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광복'의 의미

제 81회 광복절

byAltusSolum

1945년 8월 15일, 우리는 빛을 되찾았다(광복, 光復). 그러나 우리가 되찾은 것은 과거의 낡은 나라가 아니었다. 8.15는 망해버린 '조선'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근대적 공화국인 '대한민국'을 세우고 완전히 새로운 신인류, 즉 '한국 사람(Modern Korean)'을 탄생시키는 위대한 창조의 기점이었다.


정치학자 함재봉의 방대한 저작 <한국 사람 만들기>는 바로 이 지점을 치밀하게 파고든다. 이 바카라이 남다른 울림을 주는 이유는 저자의 묵직한 가족사 때문이다. 그의 조부(함태영)는 3.1 운동을 이끈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의 3대 부통령이었고, 그의 부친(함병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1983년 미얀마 아웅산 테러 사건 당시 북한의 폭탄에 목숨을 잃었다. 국가의 탄생과 분단의 비극을 온몸으로 관통한 가문의 후손이, 평생의 학문적 역량을 바쳐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에 답을 내놓은 것이다.



□ 5개의 이데올로기가 충돌하며 빚어낸 '복합적 신인류'

함재봉 교수는 오늘날의 한국인이 반만년 단일민족의 유전자로만 이루어진 단순한 존재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그에 따르면 현대의 한국 사람은 제국주의의 거대한 파도 속에서 한반도라는 용광로에 뛰어든 다섯 가지 거대한 이데올로기가 목숨을 걸고 충돌하며 만들어낸 '복합적이고 근대적인 기획의 산물'이다.


ㅇ 친중 위정척사파: 낡은 성리학적 질서와 중화사상을 고수하려 했던 보수 세력

ㅇ 친일 개화파: 일본을 모델로 삼아 부국강병과 서구화를 이루려 했던 세력

ㅇ 친미 기독교파: 서구의 민주주의, 개인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새로운 공화국을 꿈꾼 세력

ㅇ 친소 공산주의파: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통해 계급 해방과 항일 투쟁을 이끌려 했던 세력

ㅇ 인종주의적 민족주의파: 좌우 이념을 떠나 순혈주의와 민족 그 자체를 절대적 가치로 삼았던 세력


이 이질적이고도 치열한 사상들이 서로 배척하고 융합하는 피비린내 나는 과정 속에서, 낡은 세계관을 부수고 서구의 법치와 자유주의를 이식해 기어이 세워낸 것이 바로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광복 81주년을 맞이한 오늘, 우리는 감상적인 민족주의를 거두고 이 차가운 국가 탄생의 철학적 기원을 다시 직시해야 한다.


□ 무능한 왕조의 죽음과 민국(民國)의 탄생

광복절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잔혹함을 규탄한다. 마땅히 기억해야 할 역사다. 그러나 외세에 대한 분노에만 매몰되어 스스로를 순결한 피해자로만 포장하면 정작 교훈을 놓치게 된다. 왜 우리는 그토록 허망하게 주권을 빼앗겼는가?


당시 조선의 위정자들은 세계사의 흐름(산업혁명과 제국주의)을 읽어낼 지적 능력이 없었다. 성리학적 명분론과 중화사상이라는 낡은 교조에 갇혀 실용과 과학을 배척했고, 국가의 안보나 백성의 삶보다는 세도정치와 당파 싸움이라는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 있었다. 변화해야 할 골든타임을 놓친 위정자들의 지적 게으름과 탐욕이 결국 국가의 숨통을 끊어놓았다.





1884년경 미국인 피에르 주이(Pierre Louis Jouy)가 조선에서 수집 후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기증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 중 하나인 '주이 태극기'



그래서 독립운동가들과 백성들은 아무도 '조선'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일본으로부터의 온전한 독립을 열망했지만, 왕조의 복원(복벽, 復辟)은 단호히 거부했다. 무능하고 부패하여 백성을 버린 왕의 나라(군국, 君國)가 아니라, 백성이 주인이 되는 나라(민국, 民國)를 세우고자 했다. 구한말의 참담한 실패를 딛고 일어선 선각자들이 낡은 세계관을 부수고 서구의 민주주의, 법치, 자유주의를 이식하여 기어이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과정은, 그 자체로 기적에 가까운 문명사적 도약이었다.


□ 2026년, 다시 드리운 '구한말의 그림자'

그러나 2026년 오늘, 광복의 기쁨과 함께 짙은 무력감과 탄식이 앞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슬롯가 이룩해 낸 위대한 '한국 사람'의 역동성이 시들어가고, 나라를 잃게 만들었던 '구한말 위정자들의 낡고 무능한 망령'이 다시 국가 시스템을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밖으로는 초강대국들의 지정학적 단층이 요동치고 있다. 미국은 '유연한 현실주의'와 '거부전략'을 내세우며 동맹국들에게 차가운 비용 청구서를 내밀고 스스로의 억지력을 증명해 방위의 자립을 압박한다. 안으로는 0.8명대의 합계출산율이라는, 14세기 흑사병보다도 빠른 인구 통계학적 붕괴가 국가 안보와 경제의 근간을 갉아먹고 있다.


이 거대한 실존적 위기 앞에서 기득권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북한의 쉼없는 도발과 위협 앞에서는 실질적 대안 없이 '중단 촉구'라는 말잔치 뒤로 숨어버리고, 국가의 백년대계인 장교 양성 시스템(사관학교)을 얄팍한 정치적 피해망상으로 훼손하려 든다. 청년들이 잔혹한 경쟁과 절망 속에 생명 낳기를 포기하고, 성실한 실무자들이 무바카라임한 권력의 횡포 속에 목숨을 잃어가는데도, 위정자들은 위기 극복의 비전을 제시하기는커녕 권력을 연장하기 위한 개헌과 진영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 명분론에 집착하며 백성의 삶을 내팽개쳤던 구한말 지배층의 무능이, 21세기 대한민국의 권력층 위로 섬뜩하게 겹쳐지는 순간이다.


□ 광복(光復) : 멈추지 않는 '한국 사람 만들기'

함재봉 교수가 말하는 <한국 사람 만들기>는 과거형이 아니다. 지금도 진행 중인 현재진행형의 기획이다.


우리가 오늘날 다시 나라를 잃는다면, 그것은 총칼을 앞세운 외세 때문이 아닐 것이다. 내부의 분열, 현실을 외면한 이념적 아집, 그리고 바카라임지지 않는 기득권의 무능이 스스로 국가를 소멸의 길로 밀어 넣을 것이다.


진정한 광복은 낡은 족쇄에서 풀려나는 것을 넘어, 다가오는 시대의 도전에 맞서 우리 스스로를 끊임없이 재창조하는 데 있다. 3.1 운동을 이끌며 진짜 피를 흘려 이 나라의 근간을 세운 선열들의 후손조차, 그 위대한 헌신이 얄팍한 기득권이나 자랑거리가 될까 두려워 "생색내지 말라"는 무거운 가르침 속에 스스로 입을 닫고 살아간다.


정치권의 자정 능력이 상실되었다면, 이제는 깨어있는 시민들이 차가운 국가 이성(Raison d'État)을 회복해야 한다. 명분과 진영 논리라는 얄팍한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과거를 팔아 현재의 권력을 탐하는 자들을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철저한 실용주의와 묵직한 바카라임의식으로 무장한 21세기의 '진짜 한국 사람'을 다시 빚어내는 것. 그것만이 나라를 잃었던 뼈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 선조들이 침묵 속에 물려준 '민국(民國)'을 지켜내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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