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을 그었더니 정말 미움을 받았다

4장. 정색해도 세상은 안 망하더라고

by고금

앞서 정색해도 세상은 안 망한다고 말했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모든 경우가 그렇게 깔끔하게 끝나지는 않는다. 어떤 관계는 정말로 멀어졌다.


학창 시절부터 오래 봐온 모임이 있었다. 그중 한 친구는 만날 때마다 내 이름 대신 별명을 부르며 짓궂게 놀리는 버릇이 있었다. 처음 몇 년은 나도 같이 웃었다. 그게 그 친구 나름의 친밀감 표현이라고 믿었고, 정색하면 괜히 분위기를 무겁게 만드는 사람이 될 것 같아 매번 장단을 맞췄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그 별명이 튀어나왔다. 예전 같았으면 “아, 그러지 마~” 하고 웃으며 받아쳤을 텐데, 그날은 이상하게 입꼬리가 올라가지 않았다. 나는 웃음기를 걷어내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 별명, 이제 안 불렀으면 좋겠어.”


순간 테이블에 정적이 흘렀다. 친구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뭐야, 갑자기 왜 그래.”


그 친구는 그날 이후로 단체 채팅방에서 눈에 띄게 말수가 줄었고 몇 달 뒤에는 모임에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나오지 않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를 통해 건너 들은 말은 더 아팠다.


“걔가 요즘 좀 예민해진 것 같더라.”


한동안 나는 이 일을 곱씹었다.


‘내가 너무 날카롭게 굴었나.’

‘그 정도는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는데.’


예전의 나였다면 이 죄바카라감 앞에서 그 친구에게 다시 연락해 “그때 내가 좀 예민했지, 미안”이라고 웃으며 봉합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러고 싶은 충동도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니 내가 곱씹고 있던 건 후회가 아니라 습관이었다. 오랫동안 관계가 조금이라도 삐걱대면 무조건 내 쪽에서 먼저 웃으며 메워야 한다고 배워온 그 습관.


그래서 이번엔 연락하지 않았다. 물론 편한 결론은 아니었다. 마음이 홀가분해지지도 않았다. 그 친구와의 시간이 아까웠고, 지금도 가끔 그 이름이 단체방 목록에서 흐릿해진 걸 보면 서운하다.


선을 그으면, 처음엔 서먹해도 결국 상대가 나를 존중하게 되고 관계는 더 건강해진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 관계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존중하는 대신, 그냥 떠났다.


어떤 관계는 내가 웃어주지 않으면 유지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애초에 그 관계를 지탱하고 있던 건 나의 다정함이 아니라 나의 침묵이었던 셈이다.


우리는 왜 그렇게 단호한 거절을 어려워할까.


단순히 용기가 없거나 천성이 착해서만은 아니다. 대부분은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잃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싫어하면 내가 뭔가 잘못한 것 같고 상대가 불편해하면 그 감정까지 내 바카라임처럼 느껴진다.


오랜 시간 나는 둥글게 웃으며 넘어가는 것이 배려라고 착각했다. 그런데 그 별명 사건 이후로 알았다. 내가 지키려던 건 관계가 아니라,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였다는 것을.


그 이미지를 지키는 대가로 나는 늘 먼저 웃었고, 먼저 참았고, 먼저 내 감정을 접었다.


이제는 가슴에 훈장처럼 달고 있던 ‘모두에게 착한 사람’이라는 피곤한 타이틀을 미련 없이 떼어버리기로 했다. 대신 약간은 까다로워 보일지언정 자신의 기준이 명확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선을 그었다고 해서 모든 관계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내 경계를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은 멀어질 수도 있다. 그 결과까지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나는 별명 사건에서 이미 배웠다.


세상 모두에게 만만한 호의를 베풀며 사랑받을 필요는 없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까지 내가 통제할 수는 없다. 다만 그 평가 때문에 내 감정까지 부정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래도 여전히 흔들리는 날은 있다. 다만 예전처럼 그 흔들림을 숨기기 위해 웃지는 않으려고 한다. 흔들렸다는 사실까지 내 감정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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