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시대에 '실패'라는 단어는 누구도 곁에 두고 싶어 하지 않는 낙인이다. 거대한 이상을 품고 출범했던 기획이나 조직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초될 때, 사람들은 가장 먼저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치 그런 일은 인생에 단 한번도 있었던 적이 없었던 것 처럼 흔적을 지우기 바쁘다. 옛 철학자들은 이를 두고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고 설명할 것이다. 특정한 이념이나 과거의 틀(뗏목)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다음 경계로 탈각하며 유목하는 것만이 성숙한 지성의 태도라 말한다. 맞다. 일리가 있는 접근이다.
그러나 모두가 미련 없이 뗏목을 버리고 홀연히 다음 목적지로 떠나버린 텅 빈 강가에는 무엇이 남을까? 누군가는 버려진 뗏목의 잔해를 주워 모아 비바람을 피할 기둥을 세우고, 기어코 그 척박한 땅을 개간하여 사람들이 정주할 수 있는 영토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도피적 유목이 아닌, 상처 입은 대지 위에 기어코 '공화(Res Publica)'의 성벽을 쌓아 올리려는 정착자의 철학은 언제나 폐허 한가운데서 시작된다.
기원전 334년, 아시아 원정을 앞둔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자신의 모든 영지와 재산을 신하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놀란 장군 페르디카스가 "전하를 위해서는 무엇을 남겨두십니까?"라고 묻자, 그는 단 한 단어로 대답했다.
"희망(Elpis)"
고대 그리스어 '엘피스'는 단순한 긍정이나 막연한 낙관이 아니다. 신들이 인간에게 내린 온갖 재앙이 빠져나간 판도라의 상자, 그 가장 깊고 어두운 밑바닥에 홀로 웅크리고 있던 최후의 실존이다. 모든 안전장치를 버리고 끝을 알 수 없는 모험에 자신을 던졌던 알렉산드로스에게 엘피스란,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내 손으로 창조해 내겠다는 맹렬하고 '투쟁적인 기대(Militant Optimism)' 그 자체였다.
세상이 '실패한 실험'이라며 사망 선고를 내린 가치라 할지라도, 누군가 그 잔해 속에서 마지막 남은 가치의 씨앗을 쥐고 굳건히 서 있다면 그것은 아직 끝나지 않은 'Noch-Nicht(아직-아님)'의 상태다. 알렉산드로스가 북방의 이민족을 제압하고 반란을 일으킨 테베를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지옥 같은 폐허 속에서도 위대한 시인 '핀다로스의 집'만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보존했듯, 껍데기가 무너진 자리에서도 결코 타협하거나 태워버릴 수 없는 본질적인 사유의 씨앗은 남는다. 그 씨앗을 포기하지 않는 한, 과거의 이름이 무엇이었든 서사의 주체는 끝까지 남은 자의 통제권 안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한 개인의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엘피스의 투쟁적 에너지만으로는 죽어가는 벌집을 되살릴 수 없다. 개인의 결단이 파괴적인 고집이나 공허한 아나키즘으로 증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를 견고한 제도의 그릇에 담아내야 한다. 로마인들이 숭배했던 최후의 여신, '스페스(Spes)'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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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IMP:Imperator (임페라토르, 최고 사령관),ALEXANDER: Alexander (알렉산데르 황제의 이름),PIVS: Pius (피우스, 공적인 바카라임을 다하는 자),AVG:Augustus (아우구스투스, 존엄한 황제)
<오른쪽> SPES PVBLICA (스페스 푸블리카), 여신은 오른손에 아직 만개하지 않은 '꽃(미래의 결실이자 기원의 씨앗)'을 쥐고 있으며, 왼손으로는 앞으로 거침없이 발을 내디디려는 듯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올리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기원 후 4세기(306-337)에 만들어진 주화를 보는중이다. 저렇게 디테일한 디자인을 했던 인류문명이 21세기 지금..
로마인들이 생각했던 이 제도의 실체는 3세기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황제 시절 주조된 낡은 은화에 가장 직관적으로 각인되어 있다. 은화의 뒷면에는 '공적인 희망(SPES PVBLICA)'이라는 글귀와 함께 여신 스페스가 서 있다. 흥미로운 것은 여신의 자세다. 오른손으로는 아직 피어나지 않은 미래의 씨앗(꽃)을 쥐고, 왼손으로는 앞으로 묵묵히 나아가려는 듯 치맛자락을 살짝 걷어쥐고 있다. 요란한 구호나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다가올 미래를 향해 당장 오늘의 진흙탕 속으로 걸어 들어가겠다는 단단한 '실천'의 도상이다.
그러나 진정한 철학적 완성은 이 동전을 뒤집었을 때 나타난다. 치맛자락을 걷어쥔 여신의 뒷면, 즉 은화의 앞면에는 황제의 옆얼굴과 함께 '피우스(Pius)'라는 칭호가 무겁게 새겨져 있다. 피우스란 단순한 신앙심이나 도덕이 아니라, 공화국과 시민, 그리고 법을 향해 자신이 짊어져야 할 공적인 바카라임을 묵묵히 다하는 이성적인 도리를 뜻한다.
공화(Res Publica)가 누군가의 자의적 권력에 예속되지 않는(Non-domination) 자유 시민들의 연대라면, 공적인 희망(Spes Publica)은 그 연대가 내일도 붕괴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스템에 대한 강력한 신뢰다. 이 신뢰는 기적처럼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폐허 속에서도 공공을 향한 이성적인 바카라임(Pius)을 잊지 않고, 무심히 흩어지는 시간 속에서 묵묵히 제도의 벽돌을 구워내는 서늘한 실천이 있을 때 비로소 주조되는 동전의 뒷면인 것이다.
그러므로 공적인 희망을 세운다는 것은 곧 청년들이 권력에 예속되지 않도록 낡은 구조적 바리케이드를 철거하고, 자립한 꿀벌들이 연대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일이다. 이 거대한 과업은 한두 번의 선거 이벤트나 누군가의 시혜적인 구호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직 피우스(Pius)의 바카라임감을 쥔 자들이 매일의 일상 속에서 옷 자락을 걷어쥐고 조용히 밭을 일굴 때만 구축될 수 있다.
당연히 냉소를 받을 것이다. 수백 년을 지탱할 것처럼 보였던 그 위대한 로마조차 결국 야만족의 말발굽 아래 처참히 무너져 내리지 않았느냐고. 맞다. 로마라는 '물리적 제국'은 멸망했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공화(Res Publica)의 뼈대와 시민법의 체계는 살아남아, 이후 2천 년 서구 문명을 지탱하는 '정신적 토양'이 되었다. 거대한 조직이나 정치적 뗏목의 물리적 수명은 유한하지만, 치열하게 벼려낸 제도의 정신은 폐허 속에서도 결코 소멸하지 않는다.
기원전 330년, 적국 페르시아의 심장부를 정복한 알렉산드로스는 키루스 대왕의 무덤 앞에서 하나의 비문을 마주하게 된다.
"지나가는 나그네여, 그대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든
나는 그대가 올 줄 알고 있었다.
나는 페르시아 제국을 세운 키루스다.
나의 몸을 덮고 있는 이 한 줌 흙을 시기하지 말지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거대한 제국을 세웠던 위대한 군주조차 결국 '한 줌의 흙'에 불과하다는 선언 앞에서, 젊은 정복자는 오만을 거두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 무덤을 정중히 복원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단순한 승자의 여유나 관용의 차원이 아니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아버지 필리포스 2세로부터 강력한 국가 시스템을 물려받은 정복자였다. 마키아벨리 역시 <군주론>에서 척박한 땅에 스스로 새로운 질서를 세운 위대한 '창조자'로 알렉산드로스 대신 모세, 로물루스, 테세우스, 그리고 키루스를 호명한 바 있다. 완성된 뗏목을 물려받아 바다를 제패한 젊은 영웅은,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대지 위에 맨손으로 최초의 질서를 세워 올린 '원초적 창조자(Origin)'의 지독한 고독과 위대함, 그 압도적인 '시작의 무게'를 단번에 알아보고 깊은 경의를 표했던 것이다.
안락한 온실을 거부하고 척박한 대지 위에 기어코 최초의 질서를 세워본 자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실존적 연대. 그것은 뼈를 깎는 고독과 헌신을 견뎌낸 '창조자들'만이 서로에게 바칠 수 있는 경의였다. 세상 모두가 무너진 폐허라 부르는 그 초라한 잔해 속에서도, 기어코 거대한 시스템을 세워냈던 '최초의 기원(Origin)'을 알아본 것이다.
강을 건넜다고 하여 뗏목을 미련 없이 불태워버리는 시대의 가벼움에 휩쓸리지 않겠다. 모두가 끝났다고 등 돌린 텅 빈 폐허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살아남은 씨앗을 찾아 나의 깊은 토양(Altus Solum) 위에 심는 것. 그것이 내가 선택한 명확한 방향이다.
무심히 흩어지는 크로노스(Chronos)의 시간 속에서 버려진 뗏목의 나무를 깎고 차곡차곡 공화의 벽돌을 구워내는 일은, 거창한 투쟁이나 숭고한 희생이 아니다. 그렇다고 목적 없이 흘러가는 소박한 일상도 아니다. 그것은 내가 무엇을 짓고 있는지 분명한 나만의 도면을 품은 채, 매일매일 흔들림 없이 쌓아 올리는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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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조롱하고 기득권이 외면한 이 이름 없는 씨앗이, 마침내 무너지지 않는 공적인 희망(Spes Publica)으로 자라나 공화국(Res Publica)의 토양을 덮을 때까지. 나는 묵묵히 나의 밭을 일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