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strong-good-weak
우리는 앞서 <이미 다가온 미래>를 통해 입추가 서늘한 낭만이 아닌 생존을 걸고 다가올 혹독한 겨울을 대비하는 치열한 출발선임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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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압축된 역사의 계절>을 거치며, 닐 하우(Neil Howe)가 경고한 제4전환기, 즉 모든 낡은 제도가 무너져 내리는 거대한 '위기의 겨울'이 이미 우리 앞에 당도했음을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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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을 다한 성채의 기둥이 뽑히고 시뻘건 불화살이 날아드는 이 척박한 계절 한가운데서, 방관의 냉소나 무력한 분노에 빠지지 않고 폐허 위에 세울 '새로운 질서의 도면'을 그려내기 위해 우리는 하나의 묵직한 질문과 마주해야 한다.
이 가혹한 시대를 통과하며 새로운 평온의 시대를 열어젖힐 '강인한 인간'은 과연 누구인가?
"가혹한 시대는 강인한 인간을 낳고,
Hard times create strong men.
강인한 인간은 평온한 시대를 연다.
Strong men create good times.
평온한 시대는 나약한 인간을 기르고,
Good times create weak men.
나약한 인간은 또다시 가혹한 시대를 부른다."
And, weak men create hard times.
G. 마이클 호프(G. Michael Hopf, 1970-)의 <살아남은 자들(Those Who Remain, 2016)>
SF소설 속의 배경은 거대한 전자기펄스(EMP) 공격으로 통신과 전력 등 현대 문명이 단 1초 만에 증발해 버린 세계다. 법과 도덕이라는 '평온한 시대(Good times)대'의 시스템이 무너지자, 인간 슬롯는 순식간에 홉스가 <리바이어던>에서 강조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 즉, 폭력과 약탈이 난무하는 야만의 '가혹한 시대(Hard times)'로 곤두박질친다. 작가는 잿더미가 된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기를 이 소설에 담아냈다.
사실 이 소설 자체는 문학사에 남을 위대한 고전이라기보다는 흥미 위주의 대중적인 장르물(포스트 아포칼립스 스릴러)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바카라의 서두를 장식한 저 네 줄의 문장만큼은 소설의 껍데기를 뚫고 나와 전 세계적인 생명력을 얻었다. 인류가 수천 년간 고민해 온 거대한 '역사 순환론'을 가장 직관적으로 압축해 냈기 때문이다.
이 짧은 문장 안에는 굵직한 사상가들의 통찰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14세기 아랍의 위대한 사상가 이븐 할둔(Ibn Khaldun)은 사막의 거친 환경(가혹한 시대)을 견딘 유목민이 강인한 연대력으로 나라를 세우지만, 도시의 사치와 평온함에 젖으면 불과 3세대 만에 나약해져 멸망한다고 보았다. 고대 로마의 폴리비오스나 르네상스 시대의 마키아벨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건강한 정치 체제는 반드시 타락하여 무능한 중우정치로 무너지고, 그 혼란 속에서 강인한 지도자가 다시 질서를 세우는 과정이 쉼 없이 반복된다고 설파했다.
즉, 마이클 호프는 과거 철학자들이 남긴 방대하고 복잡한 문명사의 통찰을 '가혹함-강인함-평온함-나약함'이라는 단 네 개의 톱니바퀴로 조립하여, 붕괴를 앞둔 현대인의 뇌리에 벼락처럼 내리꽂히는 시대의 격언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하지만 이 거시적 역사관의 쳇바퀴를 읽어냄과 동시에, 우리는 이 문장이 숨기고 있는 치명적인 착시 역시 철저히 해부해야 한다. 진짜 강인한 자와 강인함을 연기하는 자들의 기만을 구별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저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눌려 부서지는 무력한 부속품으로 전락하고 말기 때문이다.
역사의 순환을 논할 때, 우리는 호프가 말한 '나약한 인간(Weak men)'의 실체를 정확히 재정의해야 한다. 그것은 특정 세대를 나이로(Age-band) 칼같이 구별하여 나눈 폭력적인 인구통계학적 꼬리표가 아니다. 과거의 혹독한 시절을 겪어냈다고 해서 모두가 성숙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며, 풍요로운 시절에 태어났다고 해서 모든 젊은이가 나약한 것도 아니다. 강인함과 나약함을 가르는 진짜 척도는 생물학적 연령이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실존적 태도와 내면의 뼈대'에 있다.
단상 위에서 핏대를 세우며 세상을 구원할 것처럼 외치는 자들을 보라. 타인의 허물을 물어뜯어 자신의 무능을 가리고, 진영이라는 거대한 방패 뒤에 숨어 조금의 비판에도 짐승처럼 발작하는 자들. 이들은 겉보기엔 누구보다 호전적이고 강해 보이지만, 실상은 자신을 지탱할 고유한 뼈대가 없기에 무리를 지어 짖어대는 평온한 시절의 가장 '나약한 괴물들'일 뿐이다.
반면 '강인한 인간(Strong men)'은 남을 심판하는 높은 자리에 앉아 환각의 주문을 외우지 않는다. 그들은 부조리한 세계 앞에서도 타인을 원망하는 핑계를 버리고, 실패의 바카라임을 온전히 짊어진 채 미지의 궤도를 향해 묵묵히 로켓을 쏘아 올리는 개척자들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냉철하게 질문해야 한다. 지금 성채 위에서 권력을 쥐고 호통을 치는 자들 중, 기꺼이 파도의 최전선에 서는 '진짜 강인한 자'는 과연 몇이나 존재할까?
진짜 강인함이 증발해 버린 슬롯는 가짜 강인함(폭력)을 미화하는 병증을 앓는다. 가혹한 시대가 강인한 인간을 만든다는 명제가 자칫 '불필요한 고통의 합리화'로 이어지는 것이 그 증거다.
고난이 잠재력을 폭발시킨다는 핑계로, 타인의 껍데기를 밖에서 강제로 찢어발기는 포식자의 폭력은 결코 강인함을 낳지 못한다. 상처 입은 조개의 입을 억지로 벌려 진주(성과)를 캐내는 방식은 인간을 탁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마비된 고장 난 기계로 전락시킬 뿐이다. 시대의 겨울이 부여하는 구조적인 '가혹함'과, 허약한 에고를 채우기 위해 가해지는 '악의적인 폭력'은 철저히 구분되어야 한다. 우리는 가혹한 시대를 버텨내야 하지만, 나를 갉아먹는 외부의 폭력을 성장의 자양분으로 포장하는 기만은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그렇다면, 허세와 폭력이 난무하는 이 붕괴의 계절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진짜 '강인한 인간'으로 바로 설 수 있는가? 그 해답은 타인에 대한 지배가 아니라, 외부 자극과 나 자신의 반응 사이에 의도적인 공간을 만들어내는 '멈춤(Pause)'의 능력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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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혹한 시대는 거대한 불안을 쏟아낸다. 세상은 끊임없이 짐승처럼 남을 물어뜯고 살아남으라고 소리친다. 그러나 진정으로 강인한 인간은 이 아수라장 속에서 반사적으로 튀어나가려는 에고의 멱살을 쥐고 잠시 멈춰 선다. 기계적인 분노나 도피가 아닌, 오직 스스로가 선택한 주권적 반응을 향해 자신의 온 체중을 묵직하게 싣는 것. 쏟아지는 자극들 앞에서 이성을 거두고 짐승이 되기를 거부하는 이 고요한 멈춤이야말로, 거짓된 강인함이 판치는 세상에서 개인이 쥘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힘이다.
미국의 풍경화가 토머스 콜(Thomas Cole)은 거대한 문명이 탄생하고 번영하다 결국 타락하여 멸망하는 역사의 순환을 연작 <제국의 과정>에 담아냈다. 그 마지막 작품인 '폐허(Desolation)'를 보면, 한때 영원할 것 같던 웅장한 대리석 기둥들은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고 인간의 탐욕이 휩쓸고 간 잿더미 위에는 짙은 고요만이 내려앉아 있다. 평온함에 취해 나약해진 제국이 스스로 불러온 가혹한 시대의 민낯이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이 그림 속 폐허와 같은 '가혹한 시대'를 통과해야 할 것이다. 과거가 드리운 그림자로서의 미래는 이미 우리 앞에 당도했고, 역사의 쳇바퀴는 사계절을 쉼 없이 순환하며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거대한 파편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러나 진주가 세상의 빛을 보기 위해서는 결국 껍데기가 벌어지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외부의 폭력에 의해 억지로 입이 찢긴 조개는 내장이 파괴되지만,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영원히 껍데기를 닫고 숨어버린 조개 역시 스스로의 진주를 가두는 캄캄한 무덤이 되고 만다.
진정으로 강인한 인간은, 밖에서 나를 찢으려는 폭력은 단호히 차단하되,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거대한 두려움을 안고서도 '오직 스스로의 결단과 힘으로' 기꺼이 껍데기를 열어 세상의 거친 겨울바람과 마주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자다.
강한 척하는 나약한 자들의 굉음과 냉소의 유혹을 걷어내자. 내면의 가장 깊고 단단한 바닥, 알투스 솔룸(Altus Solum)에 두 발을 굳게 딛고 스스로 껍데기를 여는 주권자가 되는 것. 역사의 쳇바퀴를 멈춰 세울 수는 없으나, 그 쳇바퀴 위에서 흔들림 없이 나만의 도면을 그리며 걷는 것. 그것이 잿더미 너머의 진짜 가을을 맞이하기 위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이 척박한 계절을 건너는 우리의 가장 위대한 실존적 결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