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petition < iteration
국가, 정의, 민주주의. 오늘날 소위 엘리트라 자처하는 기득권들이 밀실 밖으로 쏟아내는 대의명분은 화려하지만, 그들의 실제 궤적은 놀라울 정도로 빈곤하고 위선적이다. 바르게 실력을 쌓은 이들에게 기회는 주어지지 않고, 권력의 언저리를 맴도는 자들의 진흙탕 싸움만이 연일 지면을 장식한다.
이 씁쓸한 풍경은 비단 한국 슬롯만의 고립된 병증이 아니다. 미국의 극단적 양극화와 포퓰리즘, 유럽의 분열, 그리고 '조용한 사직'과 'N포세대'으로 대변되는 전 세계 청년들의 실존적 체념은 모두 하나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와 능력주의 시스템이 암묵적으로 맺었던 '노력에 대한 보상'이라는 약속이 전 지구적으로 파기되었음을 알리는 거대한 파국이다.
우리는 종종 이 엘리트들의 도덕적 타락에 분노하지만, 역사를 수학적 데이터로 해체하는 학자들의 렌즈로 보면 이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붕괴하는 문명의 가장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징후'에 불과하다.
피터 터친(Peter Turchin)은 단순한 역사학자나 슬롯학자가 아니다. 그는 본래 숲속의 딱정벌레나 들쥐의 개체 수가 어떻게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가 붕괴하는지를 수학적 모델로 연구하던 생태학자이자 복잡계 과학자였다. 1990년대 후반, 그는 생태계의 '포식자와 피식자 붕괴 모델'을 인간 제국의 흥망성쇠에 적용하는 대담한 시도를 한다. 방대한 역사적 데이터를 수학 통계로 분석하여 역사의 주기적 붕괴를 과학적으로 증명해 낸 이 융합 학문을, 그는 역사의 여신 이름을 따 '클리오동역학(Cliodynamics)'이라 명명했다.
그는 2010년 데이터 모델링을 통해 "2020년을 기점으로 미국과 서구 슬롯가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화와 체제 붕괴의 위기를 겪을 것"이라는 소름 끼치도록 정확한 예측을 내놓은 바 있다. 최근 저서 <국가는 어떻게 무너지는가(End Times, 2023)>에서 터친은, 이 필연적인 문명의 붕괴 기저에 기득권이 작동시키는 치명적인 기계 장치 하나가 도사리고 있음을 지목한다. 바로 '부의 펌프(Wealth Pump)'다.
이 펌프는 대중의 노동력과 슬롯적 자원을 착취해 오직 최상층부로만 부를 퍼 올린다. 밑바닥의 대중은 말라가는데, 펌프 꼭대기에 고인 막대한 부를 본 사람들은 너도나도 학위라는 사치품을 쥐고 엘리트 계급으로 진입하려 든다. 이른바 '엘리트 과잉 생산(Overproduction of Elites)'이다. 하지만 시스템이 제공할 수 있는 권력의 파이는 한정되어 있다. 결국 약속을 배신당하고 권력을 쥐지 못한 '잉여 엘리트'들이 쏟아져 나온다.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기득권의 부끄러운 진흙탕 싸움은 거창한 이념 대립이 아니다. 고장 나서 폭발하기 직전인 '부의 펌프' 꼭대기에서, 넘쳐나는 가짜 엘리트들이 서로의 밥그릇을 뺏기 위해 대중의 분노를 선동하며 벌이는 비참한 생존 투쟁일 뿐이다.
가뭄처럼 메말라버린 이 구조적 파국 앞에서, 지적으로 성숙한 주체는 엘리트들의 쳇바퀴에 합류하거나 세상을 냉소하는 대신 완전히 다른 방식의 실천을 선택해야 한다.
한국어에서 '반복'이라는 단어는 종종 치명적인 오해를 낳는다. 언어적 한계로 인해, 우리는 제자리를 맴도는 무의미한 쳇바퀴인 '단순 반복(Repetition)'과, 피드백을 통해 매 순간 미세하게 영점을 조절하며 나아가는 '반복 개선(Iteration)'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혼용하곤 한다.
부의 펌프가 뿜어내는 권력과 성취의 매혹은 강력하다. 그 중심부의 거대한 중력에 포획되어 있다면, 누구라도 텅 빈 지면 위에 사유를 새길 '실존적 여백'을 확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기득권의 트랙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삶을 섣부른 도덕적 잣대로 재단하거나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속의 성취를 좇는 가장 자연스럽고 치열한 인간의 궤적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생태계의 구조적 본질은, 누군가의 의자를 빼앗아야만 내 자리가 유지되는 닫힌 제로섬(Zero-sum)이다. 그곳에서는 어제 쟁취한 자리를 오늘 방어하기 위해 똑같은 긴장과 권력투쟁을 끝없이 소모적으로 되풀이해야만 한다. 겉보기엔 화려하지만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이 구조적 굴레가 바로 그들이 갇혀 있는 '단순 반복(Repetition)'의 본질이다.
반면, 그 거대한 중력장에서 조차 의식적으로 '스스로 여백'을 선택할 수 있다. 어떤 방식으로든 나만의 규칙을 세우고 매일 미세하게 영점을 조절하며 어제와 다른 오늘을 빚어내는 것. 이것이 척박한 무대 위에서 인간의 인지를 깨부수는 장인(마이스터, Meister)들의 태도이자, 진정한 '반복 개선(Iteration)'이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통찰처럼 진정한 반복은 동일한 것의 회귀가 아니라, 매 순간 새로운 '차이(Difference)'를 생성하는 나선형의 상승이다. 어제의 실패를 성찰하고, 오늘 미세하게 궤도를 수정하며, 내일 다시 무대에 서는 이 지독한 복리의 시간이 쌓일 때 비로소 타인의 영혼에 닿는 묵직한 울림이 탄생한다. 거창한 목표는 일회성 도파민을 줄 뿐이지만, 묵묵히 활자를 굽는 구체적인 시스템은 존재의 혁명을 일으킨다.
이러한 반복 개선의 궤적이 임계점을 돌파할 때, 인간은 비로소 시대의 병증으로부터 완벽하게 해방된다. 현대인의 일상을 갉아먹는 가장 큰 병증인 '불안'을 해체해 보면 그 본질은 명확하다.
영국의 스탠드업 코미디언 지미 카(Jimmy Carr)는 크리스 윌리엄슨(Chris Williamson)과의 Modern Wisdom 대담에서 이 상태를 다음과 같이 철학적으로 표현했다.
"불안은 '통제력 없는 생각'이고(Anxiety is thought without control),
몰입은 '생각 없는 통제력'이다.(Flow state is control without thought)."
방 안에 갇혀 알 수 없는 미래나 부조리한 기득권에 대해 오만 가지 생각에 빠져 있으면서도, 정작 자신의 몸을 움직여 통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위가 멈춰 있을 때 인간은 불안에 잠식된다. 반면, 수천 번의 실천(Iteration)을 통해 뼈를 깎는 훈련을 마친 자의 상태는 정반대다. 몰입은 '생각 없는 통제력'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영역인 '오늘'을 묵묵히 정돈하고 실천하는 자는, 거친 세상의 무례함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완벽한 통제감을 획득한다. 머릿속으로 계산하거나 번뇌하지 않아도, 그가 쌓아온 굳건한 시스템이 시공간을 장악하는 것이다.
스스로 대단한 일을 한다고 착각하는 자들의 말은 가볍고, 밑바닥에서 치열하게 땀방울을 흘리며 반복 개선을 이뤄내는 자들의 침묵은 무겁다. 인간과 슬롯를 구원하는 것은 세상을 지배하겠다는 공허한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매일 묵묵히 어제와 다른 오늘을 빚어내는 고독한 실천, 그리고 그 실천이 빚어낸 완벽한 통제감에서 뿜어져 나오는 단단한 생태계다.
엘리트 과잉 생산이 만들어낸 이 척박한 역사의 겨울 앞에서도 흩어지는 물리적 시간(크로노스) 속에서, 묵묵히 나만의 마른 강바닥을 걸으며 '지금의 시간(Jetztzeit)'을 벼려낼 뿐이다. 그 지독한 반복 개선의 끝에서 섬광처럼 도래할 기회(카이로스)의 앞머리를 단숨에 낚아채기 위하여…
<피터 터친 USC Dornsife Center for the Political Future(CPE) 강의>
https://youtu.be/f_RlhwiJkUg?si=mV6TYDlxNvTC7-Q1
<지미 카& 크리스 윌리엄슨 대담>
https://youtu.be/gAxNYd01I6E?si=kzT5QmoCJFygIC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