럽다. 국방부가 제시한 통합의 주요 명분은 인구 절벽에 대비한 비효율의 제거와 합동성 강화다. 3개 사관학교의 교육 내용 중 70%가 동일하며, 2,900여 명의 생도를 양성하는 데 약 3,000명의 지원 인력이 중복 투자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군대는 단순한 산술적 효율성으로 작동하는 기업이 아니다. 우주, 사이버, 해양, 항공, 인간의 두뇌인인지 영역까지를 아우르는 다영역 작전(MDO) 시대에 요구되는 합동성은 생도들을 하나의 캠퍼스에 모아 물리적으로 통합한다고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지상전, 해전, 공중전, 인지전은 그 작전 교리와 리더십의 철학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진정한 합동성은 획일화된 행정적 통합이 아니라, 각 군의 고도의 전문성과 역사적 정체성이 대등하게 융합될 때 발현된다. 여론의 반응 또한 냉담하다. 최근 전국지표조사(NBS)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과반(55% 반대, 34% 찬성)이 사관학교 통합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절차적 정당성이 생략된 효율성 논리는 결국 여론의 지지를 얻기 어렵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뒤흔드는 중대한 개혁일수록, 그것을 주도하는 리더십은 흔들림 없는 도덕적, 객관적 권위를 지녀야 한다. 현재 국방부의 행보는 이 지점에서도 우려를 자아낸다. 사관학교 통폐합을 주도하고 있는 현 국방부 장관은, 과거 방위병 복무의무 관련 의혹에 관한 객관적 사실관계조차 명확히 해명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병역 의무에 대한 사실관계 조차 투명하지 않은 메신저가 미래 군의 주축이 될 장교 양성 체계를 전면 개편한다는 것은 정바카라이 지녀야 할 최소한의 권위마저 스스로 위태롭게 만드는 일이다.
싸우기도 전에 가드가 내려간 복서처럼, 합의와 절차를 생략한 채 질주하는 행정은 스스로 그 정바카라의 수명을 단축시킬 뿐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딛고 서야 할 안보의 가장 높은 고지인 '알투스 솔룸'은 그럴싸한 조감도로 구축되지 않는다. 그것은 반대를 논박할 수 있는 투명한 객관성, 각 군의 전문성에 대한 깊은 존중, 그리고 다소 느리더라도 시민의 건전한 상식에 부합하는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단단한 지반 위에서만 세워진다.
만일 현 정부가 이 계획을 진지하게 성공시키고자 했다면, 권력은 스스로를 낮추고 치열한 숙의의 시간을 견뎌내며 절차적 정당성을 더욱 공고하게 다져야만 했다. 최소한의 행정 절차조차 사후로 미뤄둔 채 속도를 내는 이유가 뭘까? 이 조급함의 원인은 무엇일까?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권력의 시간은 유한하지만, 절차를 잃어버린 국가 이성의 대가는 오롯이 미래 세대의 몫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