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정색해도 세상은 안 망하더라고
가짜 미소의 스위치를 끄기로 결심한 뒤 내가 가장 먼저 연습한 것은 상대의 무례함에 쓸데없는 감정적 리액션을 보태지 않는 일이었다. 설명하지도 않고, 변명하지도 않고, 억지웃음도 보태지 않는다. 그저 상대가 던진 말을 그 사람 앞에 그대로 떨어뜨려 두는 것.
최근 한 모임에서 누군가 안줏거리 삼듯 내게 말했다.
“아니, 결혼한 지 몇 년인데 왜 아직도 애가 없어요? 아이를 낳아봐야 진짜 어른이 되지. 그래야 세상의 행복이 뭔지 알게 된다니까, 쯧쯧.”
평소 그 사람의 성향으로 봤을 때 내 인생을 진심으로 걱정해서 건네는 말은 아니었다. 그저 남의 사생활을 툭툭 건드리며 오지랖을 부리고 싶은 태도에 가까웠다. 예전 같았으면 그 가짜 걱정에 장단을 맞추며 민망한 웃음을 짓거나 대화를 빨리 끝내려고 괜한 맞장구를 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웃음기를 싹 거두고 아주 건조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아, 네. 저희끼리 알아서 하지 않을까요?”
순간 테이블의 공기가 조용해졌다. 늘 둥글게 웃으며 넘겨주던 반응이 아니자 상대도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그냥… 다들 그러니까 해본 소리지.”
나는 더 이상 그 어색한 공기를 내가 먼저 수습하려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었다. 상대가 먼저 선을 넘는 말을 던졌고 그 말이 돌아와 만들어진 공기였다. 굳이 내가 나서서 닦아줄 이유가 없었다.
물론 편하지는 않았다. 무표정으로 가만히 있는 몇 초가 생각보다 길게 느껴졌다. 습관처럼 입꼬리가 올라가려는 것도 느껴졌고 '내가 너무했나?' 하는 생각도 잠깐 스쳤다.
하지만 그 생각을 따라가지 않았다. 불편하다고 해서 내가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어색하다고 해서 반드시 누군가 웃어주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그동안 견디지 못했던 것은 침묵 자체가 아니었다. 침묵이 생기면 그것까지 내가 바카라임져야 한다고 믿었던 부담이었다.
그날 내가 한 일은 화를 낸 것도, 상대를 무안하게 만든 것도 아니었다. 그냥 웃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낯선 사람의 무례함에 정색하는 것보다 백배는 더 어려운 일이 있었다.
내가 진심으로 좋아했던 사람 앞에서 웃음기를 거두는 일이었다.
제법 친하게 지냈던 중학교 시절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었다. 한동안 끊겼던 인연이었지만 당시의 좋은 기억 덕분에 나는 의심 없이 반가워했다. 기분 좋게 안부를 묻고 몇 번의 연락을 더 주고받았다. 친구는 요즘 자기가 공연 기획 일을 하는데 재밌다며 관심이 있다면 자기가 자리를 알아봐 준다는 식의 제안을 던졌다. 나를 보고 싶어서 부르는 줄 알았기에 그저 고맙게만 들렸다.
그런데 얼마 후 같이 아는 다른 친구와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다 그 친구의 이름이 나왔다.
“야, 걔 요즘 다단계 한다며?”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다른 친구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은 다단계의 뻔한 수법은 그 친구가 나에게 건넸던 “내가 일하는 곳이 있는데, 관심 있으면 같이 하자”는 레퍼토리와 소름 끼치도록 똑같았다. 그제야 모든 조각이 맞춰졌다. 먼저 다가왔던 그 반가운 연락의 진짜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가장 실망스러운 건 그 사실을 끝까지 교묘하게 숨겼다는 것이지만 내 머릿속은 또 이상한 쪽으로 굴러갔다.
‘그래도 중학교 땐 진짜 친했는데. 오랜만에 연락했는데 딱 잘라 거절하면 민망하잖아.’
나는 배신감을 느끼면서도 오히려 상대의 무안함을 먼저 걱정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모든 걸 알면서도 모르는 척 친구의 연락을 몇 번 더 받아주었다.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루면서도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아 선뜻 끊어내지 못했다.
그러다 더는 피할 수 없어 입을 뗐다. 나는 그 일 할 생각 없다고. 그 짧은 거절을 내뱉는 데도 심장이 덜컹거렸다. 그런데 수화기 너머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조금 전까지 살갑게 웃고 떠들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고 친구는 말투를 싹 바꾸며 내가 왜 그러는지 차갑게 따져 묻기 시작했다.
순간 마음 한구석이 훅 서늘해졌다. 거절하고 나면 상대가 실망할까 봐 내가 너무 매정한 사람이 될까 봐 그토록 전전긍긍하며 망설였는데. 정작 내가 억지웃음을 지어가며 지키려 했던 관계는 내가 ‘거절’을 입에 올린 단 한 번의 순간에 미련 없이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냈다.
예전 같았으면 그 싸늘해진 목소리에 당황해 반사적으로 또 웃었을 것이다.
“아니야, 미안해. 내가 상황 봐서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라며 상대가 기분 상하지 않게 거절의 모서리마저 둥글게 깎아 바쳤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싫은 것은 싫다고 했고 하지 않을 일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변명도 미안하다는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오래 알고 지냈다는 이유만으로 내 마음까지 억지로 내어줄 필요는 없었다. 웃지 않는다는 건 누군가를 공격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저 내 마음이 ‘싫다’고 말할 때 내 어설픈 웃음으로 거절의 뜻을 지워버리지 않는 일. 단지 그것뿐이었다.
그 통화를 끝으로 친구에게서는 두 번 다시 연락이 오지 않았다. 벌써 수년 가까이 된 일이다. 내가 그토록 억지웃음을 지어가며 잃지 않으려 전전긍긍했던 관계의 유통기한은 딱 거기까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